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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값, 단군이래 최고"라는데…씁쓸한 한우 농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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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고기값이 단군 이래 최고가라잖아요. 소 값도 많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너무 비싸져서 갑자기 안 팔리면 어쩌나 걱정도 됩니다…."  지난 28일 전남 장흥군에서 소 1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 김석중(59)의 말이다. 재난지원금이 풀리면서 소고기 소비도 늘어난 덕분에 소 1마리 경매가가 800만원을 웃돌자 '금 송아지' 대접을 받고 있다.

소고기값 상승세속 한우 농가 가보니 #전남 최대 한우 주산지 장흥 소 경매가 800만원 #코로나19 사태 이전 대비 소 경매가 15~20% 올라 #소비자 가격도 1㎏ 9만7319원으로 역대 최고 가격 #소비 늘었다지만…"택배·소매 위주" 산지 식당 걱정

"소 1마리 경매가 800만원, 15% 올라"

김씨는 "우시장 경매에 나가면 700㎏짜리 살아있는 소 1마리가 800만원을 웃도는 가격에 팔린다"며 "소고기 소비가 늘면서 산지 소 경매가가 껑충 뛴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28일 전남 장흥군의 한 축산 농가에서 소가 사료를 먹고 있다. 최근 소고기 소비가 늘면서 장흥 우시장 소 1마리 경매가가 800만원을 웃돌고 있다. 장흥-프리랜서 장정필

28일 전남 장흥군의 한 축산 농가에서 소가 사료를 먹고 있다. 최근 소고기 소비가 늘면서 장흥 우시장 소 1마리 경매가가 800만원을 웃돌고 있다. 장흥-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소비가 줄었을 때 장흥에서 출하된 700㎏짜리 소 1마리가 1㎏당 1만원꼴인 700만원의 경매가를 받았던 것에 비해 최근 들어 한우 경매가는 15~20% 정도 늘었다.

장흥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소 값이 오르고 있다. 31일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소 유통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 29일 기준 1등급 한우 등심 1㎏ 소비자 가격은 9만7319원이다. 2011년 4월부터 유통가격 통계를 발표한 이후 역대 최고 가격이다.

산지 경매가도 뛰었다. 지난 29일 기준 600㎏ 소 1마리 경매가격은 802만7000원이다. 한 달 전인 지난 4월 27일 같은 무게인 600㎏ 소 1마리가 682만원에 거래됐던 것에 비해 100만원 이상 올랐다. 한우 산지에서 "단군 이래 최고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산지 판매 줄었는데 택배로 주문 늘어"

전남 장흥은 현재 1853개 한우 농가에서 5만2142두를 사육하고 있다. 장흥군 인구(3만8225명)보다 소가 더 많은 한우 주산지다. 유통 단계를 줄여 장흥 산지 식당에서 소고기를 싸게 사 먹을 수 있는 '장흥토요시장'이 명물로 손꼽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지 관광객이 줄어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전남 장흥군 장흥토요시장. 중앙포토

코로나19 사태 이전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전남 장흥군 장흥토요시장. 중앙포토

소고기 소비가 늘자 산지 식당도 관광객 손님이 돌아올 것이란 기대감이 나왔지만, 이곳 상인들은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한다. 장흥으로 나들이 와서 소고기를 싼값에 사 먹던 손님들이 코로나19 영향으로 외출 대신 택배로 주문해 집에서 받아먹는 소비 형태로 변했다는 것이 장흥지역 축산농가들의 이야기다.

전남 장흥의 한 소고기 음식점 사장은 "우시장만 가면 사람들이 소고기를 많이 사 먹는 통에 하루 다르게 가격이 뛴다는데 산지에서 체감이 안 된다"며 "우리 식당도 찾아오는 손님보다는 택배로 주문하거나 소매로 유통되는 물량만 늘었을 뿐"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여파…식당 대신 집에서 먹는 소고기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광렬(47)씨는 "손님 10명 중 7명은 재난지원금 카드로 소고기를 구매한다"고 했다. 생필품 성향이 강한 반찬용이나 국거리용 소고기보다 비싼 구이용 소고기를 사 가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28일 전남 장흥군의 한 축산농가에서 소들이 사료를 먹고 있다. 장흥 우시장은 최근 소 1마리당 경매가가 800만원을 웃돌고 있다. 장흥-프리랜서 장정필

28일 전남 장흥군의 한 축산농가에서 소들이 사료를 먹고 있다. 장흥 우시장은 최근 소 1마리당 경매가가 800만원을 웃돌고 있다. 장흥-프리랜서 장정필

코로나19 사태 이후 집에서 외식용 소고기를 즐기는 손님이 늘어난 영향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때부터 집에서 외식하듯이 구이용 소고기를 찾는 손님이 꾸준히 있었다"며 "소비가 늘면서 가격도 올라 코로나19 이전 1㎏당 9800원이었던 소 갈빗살이 1만 2000원대로 올랐다"고 했다.

치솟는 가격에 소비 줄까 걱정도

소고기 가격이 연일 고공행진 중이지만, 축산농가들의 마음은 편하지만은 않다. 식당에서 먹는 소고기 가격이 크게 오를 경우 소비가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사료와 인건비 걱정도 뒤따른다.

28일 전남 장흥의 한 축산농가에서 농민이 건초를 먹이고 있다. 장흥-프리랜서 장정필

28일 전남 장흥의 한 축산농가에서 농민이 건초를 먹이고 있다. 장흥-프리랜서 장정필

김석중씨는 "우리 축사 사룟값만 1000만원 정도 드는데 4월부터 가격이 5% 올랐다"며 "외국인 노동자 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뒤따를 인건비 부담도 있어 갑자기 소비가 줄어들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풀 죽었던 돼지 값도 회복

돼지고기도 소비가 늘면서 산지 돼지 값이 올랐다. 지난해 말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퍼질 당시 1마리당 23만원까지 폭락했던 돼지 값이 현재는 4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돼지 유통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돼지 1마리(110㎏) 산지 가격은 45만원이다.

31일 전남의 한 도축장에 출하를 앞둔 돼지고기들이 걸려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31일 전남의 한 도축장에 출하를 앞둔 돼지고기들이 걸려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박문주 대한한돈협회 무안지부장은 "18개월 만에 보는 40만원대 돼지 값"이라며 "최근 재난지원금 등으로 인해 소비가 늘자 산지 돼지 값도 영향을 받아 회복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장흥=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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