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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몰리고 로봇도 활용, 성수 수제화 골목 달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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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22일 서울 성수동 성동지역경제혁신센터 공방에서 청년들이 정영수 수제화 명장으로부터 신발 제작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성동구]

지난 22일 서울 성수동 성동지역경제혁신센터 공방에서 청년들이 정영수 수제화 명장으로부터 신발 제작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성동구]

“좋은 신발은 실밥 끝이 안보여야 돼요.”

최근 청년들 제작기법 배우러 와 #지자체선 무료로 교육도 나서 #수제화 작업에 로봇도 활용 #자세교정 돕고 가죽 밑창 재단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성수동 성동지역경제혁신센터 수제화 공방. 정영수(65) 수제화 명장이 봉제선을 내보이며 말을 하자 마스크를 쓴 학생들 눈빛이 반짝였다. 정 명장이 재봉틀 앞에 앉았다. 찰나를 놓칠까 학생들이 앞다퉈 스마트폰을 꺼냈다. 재봉틀 돌리는 장면을 녹화하기 위해서다.

서울 성수동 수제화 골목이 변하고 있다. 변화의 동력은 청년이다. 공구상가 사이에 멋들어진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데이트 장소’로만 이곳을 찾던 젊은이들이 수제화(手製靴) 명맥 잇기에 도전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1970년대 들어 수제화 업체들이 하나둘씩 공구상가가 있던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 성수 수제화의 시작이었다. 칼날을 쥐고 두꺼운 가죽과 신발 밑창을 오리고 박음질을 해야 하는 지난한 수제화 작업은 노동집약의 극치였다. 하지만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품에 밀린 수제화는 갈 곳이 없었다. 공방엔 머리가 희끗한 60~70대 제작자만이 남았다. 그랬던 이곳에 최근 몇년 새 청년들이 수제화를 배우겠다며 몰려든 것이다.

수제화를 만드는 김기현 아톤슈즈 대표가 자세교정 로봇을 작동해 보이고 있다. [사진 성동구]

수제화를 만드는 김기현 아톤슈즈 대표가 자세교정 로봇을 작동해 보이고 있다. [사진 성동구]

바탕을 만든 건 성동구청이었다. 김범철 성동구 기업활성화팀장은 “공방을 지키는 60~70대 어르신 제작자들이 모두 은퇴하면 성수 수제화가 이러다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었다”고 했다. 성동구는 수제화 장인에게 직접 배울 수 있는 청년대상 수업을 열기 시작했다. 2016년 첫 교육을 했다. 일년에 두차례 5~6개월씩 가르친다. 과정은 무료로, 10만원 정도인 재료비만 학생이 낸다. 지난해까지 졸업생은 100여 명에 이른다.

올해는 취업 연계도 시작한다. 심화반을 졸업한 청년이 원할 경우 수제화 공방 취업을 연결해 주기로 했다. 인기도 높다. 센터 관계자는 “올해 30명 모집에 40명이 지원해 면접을 따로 볼 정도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오윤구(31·남)씨는 수제화 공부 3년차 학생이다. 구두가 좋아 대학 졸업 후 수제화 제작의 길에 뛰어들었다. 그는 “교육을 마치고 제작자의 길을 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 명장은 “성수동에 가도 (수제화)배울 게 없다는 말이 안나오도록 시간을 내서 청년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강단에 선 이유를 털어놨다.

공방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서울디지털재단은 지난 3월 수제화 공방에 3대의 ‘로봇’을 지원했다. 이 중 2대의 로봇을 공방에 들인 건 아톤슈즈의 김기현(30) 대표다. 그의 손 곳곳엔 작업 중 생긴 흉터가 있다. 두꺼운 깔창을 칼로 오리기 위해선 양 허벅지 사이에 끼고 자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칼날이 헛나가면 종종 큰 사고로 이어진다. 재단은 아이디어를 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한 ‘협동 로봇’을 만들어 작업장의 사고 위험을 줄여보기로 했다. 한소영 디지털재단 기업협력팀 선임은 “수제화 특성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작업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 대표가 쓰고 있는 것은 작업자의 허리가 구부정하지 않도록 돕는 자세교정 로봇과 초음파로 가죽 밑창 등을 잘라주는 안전로봇이다. 김 대표는 태블릿PC처럼 생긴 조절판으로 작업 동선을 로봇에게 ‘가르쳐’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수제화 골목에서 뜻을 함께하는 청년사업가 10명과 조합도 만들었다. 이 로봇을 연말께 조합에 공유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이 로봇을 가지고 놀면서 쓰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도 나올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김 대표는 “젊은 사람들이 성수동에 많이 놀러 오는데, 이제는 더 많은 젊은 층이 수제화를 배우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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