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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피해 터키서 꽃핀 유럽의 인문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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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호 21면

이스트 웨스트 미메시스

이스트 웨스트 미메시스

이스트 웨스트 미메시스
카데르 코눅 지음
권루시안 옮김
문학동네

『미메시스-서구 문학의 현실 묘사』는 독일 베를린 출신 유대인으로 세계적인 문헌학자이자 문학비평가였던 에리히 아우어바흐(1892~1957)의 걸작이다. 히틀러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1936년 터키로 망명한 아우어바흐가 이스탄불에서 썼으며 1946년 스위스 베른에서 출판됐다.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와 히브리어 성서에서부터 르네상스 인문주의 선구자 단테를 거쳐 프루스트와 울프에 이르기까지 서유럽 문학의 역사를 방대하게 아우르는 이 책은 지금도 인문학 강좌의 필수 동반자다. 아우어바흐의 이 책은 문학이론, 역사, 비교문학, 문화사를 비롯한 다양한 학문 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 터키학연구소 소장인 카데르 코눅의 『이스트 웨스트 미메시스』는 아우어바흐의 족적을 좇아가며 그의 삶과 연구를 해부한 헌정서다. 단순히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일과 터키 등에 흩어져 있는 온갖 문서·편지·신문·강연 등을 총망라해 1930~40년대 유럽의 인문주의를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본 진지한 학술서다.

터키 이스탄불을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놓인 보스포루스 다리. 흑해와 지중해,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사진 Grzegorz Jereczek]

터키 이스탄불을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놓인 보스포루스 다리. 흑해와 지중해,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사진 Grzegorz Jereczek]

아우어바흐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 마르부르크대학 로망스 문헌학 교수직에서 쫓겨나 터키로 망명할 당시 독일과 유럽에선 나치와 파시즘에 의해 인문주의 기반이 크게 훼손되고 있었다. 반면 오스만제국 몰락 이후 1923년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가 건국한 터키공화국은 세속화와 현대화, 서구화 그리고 인문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했다. 르네상스 모델을 가져오고 인문주의를 터키 교육체제에 통합함으로써 오스만제국서 벗어나 서구화한 터키로 옮겨 가고 싶어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키는 아우어바흐와 같은 탁월한 서구 출신 인문주의자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스탄불대학 서양어문학부 학부장을 맡게 된 아우어바흐는 유럽지식의 매개자로서 실제로 터키의 인문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유럽의 맨 바깥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터키는 어쨌거나 유럽이었다. 아우어바흐 자신도 이스탄불을 “헬레니즘적 도시”라고 말한 바 있다. 이스탄불엔 그리스·로마·비잔티움·오스만이 남긴 그리스도교회와 유대교회당, 모스크와 오스만 궁전 등 문화와 유적이 풍부하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은 1453년 동로마제국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를 점령했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나 이탈리아 등으로 피난한 비잔티움 학자들은 르네상스를 이끈 최대 원동력이 됐다. 반면 20세기 초 역으로 현대 터키로 망명 온 다수의 서구학자는 이곳에서 터키의 인문주의 부활을 재촉했다.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는 그 대표적 산물이었다.

21세기 유럽엔 아우어바흐 때처럼 다시 반유대주의의 극우 광풍이 일고 있다. 터키는 인문주의 위에 세운 세속화 전통을 약화시키고 다시 이슬람화를 가속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문주의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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