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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고려, 항공 마일리지 사용 무기한 연장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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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호 14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소멸 여부로 논란이 거셌던 항공 마일리지의 사용 기한을 1년 연장하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올해 안에 마일리지를 써서 항공기를 타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 사정을 고려해서다. 다만 일각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이번과 같은 한시적 유예에 그쳐선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 1년 한시적 유예에 반발 #대한항공·아시아나 2008년 약관 개정 #10년 지나면 소멸, 올해 5000억 추정 #항공사 “코로나로 이번만 기한 연장” #소비자 “미봉책 대신 장기 대책을”

18일 항공 업계에 따르면 두 항공사는 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와의 협의를 통해 내년 1월 1일 0시 기준으로 소멸되는 마일리지 사용 기한을 1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 확산에 감염 위험이 커진 데다, 세계 각국도 입국 금지나 입국 후 수주의 자가 격리를 의무화하면서 여행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기존 약관대로 마일리지 소멸만 내세워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미리 예약했거나, 올해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마일리지가 있는 소비자들이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 예약에 쓴 마일리지 중 만기 도래로 소멸이 예정된 일부는 항공사 규정대로 증발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앞서 두 항공사는 2008년 마일리지 약관을 개정하면서 적립한 지 10년 지난 마일리지는 자동 소멸되도록 했다(아시아나항공은 우수 회원 등급인 경우만 12년). 대한항공의 경우 2008년 7월 이전, 아시아나항공 2008년 10월 이전 적립 마일리지만 사용 기한에 제한이 없다. 이에 따라 2009년 적립 마일리지는 지난 1월 1일 0시를 기해 소멸됐다. 이렇게 올 초 소멸된 항공 마일리지 규모만 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대한항공 3940억원, 아시아나항공 996억원). 내년 1월 1일엔 4000억원 이상 규모로 추정되는 2010년 적립 마일리지가 같은 식으로 소멸될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코로나19라는 이례적인 상황을 고려해 소멸되는 2010년 적립 마일리지의 사용 기한을 연장해 달라”는 입장이었다. 관련 문의도 폭주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한 1월 20일~지난 달 31일 마일리지 사용 등 항공 관련 피해 신고 사례는 총 1243건으로 전년 동기(313건)의 4배 수준이었다. 이러자 정부가 나선 끝에 두 항공사가 결국 소비자 요구를 들어준 셈이다.

소비자들로서는 눈앞의 급한 불은 껐지만, 불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해 11월 항공 마일리지로 미국행 항공권을 예약했다가 최근 취소한 직장인 유의범(39·가명)씨는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지 않으면 내년, 내후년에도 해외에 가기 어려울 듯한데 올해 같은 미봉책을 언제까지 반복해서 낼 수 있겠느냐”며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사용 기한의 파격 연장이나 무제한 재허용과 같은 대책을 제시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항공 마일리지 카드

항공 마일리지 카드

항공사들은 이런 요구에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마일리지는 보너스 개념이라 회사 규정대로 소멸이 가능하다”며 “코로나19 사태로 부득이하게 이번만 사용 기한을 연장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사례를 봐도 독일 루프트한자나 일본항공(JAL)은 마일리지 사용 기한이 3년으로 한국의 두 대형 항공사보다 훨씬 짧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현재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 점도 이들 입장에선 선뜻 추가 대책을 내놓기 힘든 이유다. 대한항공은 지난 17일까지 만 2년 이상 근속한 객실 승무원을 상대로 장기 무급휴직 신청을 받았다. 시장에 매물로 나온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재검토하고 있어 고민이 많다. 두 항공사의 매출 급감에 정부까지 지원에 나선 상태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단체들은 “항공사가 멋대로 약관을 바꿔 마일리지 사용 기한을 제한하는 것 자체가 소비자 재산권 침해”라며 맞서고 있다. 이들은 미국 유나이티드항공·델타항공이 마일리지 사용 기한을 정하지 않고 무제한 혜택 제공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법적 공방도 치열하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지난해 두 항공사를 상대로 마일리지 약관 변경을 무효화하거나, 마일리지 매매 또는 상속·증여가 가능하도록 약관을 다시 고쳐야 한다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달까지 다섯 차례 양측 변론이 오간 가운데 1심 재판부는 다음 달 17일을 선고 일자로 정했다.

항공 마일리지는 까다로운 사용 조건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예컨대 여행객이 몰리는 여름·겨울 성수기에는 각 항공사 규정 때문에 소비자가 마일리지를 비축했어도 이를 통해 항공권을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다.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자 국토부는 항공사가 극성수기에도 마일리지 좌석을 5% 이상 배정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관련 제도 개편에 나서기도 했다.

#마일리지 적립률과 사용처도 여전한 논란거리다. 항공사들은 항공 운임과 운항 거리에 따라 적립률을 세분화했는데, 소비자 다수가 이용하는 일반석의 마일리지 적립률은 너무 낮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사용처 역시 항공사들은 항공권 예약과 좌석 업그레이드 외에 일부 상품 구매와 렌터카 이용, 숙박 예약 등에 마일리지를 쓸 수 있게 했지만 소비자들은 사용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항공사들도 마일리지 규정 개선 노력을 하고는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 공정위 권고에 따라 마일리지와 현금 복합 결제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규정 개편안을 내놨다. 이로써 지금은 적립한 마일리지가 불충분해 항공권을 예약하기 어렵더라도 올 11월부터는 마일리지에 현금을 보태 예약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 해도 전문가들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 항공사들이 지금까지보다 대승적으로 소비자 권익 보호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항공 마일리지는 소비자들이 장기 플랜을 위해 아껴두는 경우가 많아 국제선 이용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수록 사용 기한 만료는 치명적”이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고객 신뢰 확보와 이탈 방지 등을 고려해 기업들이 마일리지 사용 기한 전면 연장과 같은 추가 대책 마련을 고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통 3사 마일리지도 5년간 1154억 허공에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의 마일리지 소멸도 논란거리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2015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이통 3사 가입자의 마일리지 적립·사용·소멸 자료를 각사에 요구, 분석한 결과를 지난 달 25일 발표했다. 그 결과 5년간 1154억원 규모의 이동통신 마일리지가 소멸된 반면, 사용된 마일리지는 377억원 규모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소멸 금액이 사용 금액의 3배 수준으로 많았다. 가입자가 많은 SK텔레콤(557억원)·KT(462억원)·LG유플러스(135억원) 순으로 소멸 금액이 많았다.

이동통신 마일리지는 휴대전화와 데이터 사용량이 정해지지 않은 2010년 이전의 종량형 요금제 가입자에게 3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다. 매월 통신요금을 내면 3%씩 돌려받는 식이다. 이를 각 사 정책에 따라 통신요금 납부에 보태거나 로밍 또는 부가 서비스 가입, 일부 유료 콘텐트 구매 등에 쓸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아 마일리지의 사용법은 물론, 존재조차 모르는 소비자가 많아 해마다 적잖은 마일리지가 사라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적립 후 7년이 지나면 자동 소멸된다.

특히 롱텀에볼루션(LTE) 등장 이후 종량형 요금제 대신 정액형 요금제 가입자가 늘자 소멸 마일리지도 빠르게 늘어났다. 기업들은 최근 LTE뿐 아니라 5세대(5G) 이동통신 가입자 위주로 서비스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마일리지를 쓸 수 있는 기존 2G·3G 가입자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는 “애초 이동통신 마일리지는 정액형 요금제 가입자들에게 제공되는 멤버십 포인트보다 혜택이 적은데 홍보까지 부족해 사용 기한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며 “사용처와 사용 기한을 늘려 더 많은 소비자가 마일리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동통신사들은 더 나은 서비스 혜택 제공을 이유로 소비자의 각종 데이터를 가져가고 이를 분석한다”며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도 가져야 하는 만큼 소비자들에게 마일리지 관련 정보를 알리는 데 지금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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