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의료개혁] 4. 재편되는 의료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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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은 기존 보건의료산업의 재편을 예고한다.

가장 큰 변화는 동네 의원·약국의 붕괴와 대량실업 사태.경영 악화로 자본과 시설이 취약한 동네의원과 약국이 정리되면서 이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실직이 예상된다.

지난해 대한의사협회가 밝힌 동네의원의 휴·폐업율은 8.9%.의약분업과 함께 매년 3천여명의 신규의사들이 쏟아져나와 의사실업과 전업은 더욱 가속화되리란 전망이다.

부산에서 소아과를 운영하다 영어학원을 차린 L씨(남·40).“몇 푼 안되는 코흘리개 돈을 버는 것보다 마음도 편하고 수입이 많다”며 “최근 열악해지는 의료환경을 보면 전직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간호사들도 실업의 회오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동네의원에서 조제실이 사라져 의사의 복약지도하에 투약을 맡던 간호사들의 역할이 사라졌기 때문. 전국 1만8천여개 동네의원에서 최소 1명씩 2만여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약사들도 예외가 아니다.대한약사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결과 전체 약국의 10%가 약국을 닫고 파트타임 등 고용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응답했다. 대한약사회 신현창사무총장은 “처방전을 소화하기 위해선 1천여종의 약을 갖춰야하는데 이를 위해선 최소 2천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밝혔다.

또 대기공간 마련과 컴퓨터 처방전 관리시스템까지 갖추려면 수천만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는 것.특히 인근에 병의원이 없는 약국들은 분업후 처방전이 얼마나 들어올 지 불안해 하고 있다.

경남창원 B약국 L약사는 “종합병원 가까이 대형약국을 차리기 위해 약사들이 1억원씩 맞보증을 서 융자를 받았다”며 “한달 구입 약값만 5∼6억원에 달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소자본 동네약국이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피력했다.

문제는 이러한 약국과 병원의 폐업으로 의료전달체계의 하부구조가 무너진다는 것.충남 서해병원 이상룡원장은 “경쟁력있는 대형병원이나 편법진료를 하는 병원들은 살아남고, 동네에서 성실하게 1차진료를 맡는 의료기관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의사들이 성형·피부미용 등 돈이 되는 일반환자를 선호하고,무리하게 환자를 유치해 처방건수를 늘리는 등 ‘좋은 병원’보다 ‘강한 병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약업계의 재편도 불가피하다. 의약분업이 실행될 때 실질적인 이득을 보는 업계는 오리지널 제품을 판매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반면 복사 제품에 의존해온 국내 제약회사의 상당수가 도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세한 국내 제약업계 사정상 신약개발은 불가능하다.때문에 국내 제약회사는 이제껏 외국 오리지널 제품의 특허기간이 끝나면 그 제품을 복사해 싸게 공급해왔다. 한국제약협회 갈원일 업무국장은 “오리지널 제품의 처방 증가 뿐 아니라 영업비 증가,포장단위의 다양화에 따른 생산단가의 증가 등 국내 제약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다국적 기업 제약회사들은 매출이 증가할 상황에 대비해 홍보직원을 늘리고 한국시장 판매를 위해 본사 그룹 간부들의 한국방문도 잦아지고 있다. 의약분업 실시와 함께 4백여개 국내 제약회사중 1년후 살아남을 회사는 50개 이하로 추정된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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