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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曰] 정글 속 상아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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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호 30면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맥머레이대 폐교(MacMurray COLLEGE CLOSURE)’. 홈페이지 문구가 짠하다. 1846년 미국 일리노이주에 설립된 174년 전통의 대학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남북전쟁과 대공황, 세계대전, 글로벌 금융위기도 버텨냈으나 바이러스에 무너졌다. 갑작스러운 원격강의 전환 등으로 지출은 급증한 반면, 학생 등록과 기부금은 급감해 살림이 거덜났다. 로저스 총장은 “팬데믹이 희망을 날려버렸다. 봄학기가 끝나는 5월 중 영구 폐쇄한다”고 선언했다. 둥지를 잃은 학생들은 타 학교 입양을 추진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코로나19가 대학을 한계점(breaking point)으로 내몰았다”고 보도했다.

재정난 미국 대학 첫 폐교에 등록금 소송 #우린 더 비상, 8031억 혁신비 잘 활용을

미국에선 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소송도 줄을 잇는다. 코넬대·컬럼비아대·조지워싱턴대 등 50곳이 넘는다(블룸버그통신). 영국도 못지않다. 대학연맹 측은 “대학 4분의 3이 재정위기에 몰려 3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직을 막으려면 9조5000억원이 필요할 거란 추산이다.

고등교육 선진국 대학들도 정글 속 생존 경쟁에서 스러지는 데 우리는 어떤가. 아직 자진 폐교를 선언한 대학도, 등록금 반환 소송이 제기된 대학도 없기는 하다. 다행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살얼음판이다. 도미노로 우르르 깨지는 건 시간문제다. 지방대는 간당간당하다.

지난가을 찾았던 충청권 A대학. 대형버스가 꼬리를 물고 들락거렸다. 강남·강서·인천·수원·평택·청주·충주…. 푯말을 보니 영락없는 시외버스 터미널이다. 오후 5시30분, 학생들이 대부분 빠져나갔다. 썰렁했다. 말로만 듣던 장거리 통학 풍경이다. 온라인 강의로 올봄엔 그런 풍경이 사라졌다. 학생도, 버스도 없다. 지역 상권은 초토화됐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학생이 진짜 사라지고 있다. 금기(禁忌)였던 신입생 첫 학기 휴학이 허용되자 엑소더스가 이어진다. 신입생 30% 이상이 휴학 상태다. ‘인서울 대’를 목표로 반수 하는 학생들이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A대학만이 아니다. B대학, C대학 수두룩하다. 수도권도 안심 못 한다. 심지어 SKY대 공대생 상당수가 반수를 한단다. 개학이 다섯 차례나 연기돼 고3 동생들이 죽 쓰니 의대로 갈아탈 기회라는 계산에서다. 학원에 물어보니 사실이었다. 이나저나 사교육의 생명력은 질기다.

현재로선 언제 학교가 정상화될지 아무도 장담 못 한다. 돈줄이 마른 대학들은 한국판 맥머레이대를 막아 달라며 교육부에 읍소한다. 12년째 등록금 동결, 코로나 재정 손실, 등록금 반환 요구, 학령인구 감소 등 ‘4중고’ 비상사태를 고려해 숨통을 터 달라는 것이다.

숨통은 대학혁신지원사업이다. 교육여건·재정건전성·혁신전략 등을 평가해 올해 143개 대학에 8031억원을 지원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대학당 평균 56억원 규모다. 돈은 커리큘럼 혁신과 핵심역량 개발 등 특정 용도에만 써야 한다. 창업교육·산학협력·해외연수처럼 현 상황에선 무용지물인 항목도 잡혀 있다.

그런 예를 들며 대학들은 올해만 용도 꼬리표를 떼 달라고 요구한다. 자율적인 생명수로 쓸 테니 검증은 나중에 해 달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요구다. 코로나 고등교육 추경예산이 겨우 18억원(온라인 강의 지원)뿐인데 8031억원은 생명줄 아닌가. 교육부는 기획재정부와 적극 협의해 유연하게 숨통을 터 줄 필요가 있다. 대학에 한 번만이라도 우군이 돼 보라.

대학도 정신 차려야 한다. 기강부터 다지라. 교직원은 그린피 40%를 깎아주는 어떤 골프장의 주중 고객 절반 이상이 교수라고 한다. 골프장 측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직원은 또 학교 주인인 학생이 등교도 못 하는 무주공교(無主空校)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나. ‘CLOSURE’ 시계가 돌아간다. 적자생존 시대다.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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