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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선발은 숫자에 불과, 마음속 에이스는 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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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유희관. [뉴시스]

유희관. [뉴시스]

“비록 팀에서는 5선발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에이스다.”

8년 연속 10승 도전 두산 유희관 #22일 키움전 선발 5이닝 무실점 #느림의 미학 탓 저평가 되는 편 #FA 앞두고 “제대로 평가받겠다”

프로야구 두산 베이스 투수 유희관(34)은 올 시즌을 앞두고 어느 해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생애 최고 성적을 내기 위해서다. 몸무게를 99㎏에서 94㎏으로 빼고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그런 노력이 2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연습경기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선발 등판한 유희관은 5이닝 동안 67개의 공을 던져 안타 2개, 볼넷 1개만 내주며 무실점 호투했다. 삼진은 5개를 잡았다. 1회 초 세 번째 타자 박동원부터 5회 초 두 번째 타자 임병욱까지 12타자를 연속해서 범타로 돌려세웠다. 키움의 중심 타자인 3번 이정후, 4번 박병호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은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자체 청백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유희관은 스프링캠프부터 청백전까지 5차례 등판했다. 14이닝 동안 16안타를 내줬고 8실점(7자책점) 했다. 평균자책점은 4.50이다. 김태형 두산 감독이 “투구 밸런스가 괜찮다. 컨디션이 아주 좋다”고 얘기해 기대가 컸는데, 역시 개막이 다가오면서 페이스가 올라왔다.

유희관은 올해도 5선발이 유력하다. 외국인 원투펀치 라울 알칸타라(28·도미니카공화국)와 크리스 플렉센(26·미국), 그리고 이영하(23)가 1~3선발을 맡을 예정이다. 유희관은 “승리를 많이 해도 에이스 타이틀은 더스틴 니퍼트(39·미국·은퇴)나 이영하에게 붙었다. 그래도 항상 마음속으로는 내가 ‘에이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말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유희관은 2015년 18승(5패)을 올렸지만, 니퍼트가 에이스 대접을 받았다. 부상으로 정규시즌 6승(5패)에 그쳤던 니퍼트는 가을야구에서 엄청난 역투로 우승을 이끌었다. 유희관은 또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7시즌 연속으로 10승 이상 거뒀지만, ‘토종 에이스’ 호칭은 11살 어린 후배 이영하에게 돌아갔다. 이영하는 2018년 10승(3패), 지난해 17승(4패)을 거둬 두산의 중심투수로 떠올랐다.

유희관은 수치상으로는 좋아도 강속구 투수가 아니라 마이너스 평가를 받는다. 직구 평균 구속은 시속 130㎞ 안팎이다. 대신 슬라이더, 커브, 싱커 등 다양한 변화구를 섞어 제구력으로 승부한다. 강속구 없이 제구력만으로 10승 이상 거두는 건 대단한 일이다. 투구의 새로운 세계를 연 그에게는 ‘느림의 미학’이라는 표현이 따라다닌다. 그도 “강속구를 던지지 못하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말할 만큼 자신의 투구에 자부심이 있다.

올해 유희관은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올 시즌을 잘 보내면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그는 플러스 평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대신 정확하게 평가받고 싶은 눈치다. 이를 위해 올 시즌도 10승 이상 거두는 걸 목표로 삼았다. 만약 달성할 경우 8년 연속 두 자리 수 승리라는 대기록을 수립한다. 이는 장원준(2008~17년, 군복무기간 제외)의 뒤를 잇는, 좌완 투수 역대 최장 시즌 10승 타이기록이다. 우완 투수를 포함한 역대 최장 기록은 이강철 KT 위즈 감독이 보유한 10년 연속(1989~98년)이다. 그는 “10승을 하면 좌완 투수 공동 1위에 최고 선배님과 이름을 나란히 한다. 기회가 되면 이강철 감독님 기록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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