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시계는 돌고 돈다. 요즘은 정확히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90년대 스타일 복사판이 길거리에 등장했다.
기네스 펠트로, 제니퍼 애니스톤, 케이트 모스, 리스 위더스푼, 케이트 허드슨…. 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할리우드 스타들의 당시 패션을 들여다보면 요즘 유행하는 거의 모든 것이 보인다. 슬립 스타일의 원피스, 밑위가 길고 헐렁한 청바지, 애매한 길이의 미디스커트, 얇은 끈이 달린 스트랩 샌들, 페니 팩(벨트 백), 곱창 헤어 밴드 등.
‘스타일의 완성’이라 불리는 신발도 빼놓을 수 없다. 한 계단 올라간 듯 높고 평평한 굽의 플랫폼 구두, 둥근 앞코에 발등에 가죽끈이 달린 메리 제인 슈즈, 로퍼 스타일의 힐 등 90년대를 풍미한 거의 모든 것들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이제 막 신발장에서 꺼내기 시작한 샌들도 마찬가지다. 일명 ‘쪼리’라고 불리는 플립플롭과 얇디얇은 초박형 끈이 엄지발가락과 발등을 아슬아슬하게 덮는 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이때 앞코는 둥글기보다 네모난 것이 90년대 감성이다.
‘네모’ 하나만 기억하세요
올여름 최신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다면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할 패션 아이템으로 ‘스퀘어 토 샌들(square toe sandals‧사각 앞코 샌들)’을 꼽을 수 있다. 90년대를 풍미했던 단순하면서도 조형적인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면서 신발 역시 둥글기보다 네모나게 각진 형태가 주목받는다. 각진 앞코의 유행을 다시 불러온 이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다.
2018년 보테가 베네타에 합류한 33세의 젊은 디자이너 다니엘 리는 클래식하지만 낡은 브랜드를 순식간에 가장 뜨거운 브랜드로 바꿔놓았다. 디자이너 다니엘 리 이후의 보테가 베네타를 ‘뉴 보테가’로 부를 정도다. 그의 주요 전략은 브랜드의 질 좋은 가죽 가방과 신발에 90년대 스타일을 더하고, 여기에 세련된 위트를 첨가하는 방식이다.
2020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한껏 부풀어 오른 퀼팅 쿠션 슬리퍼가 대표적이다. 보테가 베네타 특유의 가죽 짜임 기법인 ‘인트레치아토’를 과장해 두껍게 표현한 뒤 90년대식 네모난 앞코를 더하고, 케이크 받침을 연상시키는 곡선의 힐을 달았다. 엄지발가락과 발등을 감싸는 구조적인 디자인의 사각 앞코 슬리퍼와 샌들 역시 주목받았다.
헤일리 볼드윈, 리한나, 로지 헌팅턴 휘틀리 등 유명 패셔니스타들이 먼저 반응했다. 특히 리한나는 자신의 패션 브랜드 ‘펜티(Fenty)’를 통해 비슷한 디자인의 샌들을 출시하기도 했다.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네모난 형태의 앞코는 자크뮈스, 메종 마르지엘라, 디온 리, 어웨이크 모드, 레지나 표 등 다양한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비슷한 신발을 출시할 만큼 올해 봄·여름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슈츠’ ‘바이 파(by far)’ ‘스타우드(staud)’ 등 젊은 세대에게 인기 많은 액세서리 브랜드에서도 비슷한 디자인의 신발을 앞다퉈 내놨다. 자라, 탑샵 등의 SAP(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에서도 빠르게 스타일을 따라잡았다.
아슬아슬 ‘누드’ 신발이 뜬다
얇은 가죽끈으로 발등을 감싸는 ‘누드 슈즈(naked shoes)’ 역시 올여름 주목할 샌들 트렌드다. 몇 개의 얇은 끈이 발등을 아슬아슬하게 덮는 형태의 스트랩 샌들이 대거 출시됐다. ‘쪼리’라고 불리는 Y자형 스트랩 샌들부터, 발 앞부분에 가로 형태의 초박형 끈이 가로지르는 형태까지 다양하다. 끈으로 엮였다는 점에서 한때 유행했던 ‘글래디에이터 샌들(검투사 샌들)’을 연상시키지만 이보다 훨씬 단순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이다. 얇은 끈으로만 이루어진 샌들은 관능적인 느낌을 주기도, 또 디자인에 따라 캐주얼한 느낌을 주는 극과 극의 매력을 지녔다.
물론 이 역시 앞코를 사각형으로 디자인한 것이 많다. 키튼 힐(낮은 곡선 굽)이 달린 사각형 밑창에 한두 개의 초박형 끈을 달아 거의 맨발로 보이는 형태역시 90년대 스타일로, 당시 스타들의 사진을 찾아보면 주로 슬립 드레스에 매치해 관능적인 느낌을 부각시킨 경우가 많다.
코오롱FnC가 운영하는 코오롱 몰에서도 네모난 앞코와 얇은 가죽끈이 돋보이는 샌들이 가장 인기다. 코오롱FnC 편집숍 사업부 정승령 과장은 “예전에는 글래디에이터 스타일의 투박한 디자인이 인기였다면 올여름에는 좀 더 여성스러운 느낌의 얇은 스트랩 샌들이 인기”라며 “동시에 앞코를 직선으로 디자인해 한층 간결해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사각 누드’ 샌들은 어떻게 신어야 예쁠까. 역시 90년대 스타들의 룩을 참고하면 좋다. 가장 궁합이 좋은 아이템은 슬립 드레스다. 얇은 어깨끈으로 잠옷을 연상시키는 실크 소재 드레스나, 여성스러운 느낌의 미디스커트에 매치하면 사각 토 특유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다.
반대로 작업복 스타일의 점프슈트도 추천할만하다. 캐주얼한 옷에 운동화 대신 얇은 가죽끈의 샌들을 더하면 전형적이지 않은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온라인 패션 편집숍 W컨셉의 김효선 마케팅팀 이사는 “앞코가 각진 샌들은 중성적인 멋이 있어 스커트보다는 팬츠에 매치했을 때 더 멋스럽다”며 “특히 요즘 주목받고 있는 버뮤다 팬츠나 바지 통이 넓은 리넨 소재 바지와 잘 어울릴 것”이라고 추천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옛날 감성의 네모반듯한 앞코에 #아슬아슬 얇은 끈으로 발등 감싼 디자인 #슬립 원피스에도 점프수트에도 어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