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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뿌리는 로마와 진·한…중국이 부족한 영역은 ‘법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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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호 16면

『용과 독수리의 제국』 저자 어우양잉즈

트럼프(왼쪽)와 시진핑은 각기 ‘독수리 제국’ 로마와 ‘용의 제국’ 진나라·한나라를 승계했다. 미·중 대결을 용과 독수리의 대결로 보는 시각은 ‘역사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왼쪽)와 시진핑은 각기 ‘독수리 제국’ 로마와 ‘용의 제국’ 진나라·한나라를 승계했다. 미·중 대결을 용과 독수리의 대결로 보는 시각은 ‘역사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은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건곤일척(乾坤一擲) 혈투를 벌이고 있다. 미국은 우리의 혈맹이요 중국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양쪽을 모두 중시해야 한다. 양쪽의 여러 측면을 두루두루 살펴야 한다. 양대 ‘제국’의 뿌리를 캐다 보면 로마제국과 진나라·한나라가 나온다.

서양서 전쟁은 약탈을 위한 약탈 #동양은 영광 아닌 필요악으로 봐 #‘한족’의 중국 제국 끈질긴 생명력 #‘로마인’ 못 남긴 로마제국은 소멸 #법치는 로마 이어받은 서구 가치 #중국이 열심히 노력해야 할 부문

『용과 독수리의 제국(龍與鷹的帝國, The Dragon and Eagle)』은 중국 진·한(秦·漢) 제국과 로마제국을 비교한 역저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두 제국은 존재 시기도 비슷했고 역사에 남긴 유산의 중요성도 비슷했다.

G2 시대 두 주역의 뿌리를 간접적으로 비교한 이 책은 두 제국의 지리 환경·역사 조건·사회구조·관리를 속속들이 해부한다. 책 내용이 ‘미국보다는 중국 편향적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중국 편향성 정보, 그 자체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우리의 시각 자체가 미국에 치중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을 촉구한다.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 어우양잉즈(歐陽瑩之)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휴렛팩커드와 모교 MIT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물리학자다. 전작 목록이 화려하다. 그는 이런 책들을 썼다. 『양자장론은 어떻게 가능한가』(옥스퍼드대 출판부, 1995), 『복잡계 이론들의 토대』(케임브리지대 출판부, 1999), 『일상생활과 인지과학 속의 마음』(MIT 출판부, 2001), 『엔지니어링: 끝없는 프론티어』(하버드대 출판부, 2004).

어우양잉즈

어우양잉즈

저자가 『용과 독수리의 제국』을 쓴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다. 2005년 별세한 아버지는 영어사진을 들고 미국 대학 입학 규정을 정독해 딸을 MIT로 보냈다. 딸은 아버지의 뜻에 감복해 중국학 연구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이번 책이 그 첫 성과물이다. 저자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다음이 요지다.

중국 독자들 법가의 성취 서술에 관심

한국 독자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는 게 좋을까.
“한국과 중국은 비슷한 전통 문화를 공유한다. 내가 보기에는 한나라나 로마제국 시대에서나 오늘날에서나 중요한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책에 대해 미국 독자와 미국 독자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차이가 있나.
“미국 독자는 이 책을 ‘비교사학(comparative history)’ 차원에서 이해했다. 내가 아는 미국 독자는 대부분 학자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나타난 동양과 서양의 정치적·군사적 차이를 흥미롭게 비교하며 중국이 역사적으로 이룩한 성과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반면 중국 독자들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미·중 경쟁에 대한 힌트를 얻는 데 관심이 많다.”
중국 독자들 반응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언급한다면?
“중국 독자들은 동양과 서양이 위대함의 면에서 서로 대등하게 경쟁했다는 것을 알고 행복하다. 중국 독자들은 이러한 면을 주목한다. 서양이 동양보다 더 군국주의적이었다. 서양은 ‘약탈을 위한 약탈’을 자행했다. 그 정점은 19세기 제국주의다. 그 뿌리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다. 그리스로마 민주주의는 병사·시민에 의존했다. 병사·시민에 대한 의존이 퇴색했을 때 로마제국 또한 쇠퇴의 길을 걸었다. 반면 동양의 전통은 상대적으로 보다 평화주의적이었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폭력적이었던 진나라도 로마제국과 비교 대상이 아니다. 중국인들도 싸웠고 죽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전쟁은 ‘필요악’이었을 뿐 ‘영광’은 아니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한글판 표지

『용과 독수리의 제국』 한글판 표지

진나라·한나라가 남긴 최대의 유산은 무엇인가.
"한족(漢族)이라는 백성을 성공적으로 남겼다. 이 면에서 한나라는 로마제국보다 우월하다. 로마제국은 지중해 전역에서 ‘피플(people)’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이 차이 때문에 중국 제국은 집요하게 계속됐지만, 로마제국은 사라졌다.”
이 책은 미·중 경쟁에 무엇을 시사하는가.
"중국 독자들은 시황제와 법가의 성취에 대한 이번 책의 서술에 관심이 많다. 기존의 역사 서술은 시황제나 법가를 깎아내렸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법에 대한 존중’은 로마적인 서구의 가치다. 일반적으로 중국에 부족한 서구적 가치다. 중국의 법가(法家)도 ‘법치’ 관념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으깨졌다. ‘법에 의한 지배’는 내가 이 책에서 탐구하는 중요한 아이디어다. 사람들은 보통 동양인들이 ‘가족 가치’를 귀중히 여기기에 ‘법 앞의 평등’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 가치’는 로마인들에게도 최고의 가치였다. 미·중 경쟁에서도 법치는 중국이 열심히 노력해야 할 영역이다.”

유교 엘리트들 ‘마음의 아편’에 빠져 안주

유럽연합(EU)은 로마제국의 후예인가.
"중국은 진나라·한나라의 후예다. 유럽연합(EU)은 로마제국의 후예가 아니다. 일단 EU는 정신 자체가 로마제국과 다르다. EU는 내부적인 협력을 추구하지만, ‘EU 제국’은 상상하기 힘들다. 한편 미국과 로마제국은 오로지 외교정책에 있어서만 비교 대상이다. 특히 군사주의와 예외주의의 측면에서만 그러하다. 진나라·한나라, 로마제국 등 고대 제국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군사력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맹목적인 애국주의는 일시적인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역효과를 낳는다. 미·중 경쟁도 이 교훈을 배워야 한다.”
로마제국은 패망 후 복원되지 못했다. 진나라·한나라는 계속 승계됐다. 차이가 뭘까. 지리적으로 중국은 거대한 단일 땅덩어리인데 반해 유럽은 파편적인 땅이기 때문인가.
"로마제국이 부활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간단한 답이 없다. 내가 책에서 설명한 것처럼 ‘내부적’ 지리가 주요 요인은 아니다. 중국의 내부 지리 또한 분열적이며, 특히 독일의 평야는 거대하다. ‘내부적’ 지리보다 ‘외부적’ 지리가 중요했다. 유럽과 지중해는 모든 방면에서 침략과 문화적 영향에 노출됐다. 반면 중국의 강적은 북방에 국한됐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중국의 시야는 폐쇄적이었으며 내부로 향했다.

로마는 ‘지중해 제국’이었다. ‘유럽적 제국’이 아니었다. 큰 차이가 있다. 로마인들에게 로마에 속하지 않은 유럽인들은 야만인들이었다. 그들은 수적으로 다대했다. 유럽의 땅들은 대체로 농업에 적합했다. 유럽의 ‘야만’ 부족들은 각기 정착해 고유의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반면 중국 북방 유목민들의 경제적 토대는 아주 작은 인구만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을 침공한 유목민들은 농업에 적응하고 사라졌다. 중국에 새로운 피와 활력을 추가했다. 그리스로마 문화는 지중해에서 많은 경쟁자를 직면했으며, 여러 지역에서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반면 중국의 왕조들은 지역에 뿌리내리는 공동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로마제국의 정치적 구조는 진나라·한나라에 비해 ‘열등’했다. 로마제국의 중앙정부에서 가장 큰 취약점은 안정적인 권력승계가 없었다는 점이다. 황위를 둘러싼 다툼은 종종 내전을 낳았다. 로마제국은 한나라만큼 안정적이지 못했다.”

진나라·한나라가 중국사에 남긴 부정적인 유산이나 약점은 무엇인가.
"진나라의 법가(法家)가 설계한 국가 구조는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이 진나라를 인류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근대 국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 황제들이 세습하고 관료들이 행정적으로 다스리는 구조는 큰 변화 없이 2000여년 동안 지속했다. 시황제가 세습 귀족제를 폐지한 이래 중국을 지배한 것은 문예 엘리트였다. 세계사적으로 유일한 선진적인 이러한 구조는 중국 제국의 안정에 기여했다. 하지만 중국 제국의 안정은 사상적 정체성을 낳았다. ‘마음의 아편’에 중독된 유교 지식인들은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아이디어를 창출하지 않았다.”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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