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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물 ‘#살아있다’ 원맨쇼, 유아인 연기 살아있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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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유아인이 취미로 즐긴다는 드론은 영화 ‘#살아있다’에 생존무기로 등장한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유아인이 취미로 즐긴다는 드론은 영화 ‘#살아있다’에 생존무기로 등장한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예고편 댓글 보니, 유아인 저러다 ‘어이가 없네’(‘베테랑’ 명대사) 할 것만 같다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캐릭터가 만든 영광과 선입견, 제 인생의 숙제죠. 이번 작품으로 어느 정도 지우고 싶었어요. 내가 만들어낸 전사(前事)를 다음 작품에서 다른 숙제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죠.”

첫 재난영화 주연…24일 개봉 #“공포물 중에서도 좀비물 좋아해 #그간 쌓아온 내 능력 시험 무대 #이번엔 좀 편하게 풀어내려 했죠”

24일 개봉하는 ‘#살아있다’(감독 조일형)에서 처음으로 본격 재난영화 주연을 맡은 배우 유아인(34)의 고백이다. 이번 영화는 “공포물 중에서도 좀비 세계관을 워낙 좋아한다”는 그가 직접 좀비 세상에 뛰어든 생존분투기다. 그가 맡은 준우는 인터넷 게임에 빠져 사는 청년. 가족들이 외출한 사이 도시에 창궐한 정체불명 감염증으로 인해 아파트에 고립된 그는, 괴물이 된 이웃에 맞서 사투한다.

18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비현실적이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인 측면에다, 스릴감, 시작하자마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듯한 영화적 체험이 흥미롭다”고 좀비물을 예찬했다. 톱3로 대니 보일 감독의 컬트 ‘28일 후’, 코믹 좀비물 ‘좀비랜드’, 조선 좀비 사극 ‘킹덤’을 꼽았다. ‘#살아있다’의 매력은 이렇게 설명했다.

“좀비물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장르적 쾌감만이 아니라 고립된 인물의 감정, 변화를 깊이 있게 좇아간다는 게 신선했어요. 그간 쌓아온 내 능력치를 스스로 시험하는 무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건너편 아파트 생존자 유빈(박신혜)이 등장할 때까지 상영시간 98분 중 절반여가 준우의 원맨쇼에 가깝다. 식인 무리의 감염 원인이나 가족애를 파고들기보다 소셜미디어·드론·골프채·냉장고·이어폰 등 손에 잡히는 도구를 어설프게 총동원한 로빈슨 크루소식 생존기 그 자체가 볼거리다.

“설명적이지 않은 영화라 감정 설득력, 전달력이 떨어지면 이해받기 힘들겠다 싶어서 여러 감정의 연습 영상을 따로 찍어 감독님과 공유하기도 했어요. 모노드라마 같은 측면도 있다 보니까 즉흥성에 기대기보단 좀 더 세심한 조율이 필요했죠.”

그간 출연작에 비해 캐릭터의 무게가 다소 가벼워졌다. 거창한 생존 작전보단 지금 당장의 배고픔에 휘둘리는 어수룩한 모습이다.

“진짜 평범한, 설정이나 가공이 필요 없는 친구라서 택했어요. 작품으로나 캐릭터로나 조금 편하게 풀어헤치는 순간을 만들고픈 욕심이 있었어요.”

주인공 준우가 드론을 날리는 장면. [사진 UAA]

주인공 준우가 드론을 날리는 장면. [사진 UAA]

하이틴 성장드라마 ‘반올림#1’로 데뷔해 어느덧 연기 18년차. 다수 영화팬에겐 1300만 흥행작 ‘베테랑’에서 오만한 재벌 3세 조태오로 각인됐지만, 필모그래피의 폭이 작지 않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버닝’에선 현실에 짓눌린 배달알바생 종수, ‘완득이’에선 필리핀인 엄마 존재도 모르고 자란 고등학생, 사극 ‘사도’의 아버지 영조와 어긋나버린 비운의 사도세자 등이다.

전작들에선 “사뭇 진지한 청춘의 표상 같은, 함축적이고 문학적 언어 같은 인물을 연기했던” 건 일종의 차별화 전략이었다. “20대 배우들은 아이돌처럼 스타성, 인기로 소비되는 측면이 있잖아요. 그 나이대 저는 그 정도 자질이나 컨디션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진지하고 묵직한 작품 속에서 본질에 집중하려 했죠.”

이젠 그런 무게를 본인은 물론 관객도 버거워하는 것 같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멀리서 빛나기보다 배우와 관객 사이 막을 걷어내고 싶은 욕구도 항상 있다”고 한다. 영화 속 준우의 짧은 탈색 머리는 그런 변신 욕구와 캐릭터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원래는 앞머리가 덥수룩한 가발을 쓰기로 했는데, 유아인이 기분전환 삼아 염색한 실제 머리를 촬영 초반에 제작자가 보고 꽂혀 현장투표 끝에 초반 촬영분을 버리고 지금 머리로 결정했단다. “현실적으로 (얼굴이) 약간 부어있고 편의점 음식 좋아하는, 평범함의 범주를 계속 상상하며 접근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극 중 준우의 생존 무기 드론은 실제로도 잘 날린다. “20대 때 새 기기를 사 모으는 취미가 있었거든요. 지금은 좀 멀어졌죠. (준우와 다르게) 휴대폰이랑은 안 친한 편이에요. 요즘은 실시간 답장이 예의가 된 것 같은데, 저는 좀 갑갑하더라고요. 계속 지배당하는 느낌이어서.”

얼마 전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3층짜리 자택에서 두 마리 반려묘와 사는 일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몇 번 출연 경험이 편하지 않아 경직됐던 예능”에 다시 출연을 결심한 것부터 큰 변화다. “예능 보는 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어느 순간 어지간한 영화보다 대중한텐 더 큰 위로고 힘이다, 꼴값 떨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갖고 있던 배우로서 기준을 새롭게 가져가고 싶었죠.” 이런 솔직함 덕일까. 그의 특집처럼 꾸민 20일 방송은 시청률 12%를 넘어섰다.

“겉보기에 평범치 않은 삶을 드러내는 것이 위화감, 불편함을 줄 수 있고 긍정적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런데 크게 잘못해온 것도 아니고 살면서 내가 추구해온 것들, 내 삶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겠다 싶었고 그런 시간을 보냈다” 말하는 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배우로서, 살아있다 느낄 때는 언제일까. “아침에 일어날 때? 자기 전에 이러다 죽을 수도 있나, 그런 생각 잘하거든요. 삶 속에 생생히 느껴지는 살아있음의 기억은 사랑에 빠졌을 때죠.”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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