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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특감반 다르다" 첫 재판서 檢 면박 준 조국 재판장

중앙일보

입력

가족 비리와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사건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가족 비리와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사건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8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1차 공판. 조 전 장관 사건의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김미리 부장판사가 검찰에 직접 반박을 했다. 김 부장판사는 감찰 무마 수사의 실무 책임자였던 이정섭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에게 재판 중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하며 이견을 드러냈다. 재판장이 공판 검사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는 말까지 나왔던 장면. 이날 법정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미리 재판장, 이인걸 증인신문 중 檢과 이견

정경심의 변호인, 조국 피해자로 섰다

김 부장판사의 반박은 2017년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을 진행했던 이인걸 전 청와대 특감반장의 증인신문 중 나왔다. 2018년 12월 청와대를 떠난 이 전 반장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변호인이었다. 하지만 법정에선 조 전 장관의 감찰 무마 혐의에 대한 '직권남용 피해자' 신분으로 증인석에 섰다.

지난해 10월 2일, 당시 정경심 교수의 변호인이었던 이인걸 전 청와대 특감반장이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해 10월 2일, 당시 정경심 교수의 변호인이었던 이인걸 전 청와대 특감반장이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있다. 오종택 기자

검찰과 조 전 장관의 변호인단은 이 전 반장과 청와대 특감반원들의 '감찰 권한' 존재 여부를 놓고 논박을 벌였다. 검찰은 특감반원에게 고유의 감찰 권한이 있다고 했다. 반면 변호인은 특감반원은 민정수석의 지시를 따르는 부하직원일 뿐이라 주장했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유 전 부시장의 감찰은 중단된 것이고, 변호인 주장으로는 종결된 것이다. 중단은 직권남용 유죄, 종결은 무죄다. 재판 중 당시 상황을 일부 발췌했다.

이인걸 전 특감반장 증인신문 中

조국 변호인(변)=(유재수 사건 등 수사기관 이첩) 민정수석이 최종 결정하는 것 맞죠?
이인걸(이)=네, 그렇게 했습니다.
변=지시에 따라 이첩하니, 증인 판단이나 결정이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요
이=조치 의견을 올릴 때 제 판단이 들어가지 않나요?
변=지시 내려오고 서류 전달하면 끝이잖아요
이=네
재판장(재)=검사님, (특감반) 업무가 이렇게 이뤄진 것 같아요. 관련 규정도 미비하고.
검찰(검)=아닙니다. (고유권한이 있는) 검사도 결재는 받습니다.
재=그거랑 다르죠. 그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얘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검=대통령비서실 직제 7조 2항에 대해 재판장님이 판단을 하시면 됩니다.
재=하하하, 알겠습니다. 판단이 필요하면 공부를 하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국 "검찰, 감찰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

재판장이 핵심 쟁점에서 변호인 측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검찰은 답답해했다. 재판장의 반박에 이 부장검사는 "대통령비서실 직제(대통령령) 7조 2항을 보고 판단하시라"고 재반박했다. 이 말을 들은 김 부장판사는 다소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판단이 필요하면 공부를 하겠다"고 답했다.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을 촉발했던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 지난 2월 국회 정론관에서 제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나섰던 김 전 수사관은 낙선했다.[뉴스1]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을 촉발했던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 지난 2월 국회 정론관에서 제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나섰던 김 전 수사관은 낙선했다.[뉴스1]

특감반원의 업무가 언급된 해당 조항에는 '특감반에서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비위를 확인하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 또는 이첩한다'고 적혀있다. 검찰이 특감반에게 감찰 권한이 있다고 보는 핵심 근거다. 지난해 12월 조 전 장관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던 권덕진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도주와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며 조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조 전 장관의)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유재수에 대한 감찰을 중단해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며 검찰 주장을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조 전 장관의 변호인은 "특감반의 수사 의뢰 역시도 윗선의 지시를 받아야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김 부장판사도 검사와 특감반원은 다르다고 말했다. 권 부장판사와는 다소 다른 시각이다. 조 전 장관은 휴정 중 피고인으로 함께 출석한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과 대화하며 "검찰 쪽에서 감찰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감찰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7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서며 구치소 관계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감찰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7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서며 구치소 관계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청와대 출신 인사들도 엇갈리는 쟁점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검찰과 사정기관 출신 관계자들도 이 쟁점에선 판단이 엇갈린다. 청와대 근무경험이 있는 전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는 "특감반원은 민정수석과 반부패비서관의 수족에 가깝다. 이들에겐 지시를 따를 의무만 있을 뿐"이라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는 "조 전 장관 측 주장대로라면 특감반원들은 모두 권한이 없는 불법적 감찰을 해왔던 셈"이라 말했다.

또다른 청와대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 직제에 따르면 특감반은 대통령명에 따라 감찰을 한다"고 말했다. 특감반원은 물론 대통령이 아닌 조 전 장관에게도 독자적 감찰 권한이 없다는 주장이다. 검찰 측에선 "조 전 장관이 감찰을 뭉갠 사실관계는 반박할 수 없으니 법리만 다투는 것"이라 주장한다. 조 전 장관 측은 "도덕적 비판은 감수하지만 죄는 아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 1월과 3월 박근혜 정부의 진보단체 불법 지원 배제와 보수단체 불법 지원에 따른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의 사건을 일부 파기환송했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직권남용의 문턱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연합뉴스]

대법원은 지난 1월과 3월 박근혜 정부의 진보단체 불법 지원 배제와 보수단체 불법 지원에 따른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의 사건을 일부 파기환송했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직권남용의 문턱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연합뉴스]

대법원 판결에 기대 거는 조국  

조 전 장관 측은 대법원이 지난 1월 '문체부 블랙리스트' 판결을, 3월에는 '화이트리스트' 판결을 일부 파기환송하며 직권남용의 문턱을 높인 점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대법원은 부당한 지시라 할지라도 그 지시를 받은 상대방이 '고유한 법적 권한'을 침해받아야 직권남용이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조 전 장관의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직권남용에 대한 대법원의 엄격해진 기준을 적용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조 전 장관의 사건과 대법원 판례는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측은 "유 전 부시장은 이미 뇌물 혐의로 구속까지 된 상태"라며 "당시 감찰 중단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라 주장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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