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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폐쇄된 상가에 ‘생큐 벽화’…팬데믹 ‘감성 방역’ 눈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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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호 23면

[세상을 바꾸는 캠페인 이야기] ‘거리두기 중 예술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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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해진 거리에서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시적이지만 문을 닫은 수많은 브랜드 매장과 예술가를 연결해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시기에 유일한 축제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창출된 창의적인 광경을 소셜 미디어로 목격하면서 시민들은 희망과 즐거움을 공유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 도심에서 전개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중 예술품 만들기’ (#makeartwhileapart) 캠페인에 대한 평가다.

절도 막으려 나무판 댄 상점 삭막 #“코로나19 맞선 의료진 응원을” #화방 주인, 감사·희망 그림 제안 #캐나다 밴쿠버 벽화축제 더 빛내 #일주일 새 40곳에 벽화 예술품 #팬데믹 속 공공 가치 살린 역발상

이 캠페인은 밴쿠버 벽화 축제(VMF)의 일환으로 진행 중이다. 이 축제를 연 비영리 단체 CVS(Create Vancouver Society)는 2016년부터 매년 8월 건물 외벽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심 속에 예술의 감성을 투입해왔다. 그 결과 예술 벽화 200여 개를 만드는 성과를 냈다.

지역 예술대 학생, 예술가 적극 호응

의류브랜드 자라 매장에 그려진 작품. [사진 매기 맥 펄슨]

의류브랜드 자라 매장에 그려진 작품. [사진 매기 맥 펄슨]

올해는 예외적으로 4월 중순부터 이 축제를 일종의 해시태그 캠페인 형식으로 전환해 전개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한 상가 주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3월 말부터 밴쿠버 도심 지역 대부분 상가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폐쇄되었다. 이 시기 밴쿠버 경찰은 상점의 절도 및 약탈 등 범죄 예방을 위해 매장의 쇼윈도 및 출입구를 나무판으로 막아놓도록 권고했다.

그로 인해 도시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 다양한 쇼윈도는 획일적인 나무판으로 가려졌다. 당시 밴쿠버 도심의 인기 지역 중 한 곳인 게스 타운(gas town)에 위치한 36년 된 화방 킴프린트 소유주 브리스코 킴은 업소의 외벽을 나무판으로 봉쇄한 이후 고민에 빠졌다. 거리 상가의 쇼윈도를 뒤덮은 나무판, 사람이 사라진 도심의 모습은 끔찍했다. 그래서 그녀는 작은 실천에 도전했다. 자신의 화방 쇼윈도와 출입구를 막아놓은 나무판 위에 코로나19와 맞서 싸우고 있는 보건의료 종사자에게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한 것이다. 우선 지역 예술가들에게 나무판을 캔버스로 활용하는 변형된 형태의 벽화를 제안했다. 그녀의 제안에 공감한 밴쿠버 지역 예술대학 학생과 예술가들은 뉴스를 통해 매일 접하고 있던 보건의료 종사자의 초상화를 그려 감사를 표했다. 이후 볼썽사납던 나무판은 희망과 사랑, 감사를 상징하는 보기 좋은 예술 작품으로 가득 채워졌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시한 벽화. [사진 매기 맥 펄슨]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시한 벽화. [사진 매기 맥 펄슨]

이렇게 시작한 예술품 만들기는 주변 상가의 동참으로 게스 타운 지역 내 20여 개 이상 매장으로 확대되면서 작은 캠페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일명 ‘생큐 벽화’라는 애칭을 얻고 소셜 미디어와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코로나19로 고민에 빠져있던 밴쿠버 벽화축제에 소중한 영감을 제공했다. 풀뿌리 사회운동이 기존에 개최돼 오던 도시의 축제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도시가 예술 활동의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문화유산을 창출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매년 전개해 오던 밴쿠버 벽화축제는 이렇게 새로운 캠페인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애초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도시문제, 세대 간 화합, 문화적 다양성 확대 그리고 공동체 회복이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 밴쿠버 벽화축제다. 따라서 밴쿠버시,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 공공기관을 비롯해 주요 기업과 사업주, 상인 공동체가 함께 엄격한 절차를 거쳐 후원해 왔다. 이번 사회적 거리두기 중 예술품 만들기 캠페인을 위해서는 이례적으로 후원 기금 전액을 예술가들에게 직접 전달해 짧은 시간에 작업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 캠페인에 참여한 40여 명의 예술가는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고 밴쿠버시가 제시한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준수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벽화용 페인트 생산과 조달을 위해 제조업체는 주말에 제한적으로 제품을 생산해 캠페인을 지원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캠페인을 위해 노력했을까?

캐나다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 매장. 벽화를 그리기 전과 후의 모습. [사진 매기 맥 펄슨]

캐나다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 매장. 벽화를 그리기 전과 후의 모습. [사진 매기 맥 펄슨]

밴쿠버 벽화축제 기획자 중 한 명인 싱클레어는 “코로나19로 인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중 예술을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 중 ‘감성 방역’도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개별 작품의 예술적 가치나 해석에 치중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예술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평소보다 빠른 심사 과정을 거쳐 예술가를 선정하고 모든 후원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거리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캠페인에 참여한 예술가들에게 요구한 것은 희망의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벽화의 이미지를 밝고 경쾌하게 표현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무질서한 그라피티가 아니라 도시와 기업, 예술가들이 협력을 통해 기획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캠페인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특정 지역에서 시작되었던 ‘생큐 벽화’는 도시의 중심에서 벽화축제라는 캠페인으로 확대되었다. 캠페인 시작 일주일 만에 도시 주요 브랜드 매장 40여 곳에 벽화 예술품이 완성되었다. 캠페인에 참여한 작가 중 한 명인 프리즐리 유는 “고립이라는 경험을 바탕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평소 지나다니던 친숙한 브랜드 매장의 쇼윈도 앞에 덧붙여진 나무판은 예술품을 위한 훌륭한 캔버스가 되었고 그 캔버스에는 다양한 영감을 얻은 작가의 작품이 그려졌다. 역설적이게도 사람이 줄어든 도시의 거리는 화려한 작품으로 채워졌다. 거리의 모습만 보면 한산한 갤러리 같았지만 소셜 미디어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다. 밴쿠버시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도심 곳곳에 등장한 작품 사진들이 공유되고 있다. 이 예술품은 ‘막힘 속 소통’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상의하달식 계도 캠페인에 힘 실리지만  

캠페인을 처음 제안했던 화방에 그려진 감사 메시지 벽화. [사진 YVR 인스타그램]

캠페인을 처음 제안했던 화방에 그려진 감사 메시지 벽화. [사진 YVR 인스타그램]

범죄 예방을 위해 설치한 나무판 위에 예술품이 더해지자 우려했던 약탈 범죄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중 예술품 만들기 캠페인은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 그리고 공공단체의 유연하고 신속한 사회적 소통 결과다. 도심 속 상가들이 다시 문을 열면 이 캠페인은 종료될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상의하달 방식의 계도성 캠페인에 큰 힘이 실리기 마련이다. 의료진을 응원하는 캠페인도 창의적 방식보다 약속된 기호나 상징을 공유하는 방식이 쉽게 채택된다. 통제에 익숙해지고 제한된 행동과 사고가 중시되는 때 자유와 창의, 다양성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밴쿠버 벽화 축제는 그런 측면에서 역발상의 캠페인을 통해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복원시킨 결과다. 코로나19 이후가 아닌 바로 지금 우리도 모르는 사이 멈춰진 다양한 사회적 소통을 재가동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종혁 광운대 교수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이며 공공소통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2015~16년 중앙SUNDAY 및 중앙일보와 진행했던 공공프로젝트 ‘작은 외침 LOUD’를 현재까지 추진하고 있다. 디자인 씽킹 기반의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 가치 찾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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