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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말벌의 집을 들쑤신 교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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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제작총괄 겸 논설주간

최훈 제작총괄 겸 논설주간

나라 세운 지 72년. 보수는 58년 집권했다. 공산주의에 맞선 힘든 건국, 보릿고개를 면케 해 준 산업화 공로도 컸다. ‘반공’과 ‘성장’을 축으로 나라 창업해 이끌어 온 오랜 주류였다. 그러나 평등·공정·인권 등 진보적 가치의 쓰나미에 보수 정치는 지금 흥망의 기로에 섰다. 총선 참패의 충격이 컸을 터다.

이 세상의 가장 보수적인 곳을 #개혁한 요한23세의 도전과 용기 #문 활짝 열고 성역 없이 토론해 #보수정치의 새 길 찾아내기를

하지만 72년, 58년의 시간이 흘렀다면 진즉 보수는 시대를 수용한 창조적 파괴와 쇄신을 도모해야 했다. 오죽했으면 여든 연세 노구의 비대위원장에게 “이제 보수란 말도 쓰지 말라. 시비도 말라”는 꾸지람 듣게 됐는가. 미래통합당의 적(敵)은 바로 변화하는 시대이자 시대를 놓친 자신들 뿐이다.

이 세상 가장 보수적인 곳은 가톨릭 교회 본부인 바티칸이다. 전 세계 8억 명을 다스리는 이 작은 나라를 근원적으로 뒤바꾼 교황 요한 23세(1958~63 재임)의 도전은 막 개혁의 걸음을 뗀 우리 보수정치가 도움받을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전통·규율의 엄한 수호자로 20년 재임한 비오 12세의 선종 직후인 1958년의 콘클라베. 11번째 투표 뒤 빈농의 아들인 77세의 요한 23세가 선출됐다. 땅딸막한 체구에 맞는 교황 옷조차 없어 앞쪽 단추만 채우고 등쪽 솔기를 뜯어내야 했다(로버트 해리스 『콘클라베』).  별 볼일 없는 ‘과도기 교황’이란 빈축에 그는 “지상의 우리 모두는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라고 답한다.

청장년기 그는 요즘 말론 ‘꼴통 보수’ 였던 것 같다. 신학교 때는 “아무래도 위험하니 절대 여자들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써놓곤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카드·주사위 놀음은 구경도 않고 ‘바깥 공기’가 들어올 신문조차 보지 못했다. 한 파티장의 노출 심한 젊은 여성에겐 자꾸 사과를 먹으라고 권했다. “하와는 사과를 먹고 나서 자신이 벗은 몸이라는 걸 알고 부끄러워했다”고 말해 줬다.

그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에 오른 당시는 세계사적 격변기였다. 2차대전·식민시대, 한국전이 막 내린 이후 미·소 냉전은 최고조였다. 무신론 공산주의가 지구 절반을 물들이고 그리스도 교회는 사분오열됐다. 자유·자본의 개방 풍조 속에 가족 붕괴, 이윤 추구, 진화론, 이혼·낙태, 교회의 부패, 동성결혼, 노조를 둘러싼 가치 혼란이 극심했다. 변화와 전통의 극한 대치 속 교회는 더 이상 세속의 양떼를 이끌기엔 힘이 부쳐만 갔다. 지금 우리의 보수정치처럼….

로마의 주교로 등극한 석 달 뒤. 요한 23세가 택한 해법은 62년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公議會)였다. 93년 만의 공의회 소집이었다. 온갖 피부색, 모든 교회의 주교·성직자와 좌우의 신학자 2540명을 불렀다. 시대의 문제, 시대가 보는 교회의 문제, 사람들의 불안과 갈망을 난상 토론해 새로운 교회의 길을 찾아보자는 도전이었다. 스스로를 고해하고, 재판하자는 결단이다. 교황만 빼곤 난리가 났다. 그의 절친인 밀라노의 몬티니 추기경조차 “이 성스러운 만년 소년은 자기가 말벌의 집을 들쑤시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교황청에 내걸린 사목(司牧) 슬로건이 ‘항상 그대로(semper idem)’였으니 말 다했다.

“혹 이게 악마의 유혹은 아닐까”라고 흔들리곤 했던 요한 23세의 당시 고뇌와 결단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암반 같은 보수의 변화엔 값진 원칙들이다. 우선 개방.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나쁜 공기도 들어오겠지만 그래야 신선한 공기가 들어옵니다.” 다음은 포용. “언젠가는 공산주의라는 골리앗도 하느님 뜻에 굴복할 겁니다. 그들을 교회의 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며, 교회에는 원래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변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박물관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삶이 충만하고 꽃이 만발한 정원을 가꾸기 위함입니다.” 진취적 도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진리를 무슨 숨겨놓은 보물인 양 지키는 데 급급하는 건 잘못된 길입니다.” “우리 대표자들은 섬이나 참호·성 안에 숨어 살려는 기질을 버려야 합니다.” “두려움과 선입견 없이 세상과 다시 만납시다.” 분명한 개혁의 목표. “교회가 사람들을 위해 말하지는 않고 교회 자체에 대해서만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개혁의 ‘취사선택’ 균형. “헐떡거리면서 세상의 뒤를 쫓아가지도 말고, 무비판적으로 세상에 박수를 보내지도 맙시다”(크리스티안 펠트만 『요한 23세』, 로리스 F 카포빌라 『교황 요한 23세』, 호르스트 푸어만 『교황의 역사』, 손희송 주교 『우리 시대의 일곱 교황』 등 발췌).

63년 요한 23세는 위암으로 선종했으나 유지를 이은 바오로 6세가 공의회를 마무리했다. 요즘 한국 가톨릭의 제사 수용, 모국어 미사, 사회정의·소수층에의 관심, 폴란드·쿠바 등 교황의 공산권 방문, 타 종교와의 화해·포용, 평신도 존중 등 숱한 변화가 그 성과였다. 요한 23세는 기적(奇蹟)을 행하지 않았음에도 6년 전 성인으로 시성(諡聖)됐다. 이 지난한 개혁에의 도전이 바로 ‘기적’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자 보수정치여. 스스로 말벌의 집을 들쑤셔야 할 때다. 끝장 시비! 끝장 토론! 대충대충 보수의 개혁이란 이 세상에 없다.

최훈 제작총괄 겸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