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트비어천가’ 틀자 생중계 끊어버린 미국 방송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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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유력 방송사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생중계를 중간에 끊는 사태가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와의 일일 브리핑에서 정부 대응을 미화하는 영상을 틀면서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이 선명한 CNN뿐 아니라 MSNBC도 송출을 갑자기 중단했다. 항의의 뜻이었다.

트럼프 코로나 대응 일일 브리핑 #감사 표하는 주지사들 영상 띄워 #CNN “세금으로 홍보하냐” 비판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튼 영상은 댄 스캐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국장이 주도해 브리핑 2시간 전에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영상은 “언론은 처음부터 사태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다”는 자막으로 시작해 정부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미국 전역 주지사들의 발언을 모아 편집했다. 미국식 ‘트비어천가’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상을 튼 뒤 “사람들이 가짜 기사를 쓰다니 안타깝다”며 “나는 비판받는 것은 신경 안 쓰지만, 아예 틀린 말에 대해선 신경을 쓴다”고 주장했다.

미국 방송사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TF의 일일 기자회견을 생방송으로 연결해왔다. 그러나 이날 방송을 중계하던 CNN의 존 킹 앵커는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지금 국민의 세금으로 정부 홍보 영상을 방영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MSNBC도 “이것은 백악관의 브리핑이라고 볼 수 없기에 (앵커가) 개입하겠다”면서 중계를 중단했다.

방송 중단 이후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던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는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 30% 가량 줄었다. 13일 하루 사망자는 1446명으로 지난 10일 최대치인 2108명보다 600명 줄었다. 신규 감염자도 10일 3만 5100명보다 사흘 새 1만명이 줄었다. 최대 진앙인 뉴욕주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 “수치를 보면 우리가 확산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최악은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브리핑에서 “주말을 지나며 전국적으로 신규 감염은 평평해지고 있다”며 “정부의 공세적인 바이러스 방역 조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 1일 경제활동 재개를 검토하는 가운데 폐쇄 해제 권한을 놓고 대통령과 주지사 연합체 간 힘겨루기 양상도 나타났다. 이날 뉴욕·뉴저지·코네티컷·펜실베이니아·델라웨어·로드아일랜드 등 동부 해안 6개 주, 캘리포니아·워싱턴·오리건 등 서부 해안 3개 주가 독자적으로 재개 시점을 결정하기 위해 각각 지역 협의체를 구성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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