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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177석 절대반지, 잘못 관리하면 파멸 온다”…5선 원혜영 충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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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를 끝으로 33년의 정치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다. 임현동 기자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를 끝으로 33년의 정치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다. 임현동 기자

“국회의 주인은 정당이 아닙니다. 국민이 직접 뽑은 300명의 의원 한명 한명이 자존심, 자긍심, 책임감을 갖고 ‘국회의 주인은 나다’라고 생각해야 돼요.”

5선을 마지막으로 국회를 떠나는 원혜영(69·부천오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마지막 메시지 방점을 ‘국회의원 주인의식’에 찍었다. 후배 의원들에게 “국회의원은 원내대표가 시키는 대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찬성하라면 찬성하고, 반대하라면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고 충고하면서다. 총선 전인 지난 3월 30일 여야 5선 이상 다선 의원들과 모여 “일하는 국회법 20대 국회 처리”를 제안했을 만큼 ‘일하는 국회’를 강조하는 그는 상시 국회 확립의 첫 번째 요건으로 “교섭단체 전권주의 청산”을 꼽았다. 쟁점법안 한 개가 나머지 수십 건을 발목 잡는 악습을 끊기 위해선 “현 상임위 체제를 소위원회로 더 쪼개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국회미래연구원 공동기획] #조자룡 헌 칼 쓰듯 당론 채택 남발 #당 지도부 지시라도 시비 가려야 #상임위 쪼개 소위원회 늘려야 #의원 역할 커져 일하는 국회로

인터뷰는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오는 29일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원 의원이 철수할 공간이다. “경기 부천에 새 사무실을 열면 찾아가겠다”고 하자 원 의원은 “사무실은 무슨 사무실이냐. 집에서 쉴 것”이라고 했다. 1987년 6월 항쟁 직후 한겨레민주당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정치인생 33년을 끝으로 은퇴한다.

20대 국회의 양극화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다. 21대에 더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데.
국회가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가느냐, 대립과 투쟁의 장으로 가느냐를 결정하는 건 의원 개개인의 성향이 아니다. 여야 역할이 너무 당 중심으로 돼 있다 보니, 모든 이슈에 당이 과도하게 개입해 갈등이 증폭되는 결과를 낳는다.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당이 불필요하게 국회 의사결정이나 안건, 일정 결정에 관여하는 걸 줄여야 한다.
원혜영(왼쪽부터), 이석현, 정병국, 김무성 등 여야 중진의원들이 지난 3월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일하는 국회법' 제안 회견문을 발표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혜영(왼쪽부터), 이석현, 정병국, 김무성 등 여야 중진의원들이 지난 3월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일하는 국회법' 제안 회견문을 발표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대 양당 체제에서 당론 추진을 지양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길에 내걸린 교통 현수막 중 ‘질서는 편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문구가 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의원 개개인도 책임과 역할을 포기하면 편하다. 그냥 원내 지도부가 참석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하고…. 당론 채택을 조자룡 헌 칼 쓰듯 남발하는 게 지금까지의 관습인 것도 맞다. 그렇지만 독립된 헌법 기관으로 선출된 국회의원이라면 익숙한 질서 속에서도 ‘이것이 항상 가장 옳은 건가’ 하고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말 ‘원팀’ 기조로 똘똘 뭉친 민주당은 친여 성향 소수정당과의 공조 기구인 이른바 ‘4+1 협의체’로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안 등을 통과시켰다. 제1야당의 극한 반대를 뚫고서다. 여당 지도부의 당론 추진 성과가 극대화된 장면이었다. 넉 달 뒤 총선에서 유권자는 여당에 180석(제명 3명 제외 177석)을 안겼다. 그런데도 ‘슈퍼 여당’을 떠나는 원 의원은 21대 국회 출발을 앞둔 시점에서 “당의 최소개입 원칙 보장”을 강조했다.

177석 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나는 우리 여권이 (영화「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절대반지’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보듯 절대반지는 잘 관리하지 않으면 파멸로 간다. 여기서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가는 건 편한 길이다. 앞서 말했듯 ‘편한 게 과연 바람직하냐’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여당은 과거에 절대 세력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항상 소수세력이었다. 지금 절대반지를 가졌다고 해서 우리가 소수 야당 때 분노했고 비판했던, 다수 세력으로 밀어붙이는 구여권의 국회·국정 운영방식에 쉽게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200507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200507

그래도 야당 위축이 불가피하지 않을까.
전처럼 국회선진화법을 정면으로 유린하고, 집단 저지하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또다시 허용되지 않을 거다. 국민 눈높이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방향에서 제 역할을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야 공히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해야 할 때다.
21대 국회, 더 나은 국회가 되기 위한 실질적 조언을 하자면. 
국회의 무대를 잘게 쪼개야 한다. 내가 속한 외교통일위원회를 예로 들면 한·미 방위비 협상 문제는 충분히 논의하면 되는데, 대북 지원 같은 야당 반대 이슈에 걸려 전부 올스톱이 되곤 한다. 상임위별로 소위원회를 여러 개 설치해 활성화하면 의원 개개인 역할도 커진다. 16개 상임위에 분야별 소위를 5개씩만 둬도 소위원장이 80명이다. 국회의원의 3분의 1이 국회를 대표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 헌법 개정을 거치지 않고도 일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는 아주 확실한 방안 중 하나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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