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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3~4일 쉬어라? 회사 눈치 보이고 임금 깎일까 걱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아프면 출근하지 말고 3~4일간 쉬세요.”

정부, 휴무보상 기준은 마련 않고 #직장인한테 무조건 쉬라고 권고 #건보 수당 도입땐 1조대 비용 부담 #직장인 55% “무급이면 안 쉴 것”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세가 진정되자 생활방역으로 전환하며 당부한 수칙이다. 수칙은 국민에게 따르도록 요청하는 정부의 권고다. 한데 수칙의 이행을 뒷받침할 보상체계나 제도가 없다. 이렇다 보니 수칙을 낸 정부조차 공공부문에 전면 적용하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직장생활 수칙이 민간 부문으로 확산하거나 근로문화를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강립 중앙재난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4일 브리핑에서 “사업장과 사업주, 근로자 모두에게 코로나19 감염을 차단하는데 (3~4일간 휴식을 취하는) 수칙이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노동 환경과 기업 문화가 걸림돌이다. 사업주가 출근하라고 종용할 수 있다. 아프다고 대놓고 3~4일간 쉴 수 있는 근로자가 몇 명이나 될지도 의문이다. 김 조정관도 이 점을 우려했다. 그는 “기성세대들은 아파도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는 문화에서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근로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수칙 준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실제로 직장 갑질 119가 지난달 14일부터 3일간 직장인 37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유롭게 연차휴가를 못 쓴다는 응답이 43.4%에 달했다.

3~4일 쉴 경우 근로자의 임금을 어떻게 보상할지도 난제다. 직장갑질119 조사에 따르면 ‘무급이라면 쉴 수가 없다’는 근로자가 55.1%였다. 생활수칙이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김 조정관은 “아파서 쉴 경우 대체인력 확보나 유급휴가 부여에 따른 경제적인 보상 문제를 비롯해 부가적인 제도 개선이 아울러 논의돼야 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상병수당 제도가 없다. 도입하려 해도 연 8000억~1조7000억원에 달하는 재정 부담이 걸림돌이다. 김 조정관은 “상병수당은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임금의 90%를 지원받는 고용유지지원금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생활수칙에 따른 휴식은 경영상 휴업이 아니어서다. 현 제도하에서는 유일한 보상책이 연차휴가다. 대부분 기업이 이 제도를 활용하는 이유다. 연차휴가는 유급이다.

결국 정부가 내놓은 직장 내 생활수칙이 온전하게 지켜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고려해 공공부문에 시범실시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이후 민간부문으로의 확산을 노린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정부조차 모든 공공부문에 시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김 조정관이 “가능한 분야가 있는지 (살펴서) 시범실시하려 한다”고 말한 것도 미흡한 제도와 문화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조치다.

다만 현재로선 직장 내 생활수칙에 대한 노사의 반대가 없다. 3개월 넘게 지속된 코로나19 사태로 기업의 가동률이 낮아 일부 근로자가 쉰다고 해도 기업 운영에 타격이 없다. 대체인력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10일 전 고용노동부 주관으로 생활수칙과 관련된 노·사·정 간담회를 열었지만 기업도 대체로 수긍했다”고 말했다. 임 본부장은 “각 기업의 가동률이 워낙 낮은 데다 직원 한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모기업의 임원은 “지금도 발열이나 기침이 나면 기한을 정하지 않고 무조건 쉬도록 하고 있다”며 “그러나 코로나 이후 평상시에도 아프다고 쉬는 식의 인식이 퍼지면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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