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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고공행진 계속 땐, 이낙연·친문 ‘오월동주’ 순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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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호 10면

이낙연 둘러싼 대선 시나리오

이낙연 전 총리(왼쪽)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21대 국회 당선인 총회에서 마스크를 쓴 채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낙연 전 총리(왼쪽)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21대 국회 당선인 총회에서 마스크를 쓴 채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총선 후 여의도 정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이낙연 전 총리와 친문(친문재인) 세력과의 관계 설정이다. 이 전 총리는 여야를 통틀어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친문은 현 정권을 창출한 데 이어 지난 총선을 통해 여의도 권력까지 장악했다.

이·친문 측 서로 필요성은 인정 #전대 출마? 일단 관망? 설 분분 #‘호남 대선후보 + 영남 당대표’ #최근 김부겸과 연대설도 솔솔 #포용 이미지에 지지율 고공비행 #확고한 당내 세력 부재는 약점

민주당 출신 정치 컨설턴트는 “엄밀히 말해 민주당에 비문(非文)은 없다. 비문이라 할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당을 떠났거나 총선 때 공천 탈락했다”며 “차기 대권을 노린다면 누구든 친문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전 총리와 친문의 전략적 제휴 여부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당장 새로운 당대표를 뽑는 8월 전당대회가 첫 관문으로 떠올랐다. 이 전 총리가 당권을 먼저 거머쥔 뒤 대권으로 향할지 아니면 직행할지, 그 과정에서 친문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등이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대권 행보 세 가지 시나리오

20대 대선은 2022년 3월 9일 치러질 예정이다. 민주당 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대권에 도전할 경우 선거 1년 전에 사퇴해야 한다. 여기에 이 전 총리의 딜레마가 있다. 8월 전대에 출마해 당대표에 당선되더라도 임기는 7개월에 불과하다. 이 전 총리 주변에서 ‘비대위론’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비대위론은 이 전 총리가 대선 1년 전인 내년 3월까지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을 이끌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당내 지지 기반을 다질 시간을 벌고 호남 민심에도 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찮았다. 이 전 총리에 대한 과도한 특혜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당에서 비대위가 웬 말이냐”며 “전대를 열지 않고 비대위 체제를 꾸리겠다는 건 원칙에도,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물밑에서 갑론을박이 거세지자 이해찬 대표가 직접 교통정리에 나섰다. 지난 11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공당은 예측 가능한 시스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며 8월 전대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다.

이와 관련, 수도권 재선 의원은 “친문 입장에서 보면 차기 대선후보 결정 시기를 최대한 늦추려 할 것이다. 일찍 뽑으면 내부 분화가 가속화되면서 파열음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내년 8~9월까지 지켜본 뒤 대선후보를 선출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친문은 이미 분화가 상당히 진행됐으며 향후 대선 과정에서 더욱 세분화될 거란 주장도 제기된다. 친문이 한목소리로 대선후보를 지지하긴 어려울 거란 얘기다. 실제로 2018년 8월 전당대회 때도 당권파는 이해찬 후보를, 친문 의원들 모임인 ‘부엉이 모임’ 멤버 중 다수는 김진표 후보를 지지했다. 그해 6월 지방선거 때도 당권파는 경기지사 후보로 이재명 전 성남시장을 밀었지만 부엉이 모임 쪽에서는 전해철 의원을 지원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누가 대선후보가 되든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단일 대오를 형성했던 2017년 대선 때의 모습은 재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런 가운데 이 전 총리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이미 캠프 꾸리기에 착수했다는 말도 들린다. 오랫동안 여의도를 떠나 있었던 이 전 총리로서는 전투력과 실무 경험을 갖춘 참모들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의도 주변에선 이 전 총리의 대권 행보와 관련해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 전당대회 직접 출마다. 이럴 경우 당장은 친문의 지원이 아쉽지 않을 수 있다. 각종 여론조사 수치를 앞세워 권리당원들에게 직접 어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대에서 승리할 경우 대망론은 대세론으로 확산될 수 있다. 문 대통령도 2015년 전당대회 승리를 통해 당을 장악했다. 이 전 총리로서는 ‘문재인 학습 효과’를 떠올릴 법하다.

하지만 리스크도 적잖다. 전대 출마를 검토하는 송영길(5선)·홍영표(4선)·우원식(4선) 의원 등의 기세도 무시할 수 없다. 만일 이들과의 경쟁에서 패하거나 신승에 그칠 경우 이낙연 대망론이 퇴색할 수 있다. 일각에선 “추대가 아니면 이 전 총리가 출마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둘째, 전당대회와 거리를 둔 채 일단 관망하는 것이다. 직접 출마하지도 않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으면서 곧바로 대권 준비에 들어간다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에도 당장 친문 등 특정 세력의 지원은 절실하지 않다. 물론 여기에도 부담은 없지 않다. 당 지도부에서 빠지면 여론의 관심도 멀어질 수 있고 의원들과의 스킨십 강화에도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PK 후보 필승론’ 뛰어넘을까

최근 주목받는 또 다른 시나리오는 김부겸 의원과의 연대 가능성이다. 지난 총선 때 대구 수성갑에서 패한 김 의원은 8월 전대 출마 여부를 놓고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총리 측이 주목하는 건 이 대표 등 친문 당권파와 김 의원의 관계다. 김 의원은 당권파의 지지를 받는 인사로 분류된다. 그런 만큼 이 전 총리가 직접 출마 대신 김 의원 지원에 나설 경우 자연스레 당권파와 교감을 형성할 수 있을 거란 해석이 가능하다. 민주당 관계자도 “이 전 총리로서는 ‘호남 대선후보, 영남 당대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민주당의 대선 필승 공식 중 하나는 ‘호남 지지+PK(부산·경남) 후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민주당은 이 공식을 통해 두 차례 집권에 성공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모두 PK 출신이다. ‘PK 후보 필승론’은 전남 출신인 이낙연 불가론과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호남 민심은 어차피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만큼 영남, 그중에서도 PK 후보를 내세워야 확장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PK 후보 필승론의 요지다.

반면 이 총리의 경우 호남에서 특히 지지율이 높은 만큼 친문이 마냥 그를 외면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상존한다. 같은 호남 출신인 정세균 총리와의 경쟁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지금은 당의 중심과 내각의 수장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졌지만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펼쳐지면 진검승부를 피하기 어려울 거란 예상이다.

결국 현재 상황에선 이 전 총리와 친문과의 관계, 그리고 그의 대선 가도에는 낙관론과 회의론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낙관론은 이 전 총리의 든든한 지역 기반과 정치적 안정감에서 출발한다. 1987년 개헌 이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갈아치웠을 만큼 안정감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전직 총리가 차기 대선후보 1위 자리를 이처럼 오래 지킨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당 안팎에서는 이 전 총리의 중도·통합 행보 가능성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이 총리는 무엇보다 온화·포용의 이미지가 눈에 띈다”며 “보수 성향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는 건 향후 대선 가도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 총리 권력의지도 주목해야”

반면 1987년 이후 총리 출신 대통령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은 회의론의 주된 근거로 꼽힌다. 김종필·이회창·고건 전 총리도 청와대의 문을 여는 데 실패했다. “장점이 곧 단점”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당 관계자는 “온화하다는 건 진보 지지층에겐 선명하지 않고 개혁 의지가 불분명하다고 비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당내 경선 과정에서 친문 진영의 호감도가 높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확고한 당내 지지 세력이 없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핵심 지지층이 없으면 계파와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는 있지만 그만큼 대선후보가 되기도 어렵다”며 “이 전 총리로서는 당내 경선을 위해서라도 내부 조직 강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진단했다.

다만 이 전 총리도, 친문도 서로의 ‘전략적’ 필요성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문제는 양측의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냐다. 당내에선 양측이 대선까지 굳게 손을 잡고 갈지, 아니면 중도에 손을 놓게 될지는 결국 ‘지지율’이 최대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다수다. 이 전 총리가 내년 중반까지 지지율 1위를 확고하게 지킨다면 친문으로서도 이 전 총리의 손을 놓긴 쉽지 않다. 반면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거나 야당 후보에게 추월당하면 언제든 ‘이낙연 불가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

친문 중진 의원은 향후 당내 합종연횡을 이렇게 점쳤다. “이 전 총리와 친문은 뿌리가 다르다. 그럼에도 이 전 총리가 계속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갈 경우 친문으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 전 총리의 ‘권력의지’가 과연 어느 정도일지도 중요한 변수다. 이에 따라 양측의 오월동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결정될 것이다.”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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