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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본공연보다 인기 끈 막간극…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24)

약 400여 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에 모인 예술가들이 그리스의 비극을 재현하고자 작정하고 만들었던 장르가 오페라랍니다. ‘오르페오’나 ‘오이디푸스’와 같은 그리스 신화나 역사 속 비극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습니다. 진지한, 심각한 오페라란 뜻의 ‘오페라 세리아’가 유행합니다. 진지한 작품의 단점은 종종 관객이 어려워하거나 지겨워한다는 것인데, 막 전환하는 동안 관객이 편하게 웃고 즐길만한 막간극을 공연하곤 했답니다.

1733년 발표된 막간극인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는 오페라사에서 특기할만한 작품이에요. 당시 이 작품은 엄청난 인기가 있어서 본 공연보다 이 막간극을 보려고 관객이 오페라 극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막간극이 인기를 얻다 보니, 오페라 세리아에서 독립해 새로운 장르, 즉 재미있고 코믹하다는 뜻인 ‘오페라 부파’장르의 시초가 되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답니다.

약간의 꼼수가 있지만 결국은 마님이 되는 하녀 이야기라는 다소 단순한 플롯의 바로크식 단막 오페라입니다. 시종 경쾌한 음악과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스토리 전개로 관객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답니다.

출연진은 우베르토라는 싱글남과 세르피나라는 그의 하녀가 나오고, 베스포네라는 우베르토의 하인이 나오지만 벙어리 역할입니다. 기존에 소개한 오페라에 비해 단출하지요?

하녀라고 하기엔 너무 당당한 그녀. [사진 Flickr]

하녀라고 하기엔 너무 당당한 그녀. [사진 Flickr]

쾌활하고 흥겨운 서주와 함께 막이 오르면 우베르토는 외출할 예정인데도 하녀인 세르피나가 그의 아침 식사인 초콜릿을 갖다 주지 않아 화가 났답니다. 그런데 그녀는 별 미안한 기색도 없네요. 주인인 우베르토에게 직접 해 먹으라고까지 하구요.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하녀와 말다툼이나 하는 이런 진저리나는 상황을 끝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주인님 때문에 분노의 화산이 폭발할 것 같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아리아 ‘주인님은 성미가 급해’를 부릅니다. 우베르토의 외출도 통제하며 고집 피워 봐야 주인님만 손해이니 잠자코 있으라고 훈계도 합니다.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니 상황파악을 하실 것 아니냐고 노래하는 그녀는 발랄하다 못해 당당하답니다. 마치 퇴직 후의 기죽은 남편을 다루는 중년 부인의 모습 같기도 하지요.

이런 세르피나가 지긋지긋한 우베르토는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당장 결혼을 하고 그녀를 내보내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진짜 황당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세르피나랍니다.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바로 자신이 주인님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베르토는 자신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꿈도 꾸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우베르토가 자신과 결혼하기를 완강히 거절하자 세르피나는 이 집 하인인 베스포네를 포섭하기로 합니다. 안주인이 되면 포상을 후하게 해주기로 하고 거짓 연극을 하기로 하지요.

이제 곧 자신은 결혼하고 세르피나를 내보낼 생각에 여유로워진 우베르토는 이제는 외출해도 되느냐며 그녀에게 농치듯 허락을 구합니다. 그런데 웬일이지요? 그녀가 갑자기 이제 허락받을 필요 없다는 겁니다. 이제는 자신도 결혼할 것이며 벌써 신랑감을 찾았다고 하네요.

신랑에 관해 묻자 이름은 ‘태풍’, 직업은 장교인데 엄청 다혈질이랍니다. 흥분하면 이름처럼 화가 몰아치기도 하는 성격이라고 하네요. 이에 우베르토는 짐짓 걱정하는 듯 약을 올립니다. 자신에게 뻔뻔하게 시중들던 식으로 그를 대하다간 애 좀 태우겠다고 말이지요.

이에 세르피나는 슬피 울먹이며 아리아 ‘저를 생각할 거에요’를 부르며 우베르토의 감성에 호소합니다. 사랑스러운 자신을 보고 싶어 하다가 결국은 떠나 보낸 것을 후회할 것이라고 하지요. 자신이 너무 무례하게 행동했다면 용서해 달라고도 합니다.

우베르토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급 우울해집니다. 어릴 때부터 돌봐온 세르피나가 성격 포악한 녀석에게 혹시 당하며 살게 될까 봐 걱정되기도 하구요. 그의 마음속에 그녀에 대한 사랑인지, 동정인지 미묘한 감정이 충돌 중입니다. 그의 마음이 그네처럼 흔들리고 있는 것이지요.

이때 세르피나가 신랑감인 ‘폭풍’ 대위를 데리고 나타납니다. 언뜻 보기에도 성깔 있게 생겼답니다. 물론 베스포네가 변장하고 나타난 것이지요. 말도 안 하고 포악해 보이는 그는 세르피나를 통해 우베르토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요구합니다. ‘폭풍’ 대위는 지참금을 안 내놓으면 우베르토가 그녀와 결혼해야 한다고 칼을 휘두르며 윽박지릅니다.

돈도 아깝고 내심 세르피나가 걱정되던 그는 결국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서약합니다. 속임수임이 드러났지만 우베르토는 모두를 용서하지요. 세르피나와 우베르토는 서로가 행복의 근원이라며 사랑을 노래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존경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가 되기를... [사진 Flickr]

존경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가 되기를... [사진 Flickr]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는데, 최근의 TV 프로그램에서 웃음은 빠지지 않는 연출과제입니다. 다소 지나쳐 어색하거나 불편하기도 하지만요. 역사적으로도 왕 또는 귀족이나 고귀한 신분의 관객이 웃음을 경박하게 여길 때도, 서민은 좀 더 자유롭고 편하게 웃었지요.

시종 경쾌한 음악과 코믹한 상황이 펼쳐지는 이 오페라는 일반 서민의 생활상을 보여줍니다. 같이 지내면서 허구한 날 말다툼하며 살아온 우베르토와 세르피나. 싸우면서 정든 그들이 마침내 사랑하게 되는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는 일상을 사는 평범한 이들에게 희망을 준 선물 같은 오페라랍니다. 하인 취급 받았던 막간극도 이제는 당당히 오페라의 주역이 되었고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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