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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회초리 법으로 뺏는다…아동학대에 '징계권' 삭제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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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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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

법무부가 이러한 내용의 민법 제915조 징계권 조항 삭제를 추진한다. 지난해 5월에도 정부가 이를 추진했지만 “부모가 자식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회초리는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에 실행되지는 못했다. 최근 9살 남아가 의붓어머니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갇혀 사망하고, 경남 창녕에서도 9살 여아가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되는 등 아동학대 사건이 이어지자 다시금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62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징계권’

징계권은 1958년 민법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는 “미성년자인 자녀는 아버지의 친권에 복종한다”는 규정이 있을 정도로 가부장적인 시대였다. 2005년 아버지뿐 아니라 부모가 친권자가 되고, 친권을 행사하는데 자녀의 행복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음에도 징계권만은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훈육이 필요하다”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봤다. 문제는 ‘징계할 수 있다’는 조문이 교육적인 목적을 넘어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오인되면서 아동학대 정당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변명이 “때린 게 아니라 훈육을 한 것”이라고 한다.

징계권이 삭제된다고 해서 부모의 훈육 자체를 막는 건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민법 제913조는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징계가 아닌 아이를 가르치는 의미의 훈육은 법률로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훈육, 어디까지 법적으로 인정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징계권 삭제에는 동의하지만 ‘필요한 훈육’을 두고 부모의 체벌 금지를 어떻게 법제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생각을 달리했다.

아동 권리를 위한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 학대 금지 규정을 분명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상해에 이르는’ ‘아동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등을 처벌의 기준으로 삼다 보면 이보다 경미한 수준의 체벌은 가능하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처음에는 용인되는 수준의 훈육에서 시작하지만 반복되다 아동 학대가 된다”며 “아동 인권 단체인 만큼 아동의 입장에서 법무부에 개정안 내용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체적인 학대가 금지되어야 한다는 큰 전제를 법률로 규정하되 필요한 훈육에 대해서는 따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양소영(법무법인 숭인) 대표변호사는 “민법은 큰 원칙을 정하는 법이라 어디까지 체벌을 금지할지 구체화는 어려울 것 같다”며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의 훈육에 대해서는 단서 조항으로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원이 그동안 아동학대로 인정한 정도의 체벌은 민법으로도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육교사의 신체 체벌과 언어폭력은 법적으로 명백한 처벌 대상이 됐다”며 “최소한 이 정도의 체벌은 부모라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개정안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부모 또한 ‘내 새끼 내가 가르치는 건 괜찮다’는 생각을 버리고 보육 교사에게 바라는 훈육의 수준을 가정에서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우선 12일 세이브더칠드런 등 관계기관 간담회를 열고 아동 인권 전문가 및 청소년 당사자의 의견을 먼저 수렴할 계획이다. 이후 교수‧변호사 등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구체적인 개정 시안을 마련하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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