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inter view] “캐머런 39세 보수당 대표, 우린 젊은 보수 기회 안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통합당 30대 낙선·낙천자 쓴소리
“지도부 아스팔트 보수에 휘둘려
광장의 민심 좇다 공감능력 상실” 

김수민(청주 청원) #“가장 힘들었던 건 중진들 막말 #세월호는 시대 아픔, 왜 문제 삼나” #천하람(순천-광양-곡성-구례갑) #“코로나19 대응 쿨하게 칭찬해야 #끝까지 발목만 잡으니 국민 외면” #김재섭(도봉갑) #“삭발 같은 이벤트 쇼는 그만 #서민들 찾아가 목소리 들어야” #이윤정(후보등록 전날 공천 박탈) #“반대자 찾아 설득해야 할 지도부 #광장집회·유튜브서 힐링하고 와”

봄비 내린 일요일(19일) 저녁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의 30대 정치인 4명을 만났다.

이들은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는 것은 극좌·극우 모두 똑같다”며 “‘대깨문’처럼 통합당도 아스팔트 보수와 유튜버에게 휘둘려 대중적 공감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념과잉과 진영논리에 빠진 문박근혜 시대를 넘어 실용으로 가야 한다”며 “세상의 변화를 못 읽고 인물·철학을 바꾸지 않으면 조만간 폐기될 것”이라고 했다.

비례대표 의원에서 처음 지역구에 출마해 44.4%를 얻은 김수민(34·충북 청주 청원), 고향(대구) 대신 호남으로 간 김앤장 출신 변호사 천하람(34·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고 김근태와 그의 부인 인재근의 지역구에 도전한 김재섭(33·서울 도봉갑), 오디션을 통해 받은 공천장을 후보 등록 전날 빼앗긴 이윤정(33·경기 의왕-과천). 이들 청년 정치인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청년 정치가 생각하는 선거 참패의 원인은 세 가지다. 객관적 현실 인식의 부재와 공감능력 상실, 그리고 무능이다. 이들은 “130석은 무난하다고 할 만큼 상황을 안일하게 봤다”(천하람)며 “황교안 대표가 투표 이틀 전에야 절하고 다녔는데, 그만큼 절실함이 없던 것”(이윤정)이라고 했다. 반면에 2030 시민들은  ‘코로나 저리 가라’ ‘신천지당’ 같은 싸늘한 시선을 보였다고 한다.

“2030은 빵·햄·소스 다 따로, 통합당이 아는 건 세트메뉴뿐”

보수정당에 미래는 있을까. 19일 저녁 이번 총선에 미래통합당으로 나섰던 30대 정치인 4명이 만나 선거 패배의 원인과 보수의 개혁 방향을 논의했다. 이들은 ’모든 걸 바꾸지 않으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이윤정 예비후보와 김수민·김재섭·천하람 후보. 변선구 기자

보수정당에 미래는 있을까. 19일 저녁 이번 총선에 미래통합당으로 나섰던 30대 정치인 4명이 만나 선거 패배의 원인과 보수의 개혁 방향을 논의했다. 이들은 ’모든 걸 바꾸지 않으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이윤정 예비후보와 김수민·김재섭·천하람 후보. 변선구 기자

관련기사

선거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중진들의 막말이었다. “심재철 원내대표가 ‘문재인 탄핵’을 이야기하니 중도층까지 돌아서버렸다.”(천하람), “세월호는 시대의 아픔이다. 보수·진보를 떠나 이건 상식의 문제인데 굳이 왜 문제를 삼는지 모르겠다.”(김수민), “5·18처럼 이미 사회적 합의가 끝난 이야기에 자꾸 시비 붙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김재섭)

이들은 막말의 원인을 공감능력 부재에서 찾았다.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이다. 이윤정은 “2030세대는 샌드위치 하나를 먹어도 빵, 햄, 치즈, 야채, 소스 등을 일일이 고른다”며 “통합당이 아는 건 세트 메뉴뿐”이라고 했다. 김재섭은 보수 유튜브 채널 출연 당시 일화를 전했다. “25분간 정권 비판하고, 마지막 5분에 김영삼·오바마를 존경한다고 했더니 ‘사상 검증이 덜 됐다’며 댓글로 쌍욕을 들었다”고 했다.

다른 청년 정치인들도 보수 유튜브는 큰 부담이다. “중앙당에서 유튜버들 편의를 봐주라고 한다. 중진들도 적극 출연해 시청자들이 듣고 싶은 말만 한다. 그러면서 말실수, 가짜뉴스가 확산된다.”(천하람), “자극적인 말로 개인은 튈지 몰라도 당 전체엔 마이너스다. 보수 채널에선 10개 중 1개만 달라도 ‘대깨문’이라고 배척한다.”(이윤정), “버려야 얻는데 버리지 못하니 얻는 게 없다.”(김수민)

광장 정치에도 비판적이었다. 천하람은 “집회·시위는 약자들의 의견 표출인데, 국민 누구도 통합당을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윤정은 “반대자들을 찾아가 설득해야 할 지도부가 광장 집회나 극우 유튜브 채널에서 힐링하고 위안받고 온다”고 했다. 김수민도 “외연을 확장하려면 아스팔트 우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합당의 선거 핵심 메시지였던 ‘문재인 정권 심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이들은 공통적으로 “‘누가 누굴 심판하려 하느냐’는 게 시민 다수의 의견이었다”고 했다. “코로나19 대응처럼 잘한 건 쿨하게 칭찬해야 한다. 끝까지 발목만 잡으니 통합당 뽑으면 국난 극복이 어렵겠구나 생각한 거다.”(천하람), “처음 코로나19 대응이 부실하긴 했지만 판세가 바뀌었다. 국민은 다수가 잘했다는데 그걸 모르고 비판만 하니 생떼처럼 보였다.”(이윤정)

이윤정, 김수민, 김재섭, 천하람(왼쪽부터)

이윤정, 김수민, 김재섭, 천하람(왼쪽부터)

현장에서 느낀 진짜 민심은 어땠을까. 이윤정은 “과거엔 보수가 부패해도 능력은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저 무능력자로 생각한다”고 했다. 김수민은 “지역에서 초등 교사들이 모여 ‘빨간 당 뽑으면 나라 망해, 미친 당이야’라고 했다더라. 작년에 김세연 의원이 좀비정당 이야기를 했을 때 개혁을 못한 게 안타깝다”고 했다.

호남에서 선거를 치른 천하람은 더 심각했다. “‘너희가 우리를 국민으로 생각지 않는데 왜 찍어야 하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배척했던 이들도 계속해 다가가면 마음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김재섭은 투표 전날 창동역에서의 마지막 유세를 떠올렸다. “김종인 위원장이 와서 정말 고마웠다. 그러나 환호하는 수십 명의 지지자 빼고는 대부분 싸늘한 시선이었다. 광화문 집회도 마찬가지다. 대다수는 환멸스럽게 바라본다.”

지도부와 중진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이윤정은 “청년들은 모두 험지로 보내고 중진들은 안락한 지역에 남았다”며 “청년들이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기회가 안 주어진 거다. 캐머런도 39세에 보수당 대표가 됐고 마크롱은 40세에 프랑스 대통령이 됐다”고 했다. 김재섭은 “연고도 없는 생면부지의 지역구에 청년을 밀어넣으면 주민들도 ‘우리 동네는 버렸구나’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로 광명시의원을 지낸 이윤정은 본인과 무관한 의왕-과천 지역구로 보내졌다. 가까스로 오디션을 통해 공천장을 받았지만, 후보 등록 전날 최고위원회로부터 자격을 박탈당했다. 대신 50대 중반의 전직 과천시장이 공천됐다. 박진 전 의원이 당선된 강남을도 원래는 공모를 통해 뽑힌 30대 당협위원장이 터를 닦아온 지역구였다.

그렇다면 통합당은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김재섭은 “문전박대하던 상인들도 계속 찾아가면 진심을 알아준다. 말로만 서민을 위할 게 아니라 정말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삭발 같은 이벤트도 시민들은 쇼라고 생각한다. 정말 어려운 것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만나 상처받고 힘들어도 계속 소통하는 것”이라고 했다.

천하람은 “노무현을 존경한다고 했다가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문재인과 정치적 동지지만 FTA, 파병, 법인세 인하 등 우파 정책을 폈다. 문재인과 달리 지지층이 욕해도 할 건 했다. 진보라도 잘한 건 인정할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치열한 논쟁을 통해 보수의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저 박정희 좋아하고 친미·반북 하는 게 보수가 아니다. 품격을 갖춘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단비가 그친 공터 한편에는 잔인한 4월의 새싹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s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