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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비어식 배상' 해법도 떴다, 北이 날린 170억 손배 시나리오

중앙일보

입력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 "그 내용을 들어보면 새삼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난한 데 대해서 청와대는 "몰상식한 행위" "사리분별 못하는 언행" 등으로 맞받아쳤다.[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 "그 내용을 들어보면 새삼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난한 데 대해서 청와대는 "몰상식한 행위" "사리분별 못하는 언행" 등으로 맞받아쳤다.[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6일 폭파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엔 우리 국민 세금 170억여원이 투입됐다.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의 우리 측 자산까지 훼손할 경우 손실이 1조원을 웃돌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북한에 우리 정부·기업 재산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손해배상’ 법적 절차는

서호 통일부 차관은 이미 지난 17일 “우리 국민의 재산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라고 못 박았다. 통상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는 통일부‧법무부‧외교부 등 정부 관계부처가 국제법과 기존 합의서, 북한법 등에 비춰 대응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수백억원대 세금이 투입된 건물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파괴했다는 점이 관건이다. 이에 북한 영역인 개성 공단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법적으로 한국 정부 소유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우리가 건축비를 대고 공동으로 운용해왔지만, 소유권을 명시한 남북간 서면 합의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남북 간 합의 위반을 지적할 수 있다. 지난 2000년 6·15 공동선언 후속조치로 남북이 체결한 ‘투자 보장에 관한 합의서’ 4조에서는 “남과 북은 무력충돌 등 비정상적인 사태로 상대방 투자자의 재산이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 그 손실에 대하여 원상회복 또는 보상함에 있어서 자기 측 투자자나 다른 나라 투자자에 대한 것보다 불리하지 않게 대우한다”고 규정한다. 원칙상 회복과 보상도 가능하다는 뜻인 셈이다.

국제법도 근거가 된다. 그러나 국제법의 적용 대상은 ‘국가’라는 점이 난관이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 위헌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한다. 북한이 국제적인 투자보호에 관한 기본협정인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나 세계무역기구(WTO)에 소속되지 않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우리도 ‘웜비어식 배상’될까

일각에선 ‘웜비어식 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현 가능성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분분하다.

오토 웜비어(가운데)의 재판 사진. 북한최고재판소는 그에게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로이터]

오토 웜비어(가운데)의 재판 사진. 북한최고재판소는 그에게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로이터]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는 2015년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송환된 직후 숨졌다. 이후 미국 법원은 2018년 웜비어 부모가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북한에 5억114만 달러(약 6083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부부는 이 판결을 토대로 북한이 전 세계에 은닉해 놓은 자산 추적에 나섰다. 북한의 석탄 운반선 ‘와이즈 어니스트’호가 미 정부에 압류되자 소유권을 주장해 선박 매각대금 일부를 받았다. 북한이 운영하던 독일 베를린 호스텔에 대해서도 소송을 내서 1월에 영업 중단 판결을 받아냈다. 최근엔 미국 내 여러 은행의 계좌에 묶여 있던 북한 관련 자금 2379만 달러(약 290억원)도 찾아냈다.

그러나 한국 법원이 남북연락사무소 관련 배상 판결을 하더라도 자산 매각 등을 통해 강제로 집행할 북한 측 자산이 남한에 없다는 것이 한계로 손꼽힌다. 반면 ‘북한통’으로 손꼽히는 한 변호사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우리 재산권으로 확정만 된다면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 제3국의 법원을 통해 북한 재산을 동결하는 식으로 가능하다”고도 분석했다.

왜 선례 없나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 발표 후 악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 발표 후 악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송은 관계 단절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남북 관계에 정통한 한 법률 전문가는 “법은 최후의 수단”이라면서 “관계 개선이 가능한 상황에서 동결이나 압류 등의 법적 조치를 선행하기는 쉽지 않다”고 봤다. 또 다른 ‘공안통’ 변호사 역시 “재산권이 아닌 남북관계 개선이 사안의 본질”이라고 짚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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