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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위안부 행세" 막말 등장···피해자 두번 울리는 음모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 발표를 하던 중 기침을 하고 있다. 뉴스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 발표를 하던 중 기침을 하고 있다. 뉴스1

‘짜고 치는 기자회견 아니냐.’

‘(할머니) 연세가 많아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25일 두 번째 기자회견을 하던 당시 이를 생중계하던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이다. 이 할머니가 7일에 이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그리고 정의연 이사장직을 맡았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혐오표현과 가짜뉴스가 쏟아졌다.

“배후 세력 있다”는 '음모론'

지난 2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차 기자회견을 연 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할머니를 향한 가짜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지난 2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차 기자회견을 연 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할머니를 향한 가짜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가장 눈에 띄게 등장한 건 이 할머니를 뒤에서 조종하는 배후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이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적폐들이 기술 들어간 거로 보인다. 할매는 자기가 이용당하는 것도 모른다” “저 나이 어르신들 옆에서 꼬드겨서 고집부리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 말 안 듣는다” 등의 댓글이 수십 개씩 올라왔다.

온라인만이 아니다. 실제 방송인 김어준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누군가 자신의 입장을 반영한 왜곡된 정보를 이 할머니에게 줬다”면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를 지목했다. 그는 “그 연세 어르신이 쓰는 용어가 아닌 시민 단체들이 조직을 이끌 때 쓰는 단어가 있다”며 “최 대표의 논리가 사전 기자회견문에도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 할머니의 수양딸 곽모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머님의 구술을 제가 문안으로 정리했다”면서 “제 역량을 이리도 크게 알아주시니 김어준씨께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어머니가 고민해 제기한 문제를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몰았다.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늙은이로 치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욕 행위”라고 비판했다.

“연세 많아 기억력 달라졌다”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 뉴스1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 뉴스1

사건의 정점에 선 윤 당선인은 이 할머니의 기억력이 달려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이 할머니의 첫 기자회견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오전 이용수 할머니와 통화하던 중 할머니 기억이 달라져 있음을 알았다”며 “2015년 12월 28일 한일 합의 당시 박근혜 정부가 10억엔을 받는 것을 당신만 몰랐다고 (했다)”고 적었다.

기억 왜곡 가능성을 시사한 이런 주장은 ‘실체적 증거 없이 할머니들의 기억에만 의존해 진술되는 위안부 강제동원 역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일본의 극우 세력 논리와 결이 유사해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25일 이 할머니가 직접 등장한 기자회견 직후 박지원 민생당 의원은 “원고도 보지 않고 저렇게 논리정연하게 말씀하실까 놀랐다”며 “기억력 등 이상한 매도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 위안부 행세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의혹을 제기하고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을 강도 높게 비판한 가운데 26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앞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의혹을 제기하고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을 강도 높게 비판한 가운데 26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앞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 할머니가 ‘피해를 당하지 않았는데 위안부 행세를 했다’는 가짜뉴스도 등장했다. 이런 주장은 지난 8일 윤 당선인이 페이스북에 “1992년 이 할머니께서 신고 전화를 했을 때 ‘저는 피해자가 아니고 제 친구가요’ 하던 때의 상황을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다”는 글이 불을 지핀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 할머니는 25일 기자회견에서 “차마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 저 자신이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인 것처럼 당시 정대협 피해를 접수했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근거 없는 비난이 도를 넘자 27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441차 수요집회를 연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이용수 인권운동가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제발 멈춰달라”며 “이것이야말로 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호소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본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건 옳지 않다”면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한 것은 기존 방식이 잘못됐다는 판단에서 시작된 거다. ‘피해자다움’을 내세우며 도덕적 판단을 하기에 앞서 우선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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