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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영준의 퍼스펙티브

비판 언론 억압하는 언론 개혁은 알 권리 위축시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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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언론 개혁과 시민의 듣는 자유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4·15 총선을 통해 여대야소가 강화됐다. 정부·여당은 의회 권력을 통해 각종 입법에 속도를 낼 것이다. 언론 분야는 조국 사태 이후 진보진영에서 많이 거론된 개혁 영역이다. 정부 여당이 언론 분야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은 합리적 추론이다. 짐작건대 방송법 개정을 통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고, 미디어의 공적 책무를 강화하는 규정을 통해 비판 언론을 제어하려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도 이와 비슷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오보방지법, 종편 막말 규제 강화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총선에서 승리한 정부·여당, 언론 분야 개혁 나설 전망 #징벌적 손해배상제, 오보방지법, 종편 규제 등 거론돼 #저널리즘의 힘은 시민에게 선택 권한 주는 데 있는 만큼 #언론 개혁은 시민의 듣는 권리, 알 권리 확대에 중점 둬야

언론 개혁은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알고자 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다. 모른다는 것은 혼란과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앎이 없는 상태에서 알아가는 상태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는 성경 말씀은 불안과 두려움에 빠진 인간 실존의 상태를 지적한다. 사람은 앎을 통해 무지(無知)에서 지(知), 무명(無明)에서 명(明)의 상태로 옮겨간다. 언론 개혁은 알고자 하는 인간 욕망을 충족시키는 기조 아래 이뤄져야 한다.

보고 싶은 대로 보려는 우리 언론

우리 언론은 사람들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성공적이지 못하다. 우리 언론은 우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보고 싶은 대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참이라고 확신하는 감성의 세계와 과학적 검증을 거친 지식의 세계가 섞여 있다. 보수 매체는 감성 과잉의 유튜브 보도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진보 매체는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침묵하는 인권단체를 비판하지 않는다.

과거 잣대로 미래를 논하는 경우도 흔하다. 19세기 위정척사 정신을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정부의 대북정책은 보편성의 원리가 아닌 내재적 접근법을 원용한다. 내재적 접근법은 우리 안의 위정척사다. 정치권력, 경제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은 들쭉날쭉 제멋대로다.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개인의 자유를 국가가 필요 이상으로 침해하는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잦은 부동산 정책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만 떨어뜨렸다. 프레임을 유리하게 선점하는 스핀 닥터(spin doctor)들이 SNS에서 거침없이 활동한다. 스핀 닥터들이 쏟아내는 정보 교란, 헛정보, 역정보로 사람들은 확증편향의 세상에 살게 됐다.

이번 총선에서는 여야 정책 대결이 잘 보도되지 않았다. 코로나 보도로 이슈 보도는 제한적이었다. 막말 공방 같은 현상 보도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검언 유착 의혹 보도에서 보듯 진영 논리에 따른 편 가르기는 여전했다. 우리 언론의 편향성은 시민의 정치적 다양성보다 더 넓고 깊다. 코로나 직전까지만 해도 정부 여당은 권력 남용과 침체 위기의 경제 상황, 대북 저자세 등으로 비판받았다. 선거 기간 동안 국가 채무 증대, 청년 실업, 출산율 저하, 최저임금제 등의 문제는 공론장에서 사라졌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다양한 선택지에서 시민이 판단하게 해야

언론 자유는 이제 기자나 언론사를 주목해서는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대신 사람들의 듣는 자유(Freedom to hear), 알 권리(Right to know)가 충족되었는지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언론 자유는 시민사회의 알 권리, 알 자유, 듣는 권리, 듣는 자유와 동전의 양면이다. 언론 자유 없이는 시민의 듣는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 시민의 알 권리가 보장돼야 언론 자유의 가치가 확인된다. 따라서 언론 자유는 시민사회가 공적 이슈의 다층적 특성을 듣고 보고 아는 데 제한이나 간섭·억압이 없는 상태를 보장해야 한다.

사회적 이슈의 특성을 언론 보도가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시민의 듣는 자유, 듣는 권리가 침해돼 언론 자유는 지켜지지 못한다. 언론 자유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시민사회 스스로 보도의 진실성·편향성을 판단하게 하는 필요조건이다. 시민에게 듣는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 이유는 모두가 동의하는 절대적 진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것을 인정한다면 다양한 선택지 가운데 잠정적인 진리를 찾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의견 경쟁을 통해 진리에 근접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언론 자유의 가치이며 사회 진보의 방향이다.

언론 개혁은 언론 자유뿐 아니라 시민의 듣는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들을 것인지 듣지 않을 것인지는 정치권력이 정하는 게 아니다. 시민의 듣는 자유는 침해할 수 없는 본질적 자유다.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손해배상 청구로 으름장을 놓는다고 시민의 듣는 자유가 보장될 수 없다. 언론 보도의 진실성을 놓고 시민이 토론하게 해야 한다.

저널리즘은 시민에 선택 강요하지 말아야

정치권력은 언론 자유와 시민의 듣는 자유가 상호 협력적으로 조응하는지 살펴보면 된다. 명백한 불의(不義)가 있다면 정부가 제한적으로 나서야 한다. n번방 사건은 정부가 진작 개입했어야 하는 경우다.

시민의 듣는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려면 언론의 독립성이 필수적이다. 정치권력은 공영매체에 개입하던 악습에서 손을 놓을 때가 됐다. 인·허가권이나 정부 광고를 수단으로 신문과 방송·인터넷 매체의 군기를 잡는 행위도 중단할 때가 됐다. 언론 개혁은 시민의 듣는 권리, 알 권리를 보장하고 확대하는 개혁이어야 한다.

저널리즘의 힘은 시민에게 선택 권한을 주는 데 있다. 선택을 강요하는 데 있지 않다. 말과 말, 사상과 사상이 공개된 장소에서 자유롭게 논쟁을 벌이게 해야 한다. 시민은 그 과정을 보며 진실과 의견을 구분할 것이다. 언론 규제를 언론 개혁으로 미화하면 시민의 듣는 권리는 위축된다. 정부 여당의 언론 개혁이 시민의 듣는 자유, 알 권리를 침해할지 우려된다.

언론 보도 따라 유권자 투표 행위 달라져

토머스 패터슨

토머스 패터슨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은 시민에게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고 있는가. 미국 하버드대 토머스 패터슨 교수는 이에 부정적이다. 그는 미국 언론의 정치 보도 분석을 통해 언론이 유권자의 의제(Voters’ agenda)가 아닌 언론의 의제(Reporters’ agenda)에 치중하며, 정치 현상을 대개 부정적으로 보도해 정치 불신을 심화시킨다고 비판했다.

래리 바텔스

래리 바텔스

우리 언론도 이런 보도 관행이 여전하다. 우리는 언론의 극심한 정파성이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유권자의 판단이 언론 보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실증 연구도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 래리 바텔스 교수는 미국 대통령 선거 정책 이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유권자’(Informed voters)와 ‘잘 알지 못하는 유권자’(Uninformed voters) 사이에 7%포인트의 득표율 차가 있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유권자의 투표 행위는 언론 보도 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라 할 수 있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