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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함구령’에도 180석 곳곳서 터져나오는 ‘개헌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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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압승 후 더불어민주당은 개헌론 부상을 경계했다. 개헌 논의가 그 자체로 갈등 요소를 담고 있는 데다, 자칫 슈퍼 여당이 180석이란 의석수를 믿고 밀어붙이려 한다고 비칠 수 있어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지난 2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헌이나 검찰총장 거취와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코로나 국난과 경제위기, 일자리 비상사태를 타개하는 엄중한 상황”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그러나 이 대표의 공개적인 언급과 달리 여권에서는 개헌론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방점도 제각각이다.

5선에 오른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21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꼭 필요하다”며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고 책임총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날 정세균 국무총리도 “개헌은 앞으로 1년이 골든타임”이라며 “여당이 일방통행식으로 추진해선 안 되고 여야가 합의해서 진행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개헌론 띄우기엔 초선도 가세했다. 이해식(서울 강동을) 당선인은 지난 27일 “행정안전위원회에 들어가서 자치분권 개헌에 적극 나설 생각”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용선(서울 양천을) 당선인은 29일 ‘토지공개념’이라는 급진론까지 꺼내들며 “이번 21대 국회에서 (토지공개념을 포함한) 개헌을 해야 한다”고 했다.

총선 후 여권발 개헌 관련 발언. 그래픽=신재민 기자

총선 후 여권발 개헌 관련 발언. 그래픽=신재민 기자

개헌론이 우후죽순 터져 나오자 유력 당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전당대회(8월 예정) 과정에서 분명히 공론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위기 극복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지만, 20대 대선 전 권력구조 개편 등을 위한 개헌 논의는 필연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권 교체 시기인 7월부터 개헌을 둘러싼 선명성 경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여권 관계자도 “내년 초부터는 여야 각 당이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에 시동을 걸 전망인 만큼 조만간 개헌 논의는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내달 7일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뛰어든 후보들도 개헌과 관련, “코로나19의 한복판인데 사회적 갈등이 생겨선 안 된다”(김태년 의원) “일에는 선후가 있다. 정치적 의제는 잠시 미뤄둬야 한다”(전해철 의원)면서도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재선에 성공한 한 민주당 의원은 “대선과 지방선거가 같은 해(2022년) 치러지는 이번이 개헌의 적기”라며 “행정권력 교체와 의회권력 교체가 2년의 기간을 두고 중간평가식으로 갈 수 있도록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 논의가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8년 3월 26일 김외숙 당시 법제처장이 국회 입법차장실을 방문해 대한민국헌법개정안을 제출한 뒤 진정구 당시 입법차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병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맨 오른쪽은 진성준 당시 정무기획비서관. 변선구 기자

2018년 3월 26일 김외숙 당시 법제처장이 국회 입법차장실을 방문해 대한민국헌법개정안을 제출한 뒤 진정구 당시 입법차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병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맨 오른쪽은 진성준 당시 정무기획비서관. 변선구 기자

민주당은 2018년 이미 한 차례 청와대발(發) ‘4년 중임제’ 개헌안을 띄웠다가 흐지부지된 경험이 있다. 그때와 다른 건 실제 개헌에 가능한 의석수 확보(재적의석 3분의2이상)가 가시권에 있다는 점이다. 현재 범여(汎與)권은 190석(민주당 163+시민당 17+정의당 6+열린민주당 3+무소속 1)이다. 따라서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국민의당 등 범야권에서 10석만 포섭하면 개헌에 필요한 최소 의석인 200석이 될 수 있다.

다만 일방적 개헌 추진, 당내 자중지란 등은 민주당으로도 부담이다. 당장 통합당은 “지금 상황에서 개헌론을 불쑥 꺼내는 건 집권 연장을 위한 의도”(김성원 대변인)라고 비판했다.

2004년 4월 26일 열린우리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강원도 양양 오색그린야드호텔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가해 당시 정동영 의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2004년 4월 26일 열린우리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강원도 양양 오색그린야드호텔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가해 당시 정동영 의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앞서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도 152석으로 과반을 확보했던 17대 총선 직후 개헌론을 띄웠다. 2004년 4월 26일 당선인 워크숍에서 장영달 열린우리당 의원은 “민주개혁세력이 처음으로 과반수를 점유한 이번 국회는 제2의 제헌국회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도 이해찬 의원은 “지금은 17대 국회를 시작해서 4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더불어 중요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개헌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말이 겹치는 2007년쯤 가면 자연스레 논의되지 않겠나”라며 신중론을 폈었다. 그러나 ‘4대 입법’의 무리한 추진 과정에서 삐걱대던 열린우리당은 2007년 노 대통령의 개헌 제의에도 결국 힘을 싣지 못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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