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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0원에도 다 비었다 ‘깡통’ 쇼핑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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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동대문 복합쇼핑센터 ‘굿모닝 시티’의 내부(왼쪽 사진). 월세가 0원인 점포가 여럿이지만 장사하려는 이가 없어 층마다 빈 곳이 더 많다. 한은화 기자

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동대문 복합쇼핑센터 ‘굿모닝 시티’의 내부(왼쪽 사진). 월세가 0원인 점포가 여럿이지만 장사하려는 이가 없어 층마다 빈 곳이 더 많다. 한은화 기자

“어렵게 버텨왔는데 정말 다 끊겼어요. 유령상가가 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확장, 불황·코로나에 3연타 #동대문 굿모닝시티 4층부터 캄캄 #“외국인도 안 와 굶어죽게 생겼다” #휴대폰 매장 빼고 다른 층은 썰렁 #“테크노마트 살린다면 대통령감”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 복합쇼핑센터 ‘굿모닝 시티’ 3층 남성복 매장. 불 켜진 점포보다 빈 곳이 많았다. 여성복과 남성복을 파는 1~3층 사정은 그나마 나았다. 나머지 층은 텅 비거나, 점포가 남아 있더라도 휴업상태였다. 3층 귀퉁이 수선집 주인은 “원래 경기가 안 좋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외국 사람도 전혀 안 오니까 정말 굶어 죽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의류 매장의 계속된 불황으로 업종을 바꿔 한 층을 전부 가상현실(VR) 테마파크로 바꿨던 4층 역시 캄캄하긴 마찬가지였다.

공실이 쌓이다 보니 월세가 0원인 곳이 수두룩하다. 한 계좌(3.3~3.5㎡, 점포 한 칸)당 15만원인 관리비라도 보전하기 위한 방편이다. 한때 2억원이 넘던 계좌 매매가(1층 기준)도 수천만 원대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도 안 나간다. 굿모닝 시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밀레오레 등 인근 복합쇼핑센터의 처지가 비슷하다. 강변, 신도림에 있는 테크노마트도 상황이 같다.

온라인 시장의 성장이 오프라인 상가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많았다. 그렇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상가의 위기를 더욱 앞당기고 있고, 상가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울 구의동 강변 테크노마트 9층 식당가도 곳곳에 임대문의가 붙어있다. 한은화 기자

서울 구의동 강변 테크노마트 9층 식당가도 곳곳에 임대문의가 붙어있다. 한은화 기자

수익형 부동산 전문기업 상가정보연구소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1~2월 전국 상업용 부동산 거래량은 1267건으로 지난해(1185건) 동기 대비 21.8% 늘었다. 반면 3.3㎡당 평균 거래 금액은 916만원으로 지난해 동기(1187만원)보다 22.8% 줄었다. 조현택 상가정보연구소 연구원은 “3월부터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충격이 본격화돼 침체기가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동대문 복합쇼핑센터, 테크노마트처럼 한 업종으로 특화된 테마형 집합상가는 상가 중에서도 가장 약한 고리다. 트렌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다. 덩치가 큰데 점포를 수없이 쪼개 분양해 점주가 수백명이 넘는다. 업종을 바꾸려면 점주 대다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같은 날 서울 광진구 구의동 강변 테크노마트 9층 식당가. 에스컬레이터 옆의 식당 점포 4곳이 나란히 비어 있다. 한 층 위, 10층에 있는 CGV 영화관조차 코로나19 여파로 텅 비었다.

인근 식당 사장은 “비어 있는지 몇 개월 됐는데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다”고 말했다. 매장 규모가 큰 탓(실평수 15~30평대)도 있지만, 지정된 업종만 영업해야 하는 게 걸림돌이다.

올 들어 낙찰된 서울 집합상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올 들어 낙찰된 서울 집합상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강변 테크노마트 인근 공인 중개업소 대표는 “애초부터 지정업종으로 분양됐기 때문에 족발집은 족발만, 비빔밥집은 비빔밥만 팔아야 한다”며 “다른 음식점과 겹치지 않은 업종을 한다면 되긴 하는 데 동의를 구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고 전했다.

6층 휴대전화 매장을 제외한 나머지 전자제품 매장 층도 비어 있긴 마찬가지다. 동대문과 마찬가지로 ‘월세 0원’인 점포도 많다. 8층에서 DVD 판매를 하는 김모 사장은 “올해부터 월세를 안 내고 관리비만 18만원 내고 있다”며 “테크노마트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감”이라며 한숨 쉬었다.

대형 집합상가는 경매시장의 단골손님이 됐다. 매각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이 10%에도 못 미치는 경우도 있다.

2억 넘는 상가 1000만원에 겨우 낙찰 “업종변경 쉽게 규제 바꿔줘야”

오명원 지지옥션 연구원은 “낙찰자가 관리비를 인수해야 해서 많이 유찰된 물건 중에는 밀린 관리비가 1000만원대를 훌쩍 넘는다”며 “2010년 이후 소비패턴에 변화가 시작됐고 2015년부터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집합상가 경매물건이 점점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경기가 회복되면 집합상가에도 볕이 들까. 이상혁 더케이컨설팅그룹 상업용부동산센터장은 “집적 효과를 누렸던 집합상가 전성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트렌드를 바로바로 따라잡지 못하는 오프라인 매장들의 도태는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하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규약의 설정·변경엔 소유자의 4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고, 영향을 미치는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 거의 대다수의 동의를 요구하는 규정이 변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거엔 상가 입지 조건이 가장 중요했다면 이제는 매니지먼트가 더 중요한 시대”라며 “사람들이 선호하는 용도로 탄력적으로 바꿀 수 있게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매장으로서 특화할 필요도 있다. 동대문 쇼핑가의 경우 창신동 봉제업과 같은 배후 산업을 활용해 젊은 디자이너의 쇼룸으로 거듭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의 연결도 과제 중 하나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DDP가 생긴 이후 동대문 전역이 패션 메카로 거듭날 줄 알았는데 관광객이 DDP로만 몰리고 쇼핑거리 쪽으로 넘어오지 않는다”며 “DDP와 쇼핑상가들을 지상·지하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도록 서울시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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