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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나오기 힘든 교묘한 거미줄…성착취 현실 그린 드라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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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호 02면

‘인간수업’ 드라마로 본 청소년 범죄

전문가들은 드라마 ‘인간수업’이 성착취 범죄를 둘러 싼 구조적 문제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날로 교묘해지는 성착취 범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 넷플릭스]

전문가들은 드라마 ‘인간수업’이 성착취 범죄를 둘러 싼 구조적 문제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날로 교묘해지는 성착취 범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에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착취 범죄에 연루된 이들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빠져들게 되면서 펼쳐지는 극적인 상황을 그려냈다. 지난달 29일 처음 공개된 이 드라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시청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화제를 모았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와 배우들의 호연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현실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와 범죄 미화나 폭력적인 장면이 보기 불편했다는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내신 1등급 모범생 ‘은밀한 부업’ #10대 또래 성매매 알선 이미 현실 #인터넷 익명성이 범죄 투명망토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기도 #아동·청소년 성착취 조직·지능화 #공소시효 늘리고 처벌 강화해야

총 10회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매회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자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을 알고 계신다면,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세요’라며 청소년상담전화 1388(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운영)을 소개한다.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드라마 내용은 현실과 얼마나 닮아있을까. 또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뭘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소수연 상담연구부장, 다시함께상담센터 김민영 소장,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드라마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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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신 성적 1등급. 벌점도 경고사항도 없는 모범생 오지수(김동희). 그러나 지수에게는 비밀이 있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익명 채팅창을 확인하는 지수. “조건가능?” 상대의 전화번호를 ‘구매자 리스트’에서 검색해 블랙리스트 여부, 매칭 실적, 특이사항을 확인한 뒤 ‘판매자’ 단톡방에서 일거리를 원하는 여성과 연결한다. 지수의 비밀을 알게 된 또 다른 모범생 배규리(박주현)가 끼어들면서 사업(?)은 판이 커진다.

이현숙 대표(이하 이)= 청소년이 또래 청소년을 이용해 착취하는 일은 이미 많이 일어나고 있다. 성인이 청소년들을 끌어들이며 ‘너는 걸려도 처벌 안 받는다’고 하기도 한다. 수요가 있으니 성착취 산업이 유지되고, 계속해서 콘텐트를 만들기 위해 이용되는 여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취약한 아동·청소년을 끌어들이는 거다.

김민영 소장(이하 김)= 그동안 수많은 랜덤채팅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그로 인한 피해 사례가 많았다. 성인 인증, 본인 인증을 거치지 않은 랜덤채팅을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한 게 불과 올해 들어서의 일이다. N번방 사건에 배후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는데, 배후가 없어도 얼마든지 가능한 게 현실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이 장점도 있지만 범죄 의도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투명 망토 역할을 한다. 청소년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렇다. 성착취 피해자였던 청소년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2 오지수와 같은 반인 서민희(정다빈)에게도 비밀이 있다. 학교 일진인 남자친구 김기태(남윤수)에게 비싼 선물을 주고 데이트 비용도 내는 민희는 조건만남으로 돈을 벌고 있다. 어느 날 위험천만한 상황에 빠졌던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조건만남을 하기 힘들어진 민희. “이제 일을 그만두라”는 말에 민희는 말한다. “조건도 안 하면 난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소수연 부장(이하 소)= 민희가 지금과 같은 삶을 끝내고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자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주변 친구나 어른이 있어야 한다. 특히 성과 관련된 얘기는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기다려 주면서 믿음을 쌓는 게 필요하다.

= 사람들이 흔히 ‘성매매’라고 간단하게 말하지만 그 안에는 복잡하고 예측 불가한 많은 과정이 함축돼 있다. 거래 조건을 내걸고 자신의 가격을 매기고 만나는 장소를 정하는 등 지난한 협상의 과정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성매매에서는 파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가장 취약하다. 성매매 시장의 판을 움직이는 이들은 따로 있다. 극중에서 민희를 둘러싼 연결망들을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다른 어떤 범죄의 피해자에게도 ‘자발적’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데 유독 성범죄에서만 그 단어가 나온다. 자발적 포주라고는 왜 안 하나.

= 개인의 성적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고 거대한 산업이다. 청소년기는 ‘관계’에 취약한 시기다. 평소에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데 성적인 표현을 하면 관심을 가져주니까 그쪽으로 빠지게 되기도 한다. 극중 규리가 애쓰며 살아온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이 있다. 아이들은 결국 그런 게 필요했던 건 아닐까.

#3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까지 치달은 지수는 담임교사(박혁권)에게 묻는다. “쌤도 그래본 적 있어요? 버텨본 적? 진짜 이러다 퍽 하고 터질 거 같은데 그래도 버티는 거. 졸라게 혼자서.” 교사는 대답한다. “나는 운이 좋았어. 터진 걸 수습해줄 사람이 있었거든. 그때까진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줄도 몰랐었어. 내가...수습해주랴?”

= 여러 상담 사례를 보면서 느끼는 건 가장 빨리 말하는(털어놓는) 게 가장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거다.

= 우리나라는 성매매 집결지가 아직도 존재하는 나라다. 산업화된 성착취 실태를 경찰이 너무 모르고, 누군가 죽거나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개입한다. 드라마에서도 결국 사건을 못 막지 않나.

= 성폭력 피해자에게 신체적 피해보다 더 힘든 건 정서적·심리적 피해다.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자신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도 나타난다. 인생이 끝난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돼 자살·자해로 이어지기 쉽다. 혹시라도 학교에 소문이 날까봐 친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한다. 연구 결과를 보면 성폭력 피해 경험은 아주 뒤늦게, 보통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말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공소시효를 늘려야 한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녀가 피해를 입었을 때는 부모가 자신도 모르게 2차 가해를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가 그때 나가지 말랬는데 왜 나갔니,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니까 그렇지’ 등의 비난을 하지 않아야 한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그 사건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닌, 지나가는 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게 좋다.

‘삼촌·이모’라고 불러 가족처럼 위장하는 성착취 집단

드라마 ‘인간수업’에서 지수는 조건만남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비해 이왕철(최민수)을 고용한다. 규리는 왕철을 ‘바지사장’이라고 부르지만 지수는 ‘동업자’라고 항변한다. 지수는 말한다. “포주라니? 내가? 경호업자지. 클라이언트 의뢰받고 물리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지, 고객관리 대리해주지, 픽업 중개하지. 이게 어떻게 포주야?”

이에 대해 김민영 다시함께상담센터 소장은 “호명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적인 호칭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성착취로부터 빠져나가기 어렵게 한다. 민희가 왕철을 부르는 호칭이 ‘실장님’에서 ‘영감님’으로, 더 나아가 ‘아저씨’로 변하는 걸 볼 수 있다. 왕철에게 점차 의지하게 되는 민희의 감정 변화를 상징한다. 실제 성매매 업소에서도 언니, 이모, 삼촌 등으로 부르며 가족처럼 집단을 구성한다. 지수가 자신을 경호업자로 부르는 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명분을 만들며 문제의 핵심을 숨기는 것이다. 여성들을 경호한다는 건 본인도 위험성을 알고 있다는 뜻이고, 어찌됐든 이익을 취하는 게 목적이라는 얘기다. 김 소장은 “원조교제·조건만남을 청소년 성착취라고 부름으로써 명확하게 본질을 짚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착취 산업은 카르텔을 형성해 조직적·지능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국제적으로도 마약이나 총기 거래보다 위험이 적다는 점 때문에 아동 성착취를 이용해 자금을 만들어내는 사례가 많다. 가상화폐가 발달하면서 추적도 힘들어졌다. 성착취가 근절되려면 산업이 망해야 하고 그러려면 수요가 없어야 한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음란물을 보는 게 개인의 자유로만 치부될 수 없는 이유도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성착취의 수법은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고민을 들어주면서 만나자고 하는 식으로 접근한다. 아이들은 상대가 친절하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속게 된다.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사람이 내게 피해를 입히면 분노의 감정만 생기는 게 아니라 좋았던 감정도 남아있게 된다. 피해자가 감정을 정리하는 데 더욱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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