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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고려 ‘느슨한 방역’ 역부족…집단면역 발빼는 스웨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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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호 08면

[코로나19 팬데믹] 봉쇄 vs 집단면역

9일 스톡홀름의 한 카페에서 시민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스웨덴 당국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하고 있으나,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식당이나 쇼핑가의 강제 운영중단 같은 강력한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스톡홀름의 한 카페에서 시민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스웨덴 당국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하고 있으나,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식당이나 쇼핑가의 강제 운영중단 같은 강력한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집단면역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맞서려 한 스웨덴의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고삐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경종을 울린 셈이다.

국경 열고 학교·상점 등 정상 운영 #백신 없어 사망자 늘자 “통제 검토” #“한국서 집단면역 땐 30만명 사망” #거리 두기와 봉쇄 전략이 최선책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을 미롯한 미국·유럽 각국이 강력한 봉쇄정책을 시행하던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스웨덴의 스테판 뢰벤 총리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로 스웨덴의 생명, 건강, 일자리가 위험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50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고 재택근무를 권고하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국경은 여전히 유럽연합(EU)에 열려있고, 각급 학교와 식당·상점 등은 정상적으로 운영됐다. 일자리 보호도 방역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뢰벤 총리는 “쇼핑을 하는 것도, 지역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것도 모두 이웃을 돕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단기적으로 퇴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회경제 시스템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낫다는 판단이다.

외신들은 이를 봉쇄정책 대신 집단면역을 선택한 것으로 평가했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지난달 29일 “스웨덴 보건 전문가들은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집단면역만이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웨덴 국립보건원의 안데르스텡넬 박사는 “한국처럼 노력해서 바이러스를 없애도 (치료제나 집단면역이 없는 한) 유행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학교를 몇 달씩 닫아둘 수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스웨덴은 인구가 1000만명으로 한국의 5분의 1이지만 국토면적은 45만㎢로 한국의 4.5배에 달한다. 개인주의가 강해 1인가구가 전체의 절반이다. 회사에서도 재택근무 등이 많이 보급됐고 회식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 코로나19가 천천히 퍼져 집단면역을 달성하기 쉬운 구조다.

집단면역(herd immunity)은 집단 구성원의 많은 부분이 면역을 갖게 되면 전염병이 더는 퍼지기 어렵게 된다는 이론이다. 감염자 한 명이 두 명에게 전염시키는 병이 있다고 하자. 바이러스에 접촉한 두 명 중 한 명 이상이 면역력을 갖추고 있다면 신규 감염자 수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집단면역의 기준은 감염자 한 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기초감염 재생산지수(R0)에 따라 다르다. 최고 2.5로 평가됐던 코로나19는 인구의 60%가 면역력을 갖추면 확산이 멈출 것으로 예상됐다. 공기로 감염돼 R0가 15에 달하는 홍역의 경우 전체의 95% 이상이 면역을 얻어야 집단면역이 가능하다. 면역을 얻으려면 직접 병을 앓고 회복되거나 예방접종으로 백신을 주사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코로나19처럼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질병은 결국 직접 앓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하지만 감염자 급증으로 스웨덴의 이같은 기조가 변하고 있다. 뢰벤 총리가 연설한 지난달 22일 1746명이던 누적 확진자 수는 9일에는 8419명으로 늘었다. 누적 사망자는 20명에서 687명으로 급증했다. 스웨덴 일간 다게스뉘헤테르는 지난 7일 “의회에서 상점 운영 중단 등 강력한 제한조치를 내릴수 있는 권한을 한시적으로 정부에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감염예방법안에 대한 합의에 근접했다”고 보도했다. 안 린데 스웨덴 외무장관은 8일 “우리는 집단면역을 목표로 하는 전략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웨덴의 대응책을 비판한 것에 대해 반박이다. 린데 장관은 “완전한 봉쇄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요양원 방문을 금지하고 고등교육 수업은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등 여러 강력한 대책을 시행했다”며 “우리는 대다수 다른 나라가 하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할 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집단면역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첫째, 감염시 치사율이 높은 위험군을 일반인과 확실히 분리해야 한다. 둘째, 일반인 감염자 가운데 증세가 심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충분한 의료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백신이 없다면 현실에서 달성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5%인 750만명에 달하는데 80대 이상의 치사율은 20% 이상”이라며 “고령자와 젊은 사람 간 접촉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기 때문에 고령자와 만성질환자에게서 피해가 속출하게 된다”고 말했다. 의료시설 확보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3개(2017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7개)의 3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지난 2월 말 신천지를 중심으로 코로나19환자가 급증하자 병상을 확보하지 못해 발을 굴러야 했다.

백신 없이 집단면역을 달성하려면 대규모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전병율 차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평균 치명률이 1% 대인 우리나라에서도 60%가 면역을 갖출때까지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중심으로 3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다는 얘기인데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사실상 집단면역 실험은 실패한 셈”이라고 말했다. 적극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와 감염원 추적을 통해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환자 발생을 최소화하는 우리나라의 정책이 현재로써는 최선이라는 얘기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스웨덴처럼 일상생활을 하면서 증상이 있는 사람만 치료하는 정책은 감염원과 경로를 찾기 어려울때나 어쩔수 없이 취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감염원이 확실하고 접촉자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계속 봉쇄·억제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김여진 인턴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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