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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트럼프 유별난 말라리아약 사랑···브라질선 11명 숨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선 의료진들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나 역시도 지금 (그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약이 좋다고 생각해서 2주 전부터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깜짝 발언'이 또 나왔다. 이번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레스토랑 업계와의 만남에서 말라리아 약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먹는다고 고백했다. 이는 국내외에서 에이즈 약(칼레트라), 에볼라 약(렘데시비르) 등과 함께 코로나19 치료에 주로 쓰는 약 중의 하나다.

최근 백악관 내부에선 코로나19 확진자들이 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대변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의 개인비서 등이 감염됐다. 비상이 걸린 백악관은 지난 11일 뒤늦게 마스크 의무 착용 방침을 내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마스크를 끝까지 착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예방' 차원에서 말라리아 약을 꾸준히 먹어온 것이다. "의사가 이 약을 추천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원한다면 복용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본인 의사에 따른 결정인 셈이다.

고글을 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고글을 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비판 여론에도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애정 과시

대통령의 가벼운 한마디에 언론과 의료계는 들썩였다.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말라리아 약이 그렇게 좋다면, 곧 낙타 오줌도 먹겠네"(워싱턴포스트)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보수 매체 폭스뉴스도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각을 세웠다.

이에 대해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점차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치료 효과에 대한 의문이 쌓이는 상황"이라면서 "코로나 유행 초기에는 효과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최근에는 효과가 없고 오히려 부작용이 있는 쪽으로 흘러가는 연구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ㆍ감염병연구소장도 "코로나 치료에 효과 있다는 명백한 증거는 아직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에도 "평판이 좋은 이 약은 안전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준다"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고집 뒤엔 하이드록시클로로퀸에 대한 유별난 관심이 깔렸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브리핑마다 약의 치료 효과를 예찬했다.

지난 3월 23일 "이 약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커다란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약 복용의 의학적 근거를 물어보는 기자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문가들의 경고보다 주변 친구ㆍ지지자 의견을 더 귀담아듣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러나 예방약으로서의 효과는 연구 논문조차 없는 상황이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예방 효과는 의학적으로 증명이 안 됐다.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대량 복용하면 심장 쪽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크다. 브라질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에선 환자 11명이 부정맥 등 부작용으로 숨지기도 했다. 엄 교수는 "부정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심장질환이 있는지 모르고 오랫동안 약을 먹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말라리아 약이지만 다른 질병 치료용으로 사용되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 [AP=연합뉴스]

말라리아 약이지만 다른 질병 치료용으로 사용되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 [AP=연합뉴스]

코로나 예방보다 '사재기' 위험 클 듯 

트럼프발(發) 충격파는 코로나19에 한정되지 않는다. 전문가 사이에선 일반인의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사재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통령의 발언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말라리아 약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루푸스, 피부근염 등 자가면역질환 치료용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지난달 품귀 현상이 나타나면서 해당 환자들이 불안에 떨었다. 재닛 우드콕 미 식품의약국(FDA) 약물평가·연구센터장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환자들을 위해 꼭 필요한 약이고, 약 복용이 어려워지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트럼프처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강조하는 지도자는 남미에 또 있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보건부 지침을 바꿔 약 사용을 늘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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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한 달 만에 장관 두 명이 옷을 벗었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사용, 사회적 거리두기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루이스 엔히키 만데타 보건장관은 지난달 16일 사임했다. 후임으로 온 네우손 타이시 장관 역시 약 복용을 반대하다 15일 직을 던졌다. 만데타 전 장관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국민의 일터 복귀를 위해 약 사용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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