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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문학은 비극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언어를 세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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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문학이 말하는 감염병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의 1630년 작품 ‘아슈도드에 번진 흑사병’(루브르박물관 소장). 문학은 약자를 연민하고 죽은 자를 애도함으로써 감염을 무찌르는 힘을 불어넣는다. [중앙포토]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의 1630년 작품 ‘아슈도드에 번진 흑사병’(루브르박물관 소장). 문학은 약자를 연민하고 죽은 자를 애도함으로써 감염을 무찌르는 힘을 불어넣는다. [중앙포토]

“안방에 누워 자정 뉴스를 얼핏 들었다. 먼 나라에서 기괴한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고 했다.… 뉴스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생활비와 노후와 자식 교육을 걱정했다.”

팬데믹 속에서 인간이 문학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죽음의 행렬 앞에서도 사유의 언어를 제공하기 때문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것’을 명령하는 문학 #문학을 읽는다는 건 과거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일

최진영 장편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 첫머리다. 코로나19 사태를 예언한 듯, 섬뜩하다. 사람들은 “의학과 정부가 막아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가족이 죽고 기업이 파산하며 강도와 살인과 폭력이 범람한다. 한국을 탈출한 이들은 “오늘과 다른 곳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려고 한없이 떠돈다.

인간의 정의는 ‘반드시 죽다’이다. 다른 정의는 ‘모여 살다’이다. 한곳에 모여 사는 사회적 동물로 인간이 진화하며 생겨난 죽음이 대규모 감염병이다. 인류의 감염병 대부분은 정착 생활에서 발생했다. 감염병은 가축과 공생하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인간과 공존을 시도하는 현상이다. 인류의 역사가 감염병의 역사인 이유다. 감염병은 신체의 일만은 아니다. 정신에도 깊은 흔적을 남긴다. 문자가 발명된 첫 순간부터 문학은 죽음의 행렬 앞에서 할 말을 잃은 인류에게 사유의 언어를 공급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전 세계인이 문학으로 달려가는 이유다.

인간은 경멸할 점보다 찬양할 점이 많아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첫 권 제목은 ‘역병, 아킬레우스의 분노’다. 아폴론이 “왕에게 노해 진중에 무서운 역병을 보내 백성들이 잇달아 쓰러진” 사건 한가운데로 뛰어들면서 서사시가 시작된다. 아폴론의 역정을 산 왕은 아가멤논. 아가멤논의 탐욕이 아폴론과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낳고,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수많은 영웅의 죽음을 낳는 ‘감염의 서사’가 『일리아스』다. 그러고 보면 인류사 초기부터 지배 권력의 탐욕과 책임 회피는 감염병의 해결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이번 사태 초기의 중국 지도층이나 현재의 미국 대통령 행태를 보면, 슬프게도 인간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 베스트셀러에 오른 카뮈의 『페스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경멸할 점보다 찬양할 점이 더 많다.” 공포에 굴하기보다 시민들은 사랑을 확인하고 용기를 간직함으로써 인간적 품위를 고양하려고 노력 중이다. 희망은 한 줌의 권력이 아니라 다수 시민한테 달려 있다.

문학은 말한다. 질병의 서사는 패배가 아니고, 삶의 형식은 허무가 아니다.  『오이디푸스 왕』(소포클레스)에서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찌름으로써 아폴론의 질병이 운명을 완전하게 지배하는 것을 거부했다.  『데카메론』(보카치오)은 운명과 체념이 지배하는 신의 문학을 끝내고 욕망과 열정을 분출하는 인간의 문학을 시작한다.

문학은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것”을 명령한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마르케스)은 사랑으로 공포를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사라마구)는 탐욕과 폭력에 눈먼 세계 속에서도 우리 안에는 사라지지 않는 고결함이 있음을 알려준다.

문학은 약자를 연민하고 죽은 자를 애도하며 권력을 비판함으로써 감염을 무찌르는 힘을 사유에 불어넣는다.  『전염병 연대기』(디포)는 감염병을 둘러싼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처음 인식의 거울에 비추었고,  『황폐한 집』(디킨스)은 런던 빈민가의 무참한 모습을 통해 감염병이 자본주의 탓에 생긴 빈곤과 불평등 문제임을 고발한다.  『시녀 이야기』(애트우드)는 감염병 창궐 이후 여성을 도구화하는 야만적 사회를 그려냄으로써 인류 문제의 근원에 가부장제가 있음을 폭로한다.

우리 문학도 똑같다. 일연은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에서 역병을 이기는 인간의 힘이 관용과 용서에 있음을 알려준다. 구봉령은 ‘문득 짓다(偶題)’에서 “어느새 봄바람 불어 시들게 하니/ 빈 뜨락에 떨어진 진달래들”을 읊었다. 찬란한 봄이 어서 가기만 바라는 애도의 언어를 창조해 천연두로 죽은 딸을 추모한 것이다. 정약용은 ‘기민시(飢民詩)’에서 굶주린 백성을 방치한 정치의 타락을 비판한다. “초췌해라, 부스럼에 상처투성이/ 시든 풀인 양 연약하게 쓰러져 있고/ 거리마다 마주치는 건 유랑민들뿐.” 같은 시기, 콜레라의 유행 속에서 판소리 ‘변강쇠가’, 가사 ‘덴동 어미 화전가’는 도탄에 빠진 서민들 삶을 고발하고, 비극적 상황에서도 해학과 노래로 삶을 긍정하는 언어를 스스로 세운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비롯해  『재와 빨강』(편혜영),  『28』(정유정) 등 현대문학 작품도 파국의 상상력을 통해 인간 존엄의 언어를 구축하는 치열한 탐구를 거듭 중이다.

진짜 재앙은 언젠가 할 사랑을 미루는 것

문학은 인간의 일을 ‘미리’ 기억한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다. 팬데믹을 예견했듯이 문학에는 이미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도 벌써 나와 있다. 최진영은 말한다. “인류가 멸망할 그 날에도 당신은, 우리는 사랑을 할 것이다.” 따라서 진짜 재앙은 언젠가 할 사랑을 한없이 미루는 것이다. 이젠 더는 그럴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내일도, 다음도 없는 날이 온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기적을 만나려면 그곳까지 가야 한다. 멀어지며 그것을 갈구할 수는 없다.”

감염병을 다룬 주목할 만한 과학 서적들

인수 공통 모든 감염병의 열쇠

인수 공통 모든 감염병의 열쇠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계기로 문학뿐 아니라 감염병을 다룬 과학 서적들도 주목받고 있다. 사스·에볼라·에이즈·메르스 등 현대의 감염병 이해에 도움을 주는 책으로는 데이비드 쾀멘의 『인수 공통 모든 감염병의 열쇠』, 최강석의  『바이러스 쇼크』, 김우주의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 소니야 샤의  『바이러스의 위협』, 네이선 울프의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가 있다.

판데믹 히스토리

판데믹 히스토리

장항석의  『판데믹 히스토리』, 데이비드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 제니퍼 라이트의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등은 감염병과 인간의 오랜 공존을 다룬다. 메릴린 루싱크의 『바이러스』는 ‘지구의 숨은 권력자’인 바이러스 101가지를 개괄한 백과사전이다. 곁에 놓고 두고두고 참고할 만하다.

감염 도시

감염 도시

스티븐 존스의  『감염 도시』는 디킨스의 『황폐한 집』과 한 쌍을 이룬다. 런던의 의사 존 스노와 목사 헨리 화이트헤드가 협력해 콜레라의 감염 경로를 밝히는 과정을 긴박감 있게 전달한다. 공중위생 개념의 탄생과 상·하수도 인프라 구축이야말로 콜레라 등 수인성 감염병 예방에 혁혁한 공을 세운 역사적 사건이다.

특정 국민이나 인종에 대한 혐오는 감염병을 대하는 가장 나쁜 태도다. 미국의 작가 타일러 모리슨은  『코로나19』에서 “혐오는 코로나19를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와 마찬가지로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감염병의 원인은 인류 전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일찍이 “21세기는 감염병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으나 사태는 실제로 벌어졌다. 홍윤철 서울대 교수의 『팬데믹』에 따르면 “인류가 경험했던 무서운 전염병들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사람을 공격했다기보다는, 사람이 세균의 생태계를 교란한 후 사람과 병원균 사이에 새로운 생태학적 균형을 찾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간이 문제다. 인류가 분별 있게 행동하지 않는 한,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은 막을 수 없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리셋 코리아 문화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