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1차 공판. 조 전 장관 사건의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김미리 부장판사가 검찰에 직접 반박을 했다. 김 부장판사는 감찰 무마 수사의 실무 책임자였던 이정섭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에게 재판 중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하며 이견을 드러냈다. 재판장이 공판 검사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는 말까지 나왔던 장면. 이날 법정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미리 재판장, 이인걸 증인신문 중 檢과 이견
정경심의 변호인, 조국 피해자로 섰다
김 부장판사의 반박은 2017년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을 진행했던 이인걸 전 청와대 특감반장의 증인신문 중 나왔다. 2018년 12월 청와대를 떠난 이 전 반장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변호인이었다. 하지만 법정에선 조 전 장관의 감찰 무마 혐의에 대한 '직권남용 피해자' 신분으로 증인석에 섰다.
검찰과 조 전 장관의 변호인단은 이 전 반장과 청와대 특감반원들의 '감찰 권한' 존재 여부를 놓고 논박을 벌였다. 검찰은 특감반원에게 고유의 감찰 권한이 있다고 했다. 반면 변호인은 특감반원은 민정수석의 지시를 따르는 부하직원일 뿐이라 주장했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유 전 부시장의 감찰은 중단된 것이고, 변호인 주장으로는 종결된 것이다. 중단은 직권남용 유죄, 종결은 무죄다. 재판 중 당시 상황을 일부 발췌했다.
이인걸 전 특감반장 증인신문 中
조국 변호인(변)=(유재수 사건 등 수사기관 이첩) 민정수석이 최종 결정하는 것 맞죠?
이인걸(이)=네, 그렇게 했습니다.
변=지시에 따라 이첩하니, 증인 판단이나 결정이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요
이=조치 의견을 올릴 때 제 판단이 들어가지 않나요?
변=지시 내려오고 서류 전달하면 끝이잖아요
이=네
재판장(재)=검사님, (특감반) 업무가 이렇게 이뤄진 것 같아요. 관련 규정도 미비하고.
검찰(검)=아닙니다. (고유권한이 있는) 검사도 결재는 받습니다.
재=그거랑 다르죠. 그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얘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검=대통령비서실 직제 7조 2항에 대해 재판장님이 판단을 하시면 됩니다.
재=하하하, 알겠습니다. 판단이 필요하면 공부를 하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국 "검찰, 감찰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
재판장이 핵심 쟁점에서 변호인 측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검찰은 답답해했다. 재판장의 반박에 이 부장검사는 "대통령비서실 직제(대통령령) 7조 2항을 보고 판단하시라"고 재반박했다. 이 말을 들은 김 부장판사는 다소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판단이 필요하면 공부를 하겠다"고 답했다.
특감반원의 업무가 언급된 해당 조항에는 '특감반에서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비위를 확인하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 또는 이첩한다'고 적혀있다. 검찰이 특감반에게 감찰 권한이 있다고 보는 핵심 근거다. 지난해 12월 조 전 장관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던 권덕진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도주와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며 조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조 전 장관의)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유재수에 대한 감찰을 중단해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며 검찰 주장을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조 전 장관의 변호인은 "특감반의 수사 의뢰 역시도 윗선의 지시를 받아야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김 부장판사도 검사와 특감반원은 다르다고 말했다. 권 부장판사와는 다소 다른 시각이다. 조 전 장관은 휴정 중 피고인으로 함께 출석한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과 대화하며 "검찰 쪽에서 감찰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도 엇갈리는 쟁점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검찰과 사정기관 출신 관계자들도 이 쟁점에선 판단이 엇갈린다. 청와대 근무경험이 있는 전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는 "특감반원은 민정수석과 반부패비서관의 수족에 가깝다. 이들에겐 지시를 따를 의무만 있을 뿐"이라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는 "조 전 장관 측 주장대로라면 특감반원들은 모두 권한이 없는 불법적 감찰을 해왔던 셈"이라 말했다.
또다른 청와대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 직제에 따르면 특감반은 대통령명에 따라 감찰을 한다"고 말했다. 특감반원은 물론 대통령이 아닌 조 전 장관에게도 독자적 감찰 권한이 없다는 주장이다. 검찰 측에선 "조 전 장관이 감찰을 뭉갠 사실관계는 반박할 수 없으니 법리만 다투는 것"이라 주장한다. 조 전 장관 측은 "도덕적 비판은 감수하지만 죄는 아니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에 기대 거는 조국
조 전 장관 측은 대법원이 지난 1월 '문체부 블랙리스트' 판결을, 3월에는 '화이트리스트' 판결을 일부 파기환송하며 직권남용의 문턱을 높인 점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대법원은 부당한 지시라 할지라도 그 지시를 받은 상대방이 '고유한 법적 권한'을 침해받아야 직권남용이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조 전 장관의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직권남용에 대한 대법원의 엄격해진 기준을 적용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조 전 장관의 사건과 대법원 판례는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측은 "유 전 부시장은 이미 뇌물 혐의로 구속까지 된 상태"라며 "당시 감찰 중단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라 주장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