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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그린 뉴딜, 탈탄소 전환 계기로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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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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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세를 떨치고 있다. 한국도 어렵게 첫 고비를 넘겼지만, 다행히 지역 봉쇄는 겪지 않았다. 지역 봉쇄를 겪은 중국·인도·미국과 유럽에서는 인간 활동이 줄면서 대기오염이 뚜렷이 개선됐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중국·이탈리아의 경우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일수록 코로나19 환자도 더 많이 발생했고, 치명률도 더 높았다는 연구 논문도 발표됐다.

정부 IT·디지털 뉴딜 추진하지만 #다양한 일자리 만들기에는 미흡 #환경 지키면서 참여도 확대하는 #단기·중장기 프로젝트 마련해야

중국에서는 대기오염 개선으로 수명을 연장한 사람이 8900명으로 추산돼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4600여 명보다 더 많다는 ‘코로나의 역설(paradox)’도 나타났다. 그동안 인류가 자신을 ‘가스실’에 밀어 넣는 것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미세먼지 같은 오염물질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도 크게 줄었다. 사람들이 집안에 갇히니 차량 운행이 줄었다. 해외여행도 어려워지니 항공기 운항도 끊겼다. 석유가 남아돌면서 원유 가격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졌다. 공장과 발전소가 멈추니 석탄 소비도 줄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전 세계 에너지 수요가 6%, 석탄 수요는 8%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 2018년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총회에서 요구했던 ‘2050년 탈(脫) 탄소 사회’의 예고편이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한국동서발전 경주풍력발전단지. [중앙포토]

한국동서발전 경주풍력발전단지. [중앙포토]

전 세계가 ‘탈탄소 사회’를 추구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2050년까지 ‘넷 제로(net-zero)’를 하나의 시나리오로 검토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대부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불가피한 배출은 바이오에너지와 포집·저장 등의 기술로 해결해 순(純) 배출을 제로로 하자는 게 ‘넷 제로’다.

하지만 ‘넷 제로’가 목표라고 해도 지금 같은 ‘경착륙(硬着陸)’은 정답이 아니다. 항공·정유·여행 업계 등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할 수도 없다. 화석연료 소비의 재상승은 불가피하다. 대신 30년에 걸친 장기적인 ‘연착륙’을 추구해야 한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어느 곳이 가장 취약한 곳인지를 파악해 에너지 전환이나 산업구조 개편 때 반영할 필요가 있다.

연도별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추진 현황

연도별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추진 현황

당장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정부와 청와대가 꺼내놓은 ‘뉴딜’ 카드도 다시 살펴야 한다. 정부는 의료·교육 등 비대면 산업 육성이나 디지털 기반의 대형 정보통신기술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뉴딜만으로는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 탈탄소 사회를 향해 내딛는 진정한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 필요한 이유다.

미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린 뉴딜 도입을 요구하는 청년들. [EPA=연합뉴스]

미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린 뉴딜 도입을 요구하는 청년들. [EPA=연합뉴스]

최근의 그린 뉴딜 바람은 코로나19와는 무관하게 지난해 미국에서 시작돼 유럽으로 퍼졌다. 알고 보면 우리도 이미 두 차례 그린 뉴딜을 경험했다.

첫 번째는 1998년 외환위기 때다. 많을 때는 1만 명 넘는 실직자가 ‘숲 가꾸기’ 공공근로사업에 나섰고, 지금도 연간 1900명 정도가 참여한다. 당시 중고 상품을 교환·판매하는 ‘YMCA 녹색가게’ 운동도 시작됐는데, 녹색가게는 한때 전국에 60~70곳까지 늘었다.

두 번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당시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추진한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같은 ‘저탄소 녹색성장’이다. “사회적 논의 과정이 없었고, 실제 내용은 녹색보다 성장에 중심이 있었다”는 국내 비판도 있었지만,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녹색성장위원회는 역할이 축소됐고, 주요 사업이었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생태계 파괴 논란에 휩싸였다.

미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린 뉴딜 도입을 요구하는 샌더스 상원의원,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 [로이터=연합뉴스]

미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린 뉴딜 도입을 요구하는 샌더스 상원의원,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 [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면 세 번째는 어떤 그린뉴딜이 돼야 할까.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박사는 “그린 뉴딜 사업은 장·단기로 구분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고, 단기적으로는 에스코(ESCO·에너지절약 전문기업) 사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SCO사업은 건물 등의 에너지 절약 리모델링에 투자하고, 그 에너지 비용 절감으로 사업비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이 박사는 “대형 건물은 물론 작은 주택까지 시공하면, 각각의 사업 규모·형태에 맞는 다양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땅속에 묻혀 있는 상·하수도관이나 지하시설, 기존 도로·교량의 보수, 폐기물 재활용 산업의 확대도 이 정부 내 단기 과제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 과제는 다음 정부의 구조를 친환경적으로 만들 방안을 지금부터 마련하는 것이다. 차기 정부의 ‘환경·기후·에너지부’에서는 2050년 탈탄소 장기 비전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코로나19 발생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기도 하는데, 그 기후변화를 막는 게 탈탄소 사회다. 2050년 탈탄소 사회는 공짜로 오지 않는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고통 없이 맞이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게 바로 코로나19이 주는 교훈이고, 기후 재앙에 대한 예방 백신일 수도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