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여왕 “남편 공간 없는 집 부부사이 안 좋더군요”

중앙일보

입력 2020.06.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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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정리 전문가 정희숙씨가 1일 용산구 이태원동 블루스퀘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씨는 ’집을 보면 집주인의 행복도가 보인다“고 했다. 권혁재 기자

정리 전문가 정희숙씨가 1일 용산구 이태원동 블루스퀘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씨는 ’집을 보면 집주인의 행복도가 보인다“고 했다. 권혁재 기자

“이 일을 시작하면서 배운 게 죽음이었다.” 정희숙(49)씨의 직업은 정리 컨설턴트다. 정리를 의뢰받아 견적을 내고 집안의 큰 가구부터 속옷·양말까지 정리해준다. 2012년 회사 설립 후 정리한 집이 2000곳. 2013년부터 방송에 출연했고 최근 박명수·화사 같은 연예인의 집을 정리해주며 ‘정리의 여왕’ ‘정리의 달인’으로 불린다. 인스타그램 11만, 유튜브 10만 구독자에게 정리 비법을 설명한다.

집안 정리 컨설턴트 정희숙씨 #8년간 2000곳, 박명수·화사도 고객 #“침대 위에 선풍기 8대 둔 집도 봐 #행복하지 않으면 많이 쌓아두더라”

“집 정리 전 의뢰인과 견적을 내며 오래 얘기한다. 왜 정리하려 하냐 물으면, 죽음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남편이 아침에 나가 안 돌아왔다, 교통사고로’ ‘아내가 갑자기 떠났는데, 엄두가 안 난다’. 일가족 모두 세상을 떠난 집도 정리했다. 정리는 죽고 나서가 아니라, 살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대화 끝에 가족과의 갈등, 우울증, 강박증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우는 의뢰인들이 많다. “남의 집을 2000번 정리하고 나니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 때문에 힘들거나 행복한지 알게 됐다.”

어떤 집까지 정리해봤나.
“집에 물건이 너무 많아 부모님 댁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침대 위고 어디고 물건이 쌓였다. 침대 위에 선풍기 8대, 에어 프라이기 3대, 햇반과 라면 박스들, 장난감, 화장실 휴지가 가득했다.”
그런 집은 어떻게 정리하나.
“집을 정리하고 변화할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꼭 고객과 미팅할 때 정리하려는 이유를 먼저 묻는다.”
어떤 답이 많나.
“바꾸고 싶다고. 이렇게 살기 싫다고. 이혼, 자녀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도 있다. 사회적 위치에 맞추려 정돈한다는 이도 있다. 이런 얘기를 두어 시간 듣는다. 견적 내다가 고객들이 펑펑 운다.”
이야기를 길게 듣는 이유는.
“애가 몇살인지, 외벌이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에 따라 집 정리의 방향이 달라져서다. 특히 왜 정리하려 하는지 들어야 제대로 맞춰 준다.”
집 정리의 진행 방식은.
“직원이 15명이다. 30평대 기준 7명이 들어가 8~9시간 정리한다. 가구 배치를 안 할 경우다. 가구 배치를 바꾸면 10~12명이 이틀씩 하기도 한다. 비용은 평균 100만원 정도다.”
컨설팅에 나선 지 8년째, 한국의 집이 달라진 게 있다면.
“진짜 많이 산다. 집집이 같은 물건을 쌓아 둔다. 홈쇼핑 등 구매 경로가 비슷하다. 약콩이 유행이면 약콩, 같은 마스크팩, 옷.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물건을 많이 산다.”
일본 정리 전문가인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지침도 유명하다.
“그런 미니멀 라이프를 강조하지 않는다. 한국 같은 가족 중심 사회에서 물건을 다 버릴 순 없다. 집 안으로 뭐라도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 게 정리다. 빵 봉지 묶는 끈, 쇼핑백, 고무줄 같은 걸 너무 많이들 모은다. 특히 정 많은 한국 사람들은 물건을 더 못 버린다. 집에 있는 걸 활용하고, 덜 사야 한다.”

정씨는 최근엔 책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를 냈다. “양말 접기, 옷 색깔 맞춰 걸기는 정리의 1%도 안 된다. 특별한 정리 비법은 없고, 모든 걸 꺼내 분류해 다시 넣는 것이다. 다만 한꺼번에 하지 말고 오늘은 청바지, 오늘은 그릇 식으로 시작하라.”

정씨는 고교 졸업 후 19세부터 한복 매장 직원, 사무실 경리, 백화점 패션 매장 매니저로 일했다. 35세에 결혼한 후 40세에 “가족의 행복이 내 행복인 양 집착하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일을 찾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잠시도 앉아있지 않고, 청소기를 들고 다니며 정리하는 그를 보며 주변에서 정리를 직업으로 권했다.

그는 “정리하러 남의 집에 가보면 그 가족의 행복한 정도가 보인다”고 했다.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집착해 늘 같이 생활하고 다 큰 아이를 데리고 잠을 잔다. 아이 방을 제대로 만들어주면 그때부터 아이가 독립한다. 또 집안에 남편의 공간이 거의 없는 집은 십중팔구 부부 사이가 안 좋다.”

정씨는 “마음이 힘든 사람일수록 집이 어지러웠다”며 “집 정리를 단지 돈벌이로만 볼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의뢰받는 일 중 30% 정도만 수락한다. “남들은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사업을 키우라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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