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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위기 몰린 사회적 약자, 외면하면 공동체 무너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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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함께 살 만한 세상

코로나19 여파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게 들이닥치고 있다. 사진은 온라인 쇼핑이 늘며 일감이 급증한 택배 물류센터. [연합뉴스]

코로나19 여파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게 들이닥치고 있다. 사진은 온라인 쇼핑이 늘며 일감이 급증한 택배 물류센터. [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았다. 땅 위 저택의 사람들에게 폭우는 캠핑 계획을 바꾸는 사소한 귀찮음이었다. 비가 그치자 전날 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파티장으로 변신한 정원엔 폭우의 흔적조차 없었다. 땅 위 아이의 미국산 텐트는 끄떡없었지만, 반지하 사람들에겐 삶의 터전을 삼켜버린 폭우였다. 땅속 깊은 곳의 거주자들은 폭우에마저 불가촉천민(untouchable)처럼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재난은 각자에게 다른 얼굴로 엄습한다.

코로나19 여파는 사회취약계층에 더 가혹해 #심각하게 다가올 사회경제적 파급 대비해야 #위기를 극복할 의지 있다면 주위를 돌아보고 #누구도 낙오시키지 않는 공동체 연대감 살려야

코로나19도 다르지 않다. 연령적으로는 노년층에게 특히 위험하며,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 다르게 다가간다. 중상위층은 안정된 경제력으로 기저질환을 미리 치료하고, 규칙적 운동과 양질의 식사로 건강을 유지하며, 행여 병에 걸리더라도 부담 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 반면 하위층은 증상이 있더라도 당장의 생계를 위해 일을 멈출 수 없다.

경기 부진에 상담이 증가한 고용노동부 콜센터. [뉴스1]

경기 부진에 상담이 증가한 고용노동부 콜센터. [뉴스1]

코로나19는 빈곤을 과거 일인 듯 잊고 있던 우리 사회의 숨겨진 모습을 드러냈다. 좁은 공간 콜센터 직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지친 몸으로 녹즙을 배달한 투잡의 고단함, 새벽 총알 배송되는 편리함에 가려져 있는 배송원의 격무와 죽음, 바이러스로 죽기 전에 돈이 없어 죽겠다는 소상공인의 호소, 하루 일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의 위태로움 등등. 이런 벼랑 끝 불안정한 삶 위에서 대한민국이 돌아갔다는 것을 코로나19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IMF보다 심각한 코로나 위기

어디 경제적 취약층뿐이랴. 합리성이나 종교성·정치성이 결핍되거나 과잉된 상식 취약계층의 어두운 면도 드러나고 있다. 교주의 영생을 믿는 단체의 거대함과 사회 곳곳에 있는 그들의 존재를, 소금물을 뿌리고 기도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주술적 기행을, 감염의 위험을 무시하고 집회를 열겠다는 선동의 폭력성을, 아스팔트 바닥에 소독약을 뿌리고 인증샷을 찍는 정치인들의 천박함을, 정확한 정보 제공보다는 갈등을 일으키는 선정적 인포데믹(infodemic·정보전염병)을 보고 있다.

코로나19로 야외 활동이 줄며 몸무게가 늘어 ‘확 찐 자’가 되고 코로나19가 ‘코로 나’온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동안, 한쪽에선 의료진이 자원해 위험지역으로 들어가 혼신을 다해 바이러스와 싸우고 관계자들이 헌신하고 있다. 천재지변에 맞먹는 이 상황에서 어찌 정부가 완전할 수 있으랴마는 현재까지의 대처는 세계적 롤 모델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국민의 협력 위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이 상황이 장기화하면 더 큰 파장이 몰아닥칠 것이며 조짐이 시작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임시 휴업에 들어 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 [연합뉴스]

코로나19 여파로 임시 휴업에 들어 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 [연합뉴스]

지금의 상황은 1997년 IMF 외환위기에 비교된다. 그러나 금융 위기였던 당시에 비해 이번은 전 세계 실물경제 붕괴로 더 큰 파괴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IMF 체제 당시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채 도입된 노동시장 유연화는 불안정한 비정규직 삶을 양산했고 누구도 안전한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과거 평생 고용이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던 체제에서 복지 기반 구축 없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맞았다.

그러면서 인구 10만명당 10명 전후였던 자살률은 연이은 경제 위기와 함께 3배가량 급등하며, 2003년 이후로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유지하고 있다. 자살 원인을 경제적으로만 설명할 순 없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태에서 노동시장 변화와 경제적 위기, 그로 인한 정신적 어려움과 정신건강 투자 미비가 합쳐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당장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삶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기본적 생존을 위한 대책이 절실한 지금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도입됐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포함한 사회안전망 논의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약자와 함께 이기는 위기 극복

기본소득에 반감을 가진 이들도 함께 생존하는 방안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하며 정파·이념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위기 집단의 욕구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자원 배분 우선순위를 조직하며 현실적 재원을 확보하는 구체적 대책이 필요하다.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해 의학과 과학·사회·경제를 비롯한 전 분야가 협력해야 한다.

인류는 언젠가 팬데믹 종결을 선언하며,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평할 것이다. 그러나 위기 극복은 위기로 추락하고 희생당한 사람을 제외한 생존자에게만 해당할 뿐이다.

사회적 약자가 희생된 후 우리가 위기를 극복했다는 말은, 살아남은 사람이 살아남았다는 동어반복의 정신 승리에 불과하다. 진정 공동체가 위기를 극복할 의지가 있다면 주위를 돌아봐야 하며 문명사회라면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 함께 생존할 때에야 “우리가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사회적 연대의 시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심리적 가까이하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경기도 의왕시가 인터넷에 올린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그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경기도 의왕시가 인터넷에 올린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그림.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현재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와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강조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전염병 확산을 막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공중보건적 감염 예방 행동이다. 사람 간 접촉을 줄임으로써 질병 전파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사람 사이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대중적 접촉을 피하는 행동이다.

이는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와 구별이 필요하다. 사회적 거리란 다른 집단이나 계층 간 이해와 친밀감이 결여된 관계, 즉 집단 간 배타적 거리로 해석할 수 있다.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개념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타인에 대한 불신과 차별을 포함한다면 ‘사회적 거리’로 이어질 수 있다.

자칫 사회적 거리두기가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배타적 태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위한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되 주위와 공동체에 대한 연대감을 가지는 ‘심리적 가까이하기’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동료 인류 사이의 연대(連帶)는 인간과 환경의 연대에까지 확장돼야 한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등장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것은 인류가 자초한 일일 수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현재까지는 과도한 산림 훼손으로 박쥐가 서식처를 잃어 인간과 접촉이 늘어나고 인간이 박쥐를 식용으로 사용하면서 바이러스가 전파됐다고 알려져 있다.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기후·건강·지구환경센터(C-Change) 에런 번스타인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해 인간이 새로운 질병에 노출되고, 대기오염으로 사람들이 호흡기 감염에 더 취약해져 코로나19가 더 치명적이 됐다”고 지적한다. 인류 공존을 위해 연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 안의 불신과 차별은 사회적 연대를 가로막곤 한다. H1N1 신종플루 유행 당시 필자의 연구실이 진행한 연구에서 질병 정보가 부족하고 심각하다고 생각할수록 완치자에 대한 차별적 태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다. 질병에 대해 제대로 알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차별은 줄어든다. 정확한 정보와 심리적 담대함이 필요한 때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하버드대 보건정책학 객원과학자·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