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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어릿광대" 그뒤 사라진 부동산재벌···조사받고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어릿광대’로 비유하는 등 쓴소리를 마다치 않았던 중국의 부동산 재벌 런즈창(任志强)이 7일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지난달 12일 이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용감한 정부 비판으로 ‘런 대포’라 불려 #중국 인터넷 공간에서 팔로워만 3700만 #신종 코로나 사태 관련 중국 당국 비난 #3월 중순 이후 연락 두절 상태에 빠져 #시 주석을 ‘어릿광대’에 비유하는가 하면 #언론자유 부재가 코로나 사태 악화 비판도

올해 69세의 런즈창 전 화위안그룹 회장은 시진핑 주석과 정부에 대한 비판도 마다치 않아 '런 대포'로 불린다. 지난달 중순 신종 코로나 사태 관련 시 주석과 정부 비판의 글을 썼다가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69세의 런즈창 전 화위안그룹 회장은 시진핑 주석과 정부에 대한 비판도 마다치 않아 '런 대포'로 불린다. 지난달 중순 신종 코로나 사태 관련 시 주석과 정부 비판의 글을 썼다가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명보(明報)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언론의 8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시 기율위원회는 지난 7일 런즈창이 기율과 법률을 엄중하게 위반해 현재 베이징시 시청(西城)구에서 기율심사와 감찰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런즈창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율과 법률을 위반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와 관련해 중국 지도자와 당국의 대처를 비난한 게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1일 항저우의 한 습지를 시찰하고 있다. 중국 내부에선 시 주석의 1인 체제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1일 항저우의 한 습지를 시찰하고 있다. 중국 내부에선 시 주석의 1인 체제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명보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사태가 터진 뒤 인터넷상에는 런즈창이 썼다는 글이 돌았다. 내용에는 중국의 현재 최고 지도자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지도자 비난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의 글에는 “자신의 새 옷을 과시하려는 황제가 아니라 옷이 벗겨졌는데도 황제가 되려는 어릿광대…자기가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으며 황제가 되는 걸 막는 자는 누구라도 멸망하게 하려는 결심을 갖고 있다”는 표현이 담겨있다.

런즈창은 3700만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으며 정부 비판도 곧잘 해 '런 대포'로 불린다. 지난달 신종 코로나 사태 관련 시 주석과 공산당을 비판해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런즈창은 3700만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으며 정부 비판도 곧잘 해 '런 대포'로 불린다. 지난달 신종 코로나 사태 관련 시 주석과 공산당을 비판해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SCMP는 또 런즈창의 글은 신종 코로나 사태 폭발을 중국 공산당 내부의 “거버넌스 위기”라 주장하며 언론과 표현의 자유 부재가 코로나 사태 악화를 막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중국 최고 지도자와 공산당을 대놓고 비난하는 런즈창의 글은 당초 중국판 트위터에 해당하는 웨이보(微博) 내에서 몇몇 친구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던 것이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런의 글을 공유한 친구는 모두 11명이었다고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아버지 시중쉰 전 부총리. 시진핑 주석은 중국 건국에 공을 세운 이의 후손으로 홍이대(紅二代)로 불린다. [중국 바이두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아버지 시중쉰 전 부총리. 시진핑 주석은 중국 건국에 공을 세운 이의 후손으로 홍이대(紅二代)로 불린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이들은 런즈창과 함께 모두 환경운동을 하던 민간 기업가들이었는데 이 중 누군가가 내용의 민감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외부에 유출하면서 런이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명보는 어떤 이가 런즈창을 찾아와 이 글을 당신이 썼느냐고 물었을 때 런이 그렇다고 대답했고 이로 인해 지난달 12일 이후 실종 상태가 됐다고 소개했다. 런즈창은 그동안 중국 인터넷에서 용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런 대포(大炮)’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런즈창 전 화위안그룹 회장의 아버지 런취안성 전 상업부 부부장. 덩샤오핑과 쌍벽을 이뤘던 천윈의 밑에서 일하며 천씨 집안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런즈창 전 화위안그룹 회장의 아버지 런취안성 전 상업부 부부장. 덩샤오핑과 쌍벽을 이뤘던 천윈의 밑에서 일하며 천씨 집안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그러나 이런 ‘런 대포’의 활약을 시 주석은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8월 19일 시 주석은 전국선전사상공작회의에서 선전 부문의 일 처리가 나태하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하지만 런즈창도 이에 굴하지 않고 시 주석의 1인 집권에 반대하는 주장을 계속 폈다. 2016년 2월 시 주석이 중앙텔레비전(CCTV) 등을 방문한 자리에서 “공산당 매체의 성(姓)은 당(黨)이 돼야 한다”고 말한 걸 공개적으로 비판해 당으로부터 1년 관찰 처분을 받기도 했다.

당시 런즈창은 “인민의 정부가 언제 당의 정부로 바뀌었는가? 인민의 세금을 인민을 위해 쓰지 않는 곳에 낭비하지 말라”고도 했다. 런즈창의 중국 내 인기는 매우 높아 SNS 팔로워만 무려 3700만 명에 달한다.

천윈 전 부총리는 덩샤오핑 시대 덩과 함께 중국의 양대 정치가로 불릴 정도로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이다. [중국 바이두 캡처]

천윈 전 부총리는 덩샤오핑 시대 덩과 함께 중국의 양대 정치가로 불릴 정도로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이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이 때문에 런즈창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런즈창이 갖는 무게가 여느 반체제 인사와 다르기 때문이다. 올해 69세의 런즈창은 시진핑 주석과 마찬가지로 중국 건국의 주역 후손을 일컫는 홍이대(紅二代)에 해당한다.

부친 런취안성(任泉生)은 상업부 부부장 출신으로, 덩샤오핑(鄧小平)과 쌍벽을 이뤘던 천윈(陳云)의 사람으로 통한다. 천윈이 주관했던 중국 동북국 재정부에서 함께 일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런즈창은 또 중국의 유명 부동산 회사인 화위안(華遠) 그룹의 회장을 역임했다. 화위안 그룹의 초대 이사장 자리를 천윈의 아들 천위안(陳元)이 맡았던 데서 런씨와 천씨 가문의 끈끈한 관계를 알 수 있다.

왕치산 국가부주석은 런즈창의 친구로 오랫동안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런즈창에 대한 조사가 왕치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왕치산 국가부주석은 런즈창의 친구로 오랫동안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런즈창에 대한 조사가 왕치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런즈창은 특히 시진핑 주석과도 매우 가까운 사이인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과 막역한 관계이기도 하다. 왕치산이 런즈창의 중학교 시절 학습을 돕는 보조원이기도 했으며 이후 둘은 친구처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최근 중국에선 왕치산 부주석의 입지에도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도 나오고 있다. 런즈창이 조사를 받고 있다는 건 중국 지도층 인사 사이의 불협화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향후 중국 정가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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