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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설영의 일본 속으로

코로나 실책 거듭할수록, 아베 기자회견도 길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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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지난 7일 오후 7시, 전국 7개 지역에 긴급사태를 선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면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한 4번째 기자회견이었다. 지난 3번의 기자회견과 달리 아베 총리는 상냥한 표정과 말투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회견장을 떠나면서 “못다한 질문은 서면으로 보내달라”는 성의까지 보였다.

‘면마스크 2장 배포’ 한가한 대책 #도쿄 도지사에 등떠밀려 긴급사태 #“다른 곳 괜찮다” 하루 뒤 전국 확대

달랐던 건 이 뿐만이 아니다. 총리 기자회견에 오미 시게루(尾身茂) 감염증 대책 전문가회의 회장을 동석시켰다. 총리가 기자회견에 누군가와 함께 나서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아베 총리는 ‘전문가’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오미 회장이 답하게 했다. 이날 아베 총리는 이때까지 총 4번의 기자회견 중 가장 긴 67분을 썼다.

일본의 코로나 19 확진자는 12일 현재 8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하루에 확진자가 700명 이상 쏟아지는 긴박한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탔던 대형 크루즈선이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유례없는 사건에 이어 도쿄올림픽 1년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세계의 주목을 받은 사건의 연속 속에서 아베 총리도 국내적으로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0일 발표된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62%가 아베 총리의 코로나19 대응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베 총리가 코로나19와 관련해 처음 기자회견을 연 건 지난 2월 29일이었다. 스포츠·문화 행사 중지(26일), 전국 초·중·고교 임시 휴교(27일) 조치가 나온 직후였다. 아직 전국 확진자가 200명도 채 나오지 않은 시기에 내려진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국민의 혼란이 증폭됐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앞으로 1~2주가 고비”라고만 했을 뿐, 끝까지 휴교를 결정한 이유와 배경에 대해 깔끔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베 기자회견

아베 기자회견

3월 14일 아베 총리 두 번째 기자회견은 52분으로 늘었지만, 설명은 부족했다. 회견이 끝나려는 순간 “총리, 이걸 기자회견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라는 기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때 일본 전체 확진자는 800명대였고, 긴급사태선언의 근거 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직후였다.

도쿄 올림픽 1년 연기가 공식화되자, 공교롭게도 일본 내 확진자 수는 급증세를 보였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록다운(Lock down: 도시봉쇄) 등 강력한 조치”를 언급하며 경고 수위를 높였지만, 아베 총리는 세 번째 기자회견에서도 “긴급사태를 선언할 상황은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지만, 갈림길이다”라면서 안이한 상황인식을 드러냈다.

지난 1일 아베 총리의 ‘면 마스크 2장 배포’ 발표는 국민의 불안이 폭발 직전인 상황에서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같은 날 일본 의사회가 “일부 지역에서 병상이 부족해지고 있다”며 ‘의료 붕괴’ 위험까지 지적한 상황에서 ‘면 마스크 배포’는 한가한 소리였다.

일본 코로나19 확산세

일본 코로나19 확산세

자민당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총리가 정부대책회의에서 발표할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 않나.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JNN·10일 발표)에선 ‘면 마스크 2장 배포’ 발표에 대해 “잘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5%나 됐다.

아베 총리는 긴급사태 선언을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틀 전 “긴급사태 선언을 하는 게 좋겠다”는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코로나대책담당장관의 진언에도 경제적 혼란 등을 우려해 결정을 머뭇거렸다.

코로나19관련 일본 정부 대응

코로나19관련 일본 정부 대응

그러는 사이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주말 이틀 연속 도쿄의 확진자가 세자릿수를 기록했고, 병상 수가 턱밑까지 찼다. 긴급사태 선언을 발표했지만, 떠밀려서 결정을 내린 모양새였다. 일본 언론들은 “긴급사태 선언은 고이케 도쿄도지사가 견인한 것”이라고 해설했다. 내각부의 한 관료는 아사히 신문에 “고이케 지사가 정부가 마치 방해하고 있는 것처럼 구도를 짰다”고 혀를 내둘렀다. 아베 총리의 ‘의문의 1패’였다.

지난 11일 아베 총리는 뒤늦게 긴급사태선언의 효력을 7개 지역에서 전국으로 확대했다. 전날 “다른 지역은 긴급하지 않다”던 정부 입장을 뒤집을 정도로 상황은 긴박해졌다. 이날 일본 전체 확진자는 743명 늘어 7629명이 됐고, 사망자는 12명이 늘어 145명이었다. 10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내각 비지지율은 52.7%로, 지지율 43.3%를 1년 7개월만에 뒤집었다.(JNN 여론조사)

이 와중에 아베는 자신의 후임을 챙겨주느라 바쁘다는 비판도 나온다. 코로나19 경제대책의 핵심인 ‘1가구당 30만엔 지급안’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이 발표하게끔 한 점에서다. 관저 소식에 밝은 한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임기 전에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기시다에게 안정적으로 자리를 물려주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아베의 생각과 거꾸로 가는 듯하다. 4월 여론조사에서 “다음 자민당 총재에 어울리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아베의 정적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을 꼽는 사람이 25%로 가장 많았고, 기시다 정조회장은 5%에 그쳤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