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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 세트, 임영웅 샴푸…‘팬덤의 아들’ 굿즈 무한 진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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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굿즈 전성시대

1 칠성사이다 향수 ‘오 드 칠성’, ‘유미의 세포들’ 인형, ‘호랑이형님’ 인형, ‘오페라의 유령’ 음료, 펭수 다이어리.(상자 안 왼쪽부터 시계방향)[사진 칠성사이다·네이버 웹툰·클립서비스·EBS] 2 임영웅 팬이 직접 제작한 슬로건. [사진 트위터@MYHERO_WOONG] 3 을유 문화사 세계문학전집 리커버 에디션 굿즈. [사진 을유문화사]

1 칠성사이다 향수 ‘오 드 칠성’, ‘유미의 세포들’ 인형, ‘호랑이형님’ 인형, ‘오페라의 유령’ 음료, 펭수 다이어리.(상자 안 왼쪽부터 시계방향)[사진 칠성사이다·네이버 웹툰·클립서비스·EBS] 2 임영웅 팬이 직접 제작한 슬로건. [사진 트위터@MYHERO_WOONG] 3 을유 문화사 세계문학전집 리커버 에디션 굿즈. [사진 을유문화사]

지난 1월 뮤지컬 ‘신비아파트 시즌 3: 뱀파이어왕의 비밀’이 공연된 유니버설아트센터 로비는 발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신비아파트’ 굿즈(goods·대중문화 관련 파생 상품)를 판매하는 팝업스토어에 몰린 인파다. ‘신비아파트’는 최근 타깃 시청률 8.04%로 CJENM 투니버스 개국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애니메이션으로, 매년 제작되는 뮤지컬도 평균 객석점유율 98%를 기록하며 가족 뮤지컬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시즌 공연 매출의 약 30%가 굿즈 판매액이었다는 점이다. ‘신비아파트’ 콘텐트의 팬덤이 고스란히 굿즈 판매로 이어진 것이다.

무료 기념품 넘어 시장 주인공으로 #SNS 경험 공유 문화가 열풍 불러 #“소비 넘어 취향 공동체로 진화” #브랜드와 협업, 한류 마케팅도

어린이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다. 팬덤이 있는 곳에 굿즈가 있다. 요즘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직통령’으로 통하는 펭수와 관련된 굿즈가 상종가다. 지난 연말 출시된 ‘펭수 다이어리’는 교보문고에서 출간 첫 주 8만부 넘게 팔렸다. 패션브랜드 SPAO와 콜라보한 일부 상품은 출시 3시간 만에 완판됐고, GS25의 ‘화이트데이 펭수세트 3종’도 디데이 5일전에 한정수량 8만개가 다 팔렸다. 웹툰 인기가 높아지며 네이버 웹툰의 공식 굿즈를 판매하는 ‘네이버 웹툰 프렌즈’ 스토어에서는 수요웹툰 1위 ‘유미의 세포들’ 굿즈가 팝업스토어를 여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유미의 세포들’ 등 웹툰 굿즈숍도

콘텐트와 굿즈는 실과 바늘같은 사이가 됐다. 굿즈는 아이돌 팬덤에서 은어처럼 쓰던 단어지만, 이제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팬덤 문화가 확산되면서 시장도 덩달아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 굿즈 시장 규모는 이미 연간 1500억원을 넘어섰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다. ‘미스터트롯’ 전국투어 콘서트는 투어를 앞두고 공식 굿즈를 판매중이고, 임영웅을 모델로 기용한 홈쇼핑 판매 화장품·샴푸 등도 굿즈 마케팅으로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넷쇼핑몰 11번가는 지난해 9월 송가인 얼굴이 들어간 소주잔 세트, 고급 수저세트 등을 단독 한정 판매해 인기를 끌었다. 11번가에 따르면 송가인 굿즈 주요 소비층은 40~50대가 대부분이었다.

이제 굿즈는 기념품을 넘어 시장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콘텐트를 상품화해서 소유하는 경향은 시장 구도를 바꾸고 있다. 특히 출판 시장에서 뚜렷하다. 2015년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위기를 맞은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고품질 굿즈 증정으로 돌파구를 찾으면서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굿즈샵을 낸 것이 시초다. “인터넷 서점에서 굿즈로 준다는 맥주잔이 탐이 나서 그만 내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는 김영하 작가의 트윗도 상징적이다.

뮤지컬 '신비아파트' 팝업스토어에 몰린 인파 [사진 CJENM]

뮤지컬 '신비아파트' 팝업스토어에 몰린 인파 [사진 CJENM]

책 자체를 굿즈화하기도 한다. 지난 2월 을유문화사는 세계문학전집 100권 출간 기념 한정판 리커버 에디션 5종을 출시하며 추상화풍의 예술적인 책커버와 일관된 디자인의 굿즈 이벤트를 벌여 3000부가 거의 소진됐다. 을유문화사 정상준 주간은 “굿즈는 출판 시장의 새로운 맥락이다. 실용성보다 대세를 따르는 쪽으로 소비 패턴이 바뀌면서 굿즈가 책을 사야 하는 이유가 됐다”고 전했다.

열풍의 원인은 콘텐트를 일상에서 소유하고픈 욕구로 풀이된다.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장인 샤롯데씨어터에서 주연 배우 김준수 굿즈를 다량 구입한 한 팬은 “울 오빠랑 관련된 건 일단 사고 보는데, 수집 목적도 있지만 실용적인데다 디자인도 예뻐 평소에도 사용한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차경욱 교수는 “최근 일상생활에서도 나만이 가진 가치를 소비하는 경향이 보인다. 문화를 소비하는 사회가 되면서 콘텐트 소비자들이 굿즈 수집을 통해 콘텐트에 몰입하며 또 다른 만족감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팬덤의 니즈가 굿즈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뮤지컬 ‘시라노’의 자수 손수건이 대표적이다. 공연 관람 후기에서 “눈물 닦을 손수건을 굿즈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반영한 사례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니즈를 집결시키기도 한다. 지난 연말 이상규 작가의 웹툰 ‘호랑이형님’은 캐릭터 ‘무케’ 인형의 텀블벅 펀딩에서 목표금액 500만원의 20배에 가까운 9200여만원(1841%)을 모았다. CJENM 박종환 홍보마케팅팀장은 “팬들은 작품이 지닌 감성을 갖고 싶어한다. 작품의 여운이 추억으로 연결되고, 대부분 한정판매인 만큼 소장가치도 크다”고 전했다.

SNS로 경험을 공유해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문화도 한 몫하고 있다. 그런 니즈를 파악해 굿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물건의 범위를 넘어서기도 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김풍 작가와 협업해 가면 컨셉트 피자를 만들고, 배스킨라빈스 매장을 ‘오페라의 유령’ 컨셉스토어로 꾸민 것도 SNS를 통한 자발적 홍보를 노린 기획이다. 클립서비스 신유미 마케팅팀장은 “경험을 SNS 이미지로 공유하는 트렌드를 고려했다. 가면 같은 한 장의 사진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강렬함을 살린 콜라보”라고 밝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광고대행사 HS애드의 소셜 빅데이터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이후 SNS상에서 ‘굿즈’의 언급량이 가파른 상승세다. 2014년까지 없었던 ‘페미니즘’‘대통령’ ‘후원금’ ‘참여’ 등의 단어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 굿즈가 SNS를 만나 개인의 정체성이나 사회적 가치까지 내포하게 된 것이다. HS애드 김성호 커뮤니케이션팀장은 “굿즈 소비의 진화는 SNS를 통한 자기표현과 타인과의 공감대 형성을 근간으로 한다. 개인적 만족을 위한 소비를 넘어 취향공동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대중의 욕망이 열풍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팬심으로 굿즈를 사지만, 굿즈가 팬심을 부르기도 한다. SNS를 통한 공유가 콘텐트 홍보로 이어지는 흐름이 일반화되면서 브랜드와 기업을 대표하는 굿즈까지 등장했다. 칠성사이다가 70주년 기념 향수를 출시하고, 세탁업체 크린토피아가 차은우 굿즈 마케팅으로 매출 30%가 상승한 식이다. 차경욱 교수는 “초기 아이돌 팬덤이 자기들만의 굿즈를 직접 만들어 정체성을 드러냈다면, 소비자들의 가치소비와 공유문화에 대한 니즈를 기업이 포착해 마케팅수단으로 삼으면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아트 굿즈’ 개발 팔 걷어

굿즈가 ‘덕후’ 양성의 미끼로 포지셔닝되면서 순수예술계도 움직이고 있다. 국립극장은 지난해 70년 역사상 최초로 굿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세종문화회관이 지난해 ‘극장 앞 독립군’ 기념 굿즈로 제작한 ‘고려인 기억상자’는 세계 최대 디자인 대회인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정부도 ‘아트굿즈’ 개발에 나섰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7년부터 민간 예술단체와 제작업체를 매칭시켜 굿즈를 개발하는 ‘예술상품 유통채널 다각화 지원사업’은 공모를 통해 총 139개 단체의 개발 및 유통을 지원했다. 지난해 오프라인 팝업스토어 ‘아트굿즈 편의점’에 참여한 이상원 작가는 “현대미술 작가로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목적에서 굿즈를 제작해 왔는데, 팝업스토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작품 홍보가 많이 됐다”고 전했다.

김영빈 예술경제지원본부 주임은 “지난해 개발한 굿즈는 퐁피두센터, 모마 등 해외 유명 미술관에 입점됐다. 올해는 상품 기획부터 유통, 홍보까지 교육해 시장에 자생적인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해외 예술기관은 담당 부서가 따로 있고, 수익금으로 건물 환경을 조성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아트굿즈 시장을 적극 개척하면 콘텐트만으로 자생이 어려운 예술계에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엔 콘텐트와 브랜드의 적극적인 콜라보로 판이 커지고 있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은 지난해 휠라·비이커·GS25·신세계TV쇼핑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했고, 최근 론칭한 슈펜과의 콜라보 상품은 오픈 당일 품절됐다.

굿즈 콜라보는 기업의 한류 마케팅으로도 이어진다. 한류계 ‘3B’로 꼽히는 봉준호·BTS·아기상어(Baby shark)가 대표사례다. 영화 ‘기생충’ 덕에 농심의 짜파게티와 너구리가 아마존에 진출했고, VT코스메틱이 출시한 BTS 콜라보 향수는 론칭 2시간 만에 완판됐다. 유튜브 최다 조회 영상 2위인 스마트스터디의 ‘핑크퐁 아기상어’는 지난해 250종의 라이선스 굿즈를 출시했는데, 아기상어 사운드 인형은 아마존의 토이& 게임 분야 1위, 아기상어 시리얼은 미국 월마트 시리얼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차 교수는 “요즘 굿즈는 상징적 소비를 넘어 기능을 고려하는 제품으로 확대되는 추세”라며 “문화 콘텐트도 신뢰받는 기업과 콜라보하는 단계로 진행된다면 장기적으로 문화산업 발전에도 도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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