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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줄 마스크 모은 칠곡, 목표량 5배 채웠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위치한 주한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경북 칠곡군 주민들의 기부를 통해 마련된 마스크 3만장, 손소독제 250병 등의 방역 물품과 손편지 700여 통을 전달식을 열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칠곡군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위치한 주한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경북 칠곡군 주민들의 기부를 통해 마련된 마스크 3만장, 손소독제 250병 등의 방역 물품과 손편지 700여 통을 전달식을 열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칠곡군

“70년 만에 은혜 갚으러 왔습니다.”

백선기 칠곡군수 주한에티오피아 대사관 방문 #마스크 3만여장과 손소독제, 손편지 등 전달 #전달 물품, 다음달 대사관 통해 본국 보내기로

 백선기(65) 경북 칠곡군수가 지난 19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에 위치한 주한에티오피아 대사관을 찾았다. 그의 손에는 주민 기부로 하나하나 모은 마스크 3만장이 들려 있었다. 그 뒤로 손 소독제 250병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물품과 손편지 700여 통을 들고 있는 공직자 등이 따랐다.

 이날 방문은 70년 전 에티오피아 6·25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에티오피아 역시 코로나19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마스크를 충분히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6037명의 젊은이는 이역만리 한국에서 253번의 전투를 치러 모두 승리했다. 칠곡군은 6·25 당시 우리를 위해 싸워준 참전용사들을 위해 마스크를 전달하러 나섰다.

 이날 전달식은 백 군수와 쉬페로 시구테(Shiferaw Shigute)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 암하(Amha) 공사가 참석한 가운데 대사관 앞마당에서 열렸다. 쉬페로 시구테 대사는 팝콘과 함께 커피를 흘러내리듯 담아 주며 귀한 손님을 환영하는 에티오피아 고유의 ‘커피 세리머니’로 백 군수를 맞이해 눈길을 끌었다.

칠곡군 직원들이 에티오피아 대사관에 보훈 마스크 전달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칠곡군

칠곡군 직원들이 에티오피아 대사관에 보훈 마스크 전달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칠곡군

 칠곡군은 지난 4월 6·25 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용사 6037명의 헌신에 보답하고자 6037장의 마스크를 마련하는 ‘6037 캠페인’에 나섰다. 칠곡에서 시작된 캠페인은 전국에 반향을 일으키면서 두 달여 만에 목표량의 5배인 3만장을 넘어섰다.

 마스크 기부자의 사연도 애틋하다. 뇌병변 장애 1급인 장윤혁(45·왜관읍)씨는 휠체어를 타고 마트와 약국을 돌며 어렵게 구한 365장을 기부했다. 6·25 참전유공자회 칠곡군지회장인 박덕용(86·왜관읍)씨는 어버이날 자녀가 구해준 공적 마스크 30장을 70년 전 생사를 함께한 에티오피아 전우를 위해 기꺼이 내놨다. 칠곡군 인문학 마을 주민과 아파트 부녀회는 참전용사를 위해 재봉틀을 돌려 직접 면 마스크를 제작하기도 했다.

뇌병변 장애 1급 장윤혁씨가 지난달 5일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에게 마스크 365장을 기부했다. 칠곡군

뇌병변 장애 1급 장윤혁씨가 지난달 5일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에게 마스크 365장을 기부했다. 칠곡군

 마스크와 동봉한 손편지도 관심을 모았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최삼자(73·석적읍) 할머니는 며느리의 도움을 받아 생존한 138명의 참전용사를 위해 138통의 손편지를 일일이 썼다. 경기 용인한 국외국어대학교 부설고등학교 학생들은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라어로 그림 그리듯 손편지를 썼다.

 마스크는 이달 중 에티오피아 항공을 통해 본국으로 수송돼 참전용사와 유가족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쉬페로 시구테 대사는 “2014년부터 7년째 에티오피아 지원 사업을 이어온 백 군수의 진정성과 보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느껴진다”며 “이번에 전달된 마스크가 코로나19로부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과 그 후손들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기 용인 외대부고 봉사 동아리 크리에이티브 캠페인 소속 학생들 지난달 13일 에티오피아 고유 언어인 암하릭어로 작성한 손편지 16통을 칠곡군에 전달했다. 칠곡군

경기 용인 외대부고 봉사 동아리 크리에이티브 캠페인 소속 학생들 지난달 13일 에티오피아 고유 언어인 암하릭어로 작성한 손편지 16통을 칠곡군에 전달했다. 칠곡군

 칠곡군이 6·25 참전용사들을 위한 마스크 제작에 나선 이유 중엔 칠곡이 ‘호국의 고장’이라는 점도 있다. 칠곡에서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다. 다부동 등 전적지가 곳곳에 있다. 워낙 군사 전략적 요충지에 있어 6·25 전쟁뿐 아니라 임진왜란·병자호란 당시에도 격전지로 꼽혔다.

 칠곡군은 당분간 ‘6037 캠페인’을 이어가기로 했다. 백 군수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며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참전용사에게 마스크 전달할 수 있게 돼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알리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칠곡=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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