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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코로나가 알려줬다, 가난한 자, 부자 모두 한 배를 타고 있음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47)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은 우리 인류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 차드 시인 무스타파 달랩의 글이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변화 중의 하나다. 여느 때 같으면 관심 밖의 나라, 이름도 잘 알지 못했던 그 시인의 글이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글을 읽어 보자.

“아무것도 아닌, 그 ‘하찮은 것’에 의해 흔들리는 인류. 그리고 무너지는 사회. 코로나 바이러스라 불리는 작은 미생물이 지구를 뒤집고 있다. (중략) 그것은 모든 것에 새로운 의문을 던지고 이미 안착된 규칙들을 재배치한다.”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TV 시청을 거의 하지 않던 내가 요즘 부쩍 TV 앞에 앉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뉴스를 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딱 멎어버린 듯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함이기도 하다. 어느 날 TV 앞에 앉았는데 마침 모 방송에서 엄홍길 대장의 네팔 여행기를 재방송했다. 자신이 지어준 네팔 오지의 학교를 방문해 학생과 교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모습. 그중 인터뷰에서 엄홍길 대장은 16좌 완등을 한 후 자신에게 한 약속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과 함께했던 셰르파, 포토들의 후손들을 위해 16개의 학교를 지어주겠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세계 최초로 8000m급 16개 고봉을 완등한 거목 엄홍길. 현재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해 네팔 등 세계의 열악한 환경에 처한 나라에 따뜻한 구호의 손길을 펼치고 있는 작은 거인이다.

딸께숼 휴먼스쿨 건립 협약식 후 네팔 현지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엄홍길 대장(가운데). [중앙포토]

딸께숼 휴먼스쿨 건립 협약식 후 네팔 현지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엄홍길 대장(가운데). [중앙포토]

사실 엄홍길 대장이 일반적 관점에서 보면 썩 잘생긴 얼굴의 미남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세상 남성 중에 엄홍길 대장이 단연 최고의 미남이라고 추켜세운다. 내 이런 착시(?) 현상은 왜 일어날까?(ㅎㅎ). 그건 엄홍길 대장이 이룬 업적의 후광효과 때문이 아니라 그 성과를 불쌍한 이웃, 자신의 업적을 도운 이들에게 환원하는 마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로 이웃에 대한 봉사와 기여하는 마음과 행동이 그의 얼굴과 표정에 고스란히 녹아나서일 게다.

그러고 보면 인생후반부 얼굴은 그 사람의 인격을 표현한다고 한 말이 과언은 아니다. 난세에 영웅 난다고 세상이 하 수선하니 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자고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나타나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반면에 자신만 살자고 더 틀어쥐는 인간들도 있지만.

요즘의 상황을 보면서 이 세상의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의 평가 기준을 달리해 보았다. 그것 또한 변화라면 변화다. 과거의 선악 기준은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냐,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이냐였다면 이제는 좋은 사람은 ‘함께 하고자 하며 다른 이에게 기여와 봉사를 하는 사람’이고, 나쁜 사람은 나쁜 행동을 해 다른 이들에게 폐악을 끼치는 부류가 아니라 ‘나만 살겠다는 사람, 즉 나뿐인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된 가치 기준에 의해 볼 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신음하는 이웃과 다른 나라를 위해 거액의 돈을 기부하고 마스크를 사서 보내 준 마윈 회장, 신종 코로나 퇴치를 위해 거액의 성금을 기탁하고 인류 공동으로 퇴치를 위한 신약개발과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거액을 희사한 빌 게이츠 부부는 분명 좋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이룩한 성공이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와 국가가 도와줘서 이룬 성과며, 이를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국가로부터 엄청난 특혜를 받고, 국민의 혈세를 지원받아 대기업을 일군 우리네 재벌들이 하는 행태하고는 달라도 너무 달라 부럽기까지 하다.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이룬 부를 이웃과 함께 나누겠다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양 자신만이 배부르면 된다는 부류의 사람들 사이의 향기는 사뭇 다르다. 아름다운 꽃향기와 역겨운 구린내 바로 그 차이이다. 얼마 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프란체스코 교황이 보낸 메시지가 있다.

“다른 이들을 위한 삶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이들과 서로서로 돕고자 태어났습니다. 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 선해 보입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다른 이들이 당신 덕분에 행복해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기대어 사는 이웃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서로 돕고자 나선다면 신종 바이러스 사태의 조기 종식은 물론, 함께 하며 아름답게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Pixabay]

우리 모두가 함께 기대어 사는 이웃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서로 돕고자 나선다면 신종 바이러스 사태의 조기 종식은 물론, 함께 하며 아름답게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Pixabay]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다. 이 메시지의 뜻을 이해 못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건 자신만의 생명을 위해 어떤 행동이라도 서슴지 않는 짐승과도 같다. 현재 인류는 한 가족, 한 사회, 한 국가를 벗어나 전 인류가 고통받고 있으며 인류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제까지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는 요구를 우리에게 하고 있다. 그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혼자만 살겠다는 이기를 버리고 인류 모두가 공존하기 위해 서로 돕고 함께 사는 자세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물론 나부터다.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다시 한번 챠드의 시인 무스타파 달랩의 글을 살펴보자.

“우리는 곧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으며, ‘약함’과 ‘연대성’의 가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모두 한배에 타고 있음을…”

우리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한 배에 타고 있다. 물이 새 곧 가라앉을 배 안에서 나만 편하면 된다고 한다면 공멸만이 있을 뿐이다. 비단 세계적 위업을 남긴 엄홍길 대장이나 빌 게이츠, 마윈 같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함께 기대어 사는 이웃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서로 돕고자 나선다면 신종 바이러스 사태의 조기 종식은 물론, 함께 하며 아름답게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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