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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자기계발서 아버지, 마키아벨리 『군주론』 비판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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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호 22면

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 〈3〉 발타사르 그라시안 『영웅론』

디에고 벨라스 케스가 그린 펠리페 4세(1605~1665)의 초상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로렌초 2세 데 메디치(1516~1519)에게 헌정했듯이 그라시안은 『영웅론』을 펠리페 4세에게 헌정했다. [사진 프릭 컬렉션]

디에고 벨라스 케스가 그린 펠리페 4세(1605~1665)의 초상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로렌초 2세 데 메디치(1516~1519)에게 헌정했듯이 그라시안은 『영웅론』을 펠리페 4세에게 헌정했다. [사진 프릭 컬렉션]

우리 모두가 ‘군주’는 될 수 없겠지만, 모두 ‘영웅’은 될 수 있다.

16~17세기 남부 유럽 3대 문호 #“완벽한 인간, 판단 정확 취향 성숙” #군주 뛰어넘는 영웅의 조건 제시 #“영웅은 자신의 능력을 감춰야” #이상적 크리스천 지도자상 밝혀

발타사르그라시안(1601~58)은 ‘근대 현실주의 인생학’ ‘근대 자기계발서의 아버지’다. ‘근대 현실주의 정치학의 아버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와 함께 현실주의 세계관의 쌍벽(雙璧)이다.

같은 양대 산맥이지만, 마키아벨리가 더 유명하다. 어쩌면 정치학과가 마키아벨리를 비조(鼻祖)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학과’나 ‘자기계발학과’라는 학과는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라시안은 무명이다. 지금까지는. (인공지능이나 제4차산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자기계발학과가 하루빨리 생겨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그라시안은 마키아벨리나 『돈키호테』(1605)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와 더불어 16~17세기 남유럽 문화권의 3대 작가다. ‘주장하건대, 거의 틀림없이(arguably)’ 그렇다.

라로슈푸코·니체의 롤 모델

그라시안은 프랑스 작가 라로슈푸코(1613~80)와 니체(1844~1900)의 롤모델이었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는 그라시안의 원저를 읽기 위해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그라시안은 경쟁자 없는 ‘근대 아포리즘의 아버지’다.

『영웅론』은 『군주론』보다 읽기 쉬우면서도 어렵다. 『군주론』에 비해 역사적 사실을 몰라도 되니까 쉽다. 『군주론』에 비해 문장이 더 압축적이라 어렵다.

타임라인 상으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1532)이 먼저, 그라시안은 『영웅론(El héroe)』(1637)이 나중이다. 100여년 차이가 있다. 『영웅론』은 『군주론』을 비판하면서 이상적인 크리스천 지도자상을 제시한 책이다. 아마도 그라시안은 마키아벨리를 의식했으리라. 마키아벨리와 그의 『군주론』을 뛰어넘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도 많았으리라.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영웅론』이다. 그라시안에게 군주와 영웅은 거의 동의어다. 군주이자 영웅인 역사적 인물이 있다. 또한 군주는 아니지만, 군주를 능가하는 영웅도 많다. 예컨대 이순신 장군이나 김구 선생이나 스티브 잡스나 헬렌 켈러는 군주는 아니지만, 군주들보다 더 찬란하게 인류 역사에서 빛난다.

그라시안이 정의하는 영웅은 이렇다. “완벽한 인간으로서 판단력이 정확하고 취향이 성숙하다. 들을 때에는 경청하고 말할 때는 현명하다. 행동은 재빠르다. 완벽하기로는 만물의 중심이다.”

스페인 국립원격교육대(UNED)가 소장한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초상화. [사진 아라곤백과사전]

스페인 국립원격교육대(UNED)가 소장한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초상화. [사진 아라곤백과사전]

발타사르그라시안은 1619년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했다. 1635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귀족과 장군들의 고해신부였으며 여러 예수회 대학에서 교수·학장으로 일했다. 군종신부로서 전쟁의 현장으로 갔다. 글 때문에 예수회로부터 추방될 위기에 여러 번 처했다. 조직의 허가 없이 책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빵과 물만의 식사’라는 벌을 받기도 했다. 별세 얼마 전에는 ‘종이도 펜도 잉크도 없이’ 수감시키겠다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그라시안의 여러 저술 중에서 대표작으로 딱 두 편을 꼽는다면, 『영웅론』외에 『오라클』이 있다. (『영웅론』의 완역 영문판으로 1764년 커브빌 신부의 판본이 있다. 부분 번역으로는 2005년 영문판 크리스토퍼 모러의 『A Pocket Mirror for Heroes』와 그 한글판인 『영웅을 위한 손거울』이 있다. 한글판은 현재 절판 상태지만 온라인 헌책방에서 살 수 있다.)

그라시안은 『영웅론』에서 영웅의 자질을 이렇게 압축해 표현한다.

-영웅은 자신의 능력의 깊이와 너비를 감춰야 한다. (☞ 영웅은 일정한 ‘신비주의’가 필요하다.)
-영웅은 자신의 열정의 대상을 숨겨야 한다. (☞ 내가 무엇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지를 알면, 이를 악용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영웅에게는 뭔가 ‘즈 느 세 콰(je ne sais quoi)’, 즉 정의하기 힘든,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것,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 영웅은 정의한다. 정의의 대상이 아니다.)

예수회에 밉보여 마음 고생

『영웅론』의 일부가 포함된 한글판 『영웅을 위한 손거울』의 표지.

『영웅론』의 일부가 포함된 한글판 『영웅을 위한 손거울』의 표지.

-영웅은 자신에 대한 평판을 갱신해야 한다. (☞ 5년 전, 10년 전 하늘을 찌르던 나에 대한 평판이 지금은 땅바닥에서 나뒹굴고 있는지 모른다. 갱신하면 된다.)
-영웅은 취향이 섬세하고 정교해야 한다. (☞ 하지만 가장 투박한 취향이 가장 고급스러운 취향일 수도 있다.)
-영웅은 위대하고도 숭고한 분야에서 탁월해야 한다. (☞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권력이나 돈이 가장 위대하고도 숭고한 분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힘들다.)
-영웅은 자신의 자질 중에서도 무엇이 두드러진 자질인지 알아야 한다. (☞ 영웅 또한 ‘선택과 집중’ 법칙을 잘 지켜야 한다.)
-영웅은 운명이 자신에게 맡긴 배역을 알아야 한다. (☞ 셰익스피어(1564~1616)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세상·세계는 무대요 우리는 모두 그 무대의 등장인물이다.)
-운명이 자신을 떠나기 전에 언제 퇴각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 손뼉 칠 때 떠나야 한다. 하지만 운명은 내게 퇴각 시점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퇴각 시점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

그라시안이 마키아벨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대목은 다음 두 대목이다. 그라시안은 사랑과 믿음을 내세운다. 그라시안은 이렇게 주장했다.

-영웅은 세상의 사랑을 얻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영웅을 완벽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답한다면 영웅이 종교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리석음을 활용하고, 거절하는 법을 알라

그라시안은 이렇게 말한다.

-장수의 비밀. 두 가지가 단명의 원인이다. 어리석음과 부도덕함이다. 어떤 이들은 삶을 유지할 지능이 없어서, 어떤 이들은 의지가 없어 그들의 삶을 빼앗긴다. 덕(德)은 그 자체가 보상이요, 악덕은 그 자체가 형벌이다.
-성공이 만족을 주는 건 희귀하다.
-거절하는 법을 알라.
-지식을 하인으로 삼을 수 없다면, 지식을 친구로 삼아라.
-소수와 더불어 생각하고 다수와 더불어 말하라.
-어떤 때는 두 번째 생각 다음에, 어떤 때는 첫 충동에 따라 행동하라.
-온 세상과 더불어 미치는 게 나 홀로 지혜로운 것보다 더 좋다.
-인간의 삶은 다른 인간의 악의와 싸우는 전쟁이다.
-뭔가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일종의 거짓말이다.
-준비는 행운의 어머니다.
-기존의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게 새로운 친구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어리석음을 활용하라. 가장 현명한 자는 가끔 어리석음을 카드로 쓴다. 가장 위대한 지혜는 지혜롭지 않게 보이는 데 있다.
- 한 번에 약간의 선(善)을 행하되, 자주하라. 되돌려 받을 가능성을 상회하게 주면 절대 안 된다.
- 절대로 잃을 게 없는 사람과 다투지 말라. 그와 다투게 되면 불평등한 분쟁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 지식과 용기는 위대함의 요소다. 지식과 용기는 불멸이기에 불멸을 준다.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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