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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어미의 마음으로 쌓은 3000 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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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 사람사진/ 모정탑

권혁재 사람사진/ 모정탑

사람은 이미 돌아가고 없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없는 사람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람 없는 사람 사진을 찍으려 나선 겁니다.
그 사람은 아홉해 전에 돌아갔습니다만,
남긴 돌무더기는 늘 거기 있을 터기 때문입니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산 716, 노추산 자락에 들어섰습니다.
끝 간 데 없이 돌무더기가 이어졌습니다.
돌 놓고, 굄돌 올리고, 그 위에 또 돌 올리기를 수백·수천 차례,
우리는 그렇게 쌓아 올린 돌무더기 하나를 탑이라 부릅니다.
이런 탑이 자그마치 3000개가 넘습니다.
숫제 탑 하나하나가 이어진 게 길입니다.
차순옥이란 여인이 홀로 쌓았다고 합니다.
자그마치 스무 여섯해, 움막을 짓고 살며 그리했다고 합니다.

차여사는 한평남짓 움막을 짓고 26년간 탑을 쌓았습니다.당시 움막은 사라졌고, 새롭게 정비한 움막이 덩그렇습니다.

차여사는 한평남짓 움막을 짓고 26년간 탑을 쌓았습니다.당시 움막은 사라졌고, 새롭게 정비한 움막이 덩그렇습니다.

구천사백구십 날 돌 하나씩 쌓은 게 탑이 되고 길이 된 겁니다.
그 오랜 날 산중에서 홀로 3000탑을 쌓은 사연이 애달픕니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시집와 슬하 4남매를 둔 어머니에게
자식 중 둘이 먼저 떠나는 우환이 겹쳤습니다.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우환이 사라질 것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예서 비롯된 겁니다.
돌 하나, 굄돌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염원인 겁니다.
자식을 위한 간절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겁니다.
이름하여 모정탑(母情塔)입니다.

탑을 만나고 가는 이들이 하나씩 탑을 쌓습니다.

탑을 만나고 가는 이들이 하나씩 탑을 쌓습니다.

모정탑을 만나고 가는 이들이 돌을 하나씩 쌓습니다.
또 다른 탑이 생겨납니다. 또 다른 탑 길이 됩니다.
어머니는 돌아갔습니다만,
돌에 밴 어머니의 염원이 우리의 마음에도 탑 길을 내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