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스카에 밀리고 코로나에 치이고…파리선 ‘검은’ 물결 이어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지난 2월 6일(현지시간) 뉴욕 패션위크를 시작으로 14일 런던, 18일 밀라노, 24일 파리 패션위크로 이어진 대장정의 막이 내렸다. 계절마다 새롭게 반복되는 패션위크지만 올해 2월 열린 2020 가을‧겨울 컬렉션은 유난히 암울한 기운이 가득했다. 2월 중순부터 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주원인이었지만, 뉴욕 패션위크는 영화 ‘기생충’ 수상으로 화제가 된 아카데미 시상식과 일정이 겹쳐 어느 때보다 썰렁한 기운이 가득했다. 유난히 검정 의상과 검정 무대로 묵시록적 세계관을 드러낸 파리 디자이너들도 우울한 분위기에 한몫했다. 지난 2월 한 달간 열렸던 뉴욕·밀란·파리 패션위크의 이슈들을 정리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연합뉴스

지난 2월 27일 파리 패션위크 이자벨마랑 2020 가을겨울 쇼에서 마스크를 쓴 관중이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지난 2월 27일 파리 패션위크 이자벨마랑 2020 가을겨울 쇼에서 마스크를 쓴 관중이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톰포드의 배신? 썰렁했던 뉴욕 패션위크  

뉴욕 패션위크는 2월 6일부터 12일까지 일주일간 이어졌다. 문제는 LA에서 9일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면서 패션위크가 발목을 잡혔다.

뉴욕 패션위크의 차세대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 2020 가을겨울 쇼. 가장무도회를 콘셉트로 화려한 글램룩을 선보였다. 사진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 인스타그램

뉴욕 패션위크의 차세대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 2020 가을겨울 쇼. 가장무도회를 콘셉트로 화려한 글램룩을 선보였다. 사진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 인스타그램

주로 주로 2월 말이나 3월 초에 열렸던 아카데미 시상식이 올해는 2~3주나 빨라진 탓에 뉴욕 패션위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썰렁한 한 주를 보냈다. 원래대로라면 패션쇼 1열에 앉아 있어야 할 할리우드 스타들이 아카데미 레드카펫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굵직한 행사가 겹친 일정은 디자이너들에게도 혹독한 일이었다. 뉴욕타임스는 패션 브랜드 ‘배즐리 뮈스카’의 디자이너 마크 배즐리의 말을 인용해 “패션위크와 아카데미 시상식 두 개를 동시에 준비하는 것은 마치 곡예 같다”고 보도했다. 레드카펫에 서는 스타들의 드레스는 보통 패션위크에서 쇼를 여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만드는 경우가 많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의회장인 톰 포드는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뉴욕이 아닌 LA에서 쇼를 열었다. 톰 포드 2020 가을겨울 컬렉션. 사진 톰 포드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의회장인 톰 포드는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뉴욕이 아닌 LA에서 쇼를 열었다. 톰 포드 2020 가을겨울 컬렉션. 사진 톰 포드

CFDA(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의회) 회장인 디자이너 톰 포드는 패션쇼를 뉴욕이 아닌 LA에서 열어 구설에 올랐다. 대신 톰 포드의 패션쇼에는 제니퍼 로페즈, 데미 무어, 케이트 허드슨, 마일리 사일러스 등 많은 셀럽들이 참석했다. 이외에도 랄프 로렌, 토미 힐피거, 제레미 스콧 등 뉴욕 패션계의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대거 이번 패션위크에 불참해 반쪽짜리 패션위크라는 오명을 썼다.

썰렁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런웨이에선 1980년대 화려한 ‘글램 룩(Glam look)’을 선보인 디자이너들이 많았다. 가장 무도회 콘셉트의 화려한 메탈릭 드레스를 선보인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 반짝이는 은색 실을 꼬아 만든 니트와 술 장식 상의 등을 만든 에이리어(Area)가 대표적이다.

뉴욕·밀라노·파리 2020 FW 패션위크 리뷰

다양한 디자인의 메탈릭 드레스를 선보인 에이리어 2020 가을겨울 컬렉션. 사진 에이리어 인스타그램

다양한 디자인의 메탈릭 드레스를 선보인 에이리어 2020 가을겨울 컬렉션. 사진 에이리어 인스타그램

코로나 강타, 강제 온라인 활성화 이룬 밀라노

2월 18일부터 24일까지 열린 밀라노 패션위크는 코로나19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주도인 밀라노에서 열린 패션위크가 최대 피해를 본 것. 일정 중 마지막 이틀을 남기고 ‘남은 패션 행사 모두 취소’라는 초유의 발표가 났다. 밀라노 패션위크의 주요 디자이너로 꼽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쇼가 열리기 직전인 23일(현지시간) 오전, 쇼를 무관중 쇼로 전환한다고 밝히고 관객 없는 빈 극장에서 패션쇼를 진행했다. 쇼는 온라인으로 생중계됐고, 참석 예정이었던 많은 패션 관계자들은 호텔·카페 등에서 쇼를 관람했다.

지난 2월 19일 열린 구찌 쇼. 백스테이지부터 본 무대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생중계 됐다. 사진 AP=연합뉴스

지난 2월 19일 열린 구찌 쇼. 백스테이지부터 본 무대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생중계 됐다. 사진 AP=연합뉴스

밀라노 패션계가 코로나 덕분에 강제로 '온라인 활성화'를 이뤘다는 의견도 나왔다. 실제로 최근에는 패션쇼를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소셜 플랫폼에서 라이브로 대중에게 개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부 쇼는 마치 웹용으로 설계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구찌는 이런 온라인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온라인으로 쇼를 생중계한 구찌는 패션쇼 무대를 원형으로 설계한 뒤, 백스테이지부터 본 무대까지 카메라가 360도로 회전하며 밀착 중계했다. 쇼를 구석구석 관람한다는 차원에서 현장보다 온라인 관람이 나을 정도였다.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재킷에 프린지 스커트나 스트랩 스커트를 입힌 프라다 2020 가을겨울 쇼. 사진 프라다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재킷에 프린지 스커트나 스트랩 스커트를 입힌 프라다 2020 가을겨울 쇼. 사진 프라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잠식된 밀라노 패션 위크였지만, 이탈리아 패션 특유의 고급스러움을 발산하는 디자이너들의 행보는 계속됐다. 프라다는 1940년대에서 영감 받은 고급 재단 재킷에 다리가 드러나는 스트립(strip) 스커트를 더하는 방식으로 상·하의를 상반되게 연출해 시선을 끌었다. ‘코트의 왕’으로 평가받는 막스 마라는 망토 스타일부터 퍼프 소매 코트 등 다양한 디자인의 코트 컬렉션을 완성했다. 펜디는 캐시미어·가죽·레이스 등 다양한 소재와 부드러운 회색, 파스텔, 노란색 등의 의상을 차례로 선보였다.

망토 스타일부터 퍼프 소매 스타일까지 다양한 실루엣의 코트를 선보인 막스마라. 사진 막스마라

망토 스타일부터 퍼프 소매 스타일까지 다양한 실루엣의 코트를 선보인 막스마라. 사진 막스마라

묵직한 ‘검정’ 패션 선보인 파리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시기에 열렸던 파리 패션위크에선 프랑스식 인사인 ‘비쥬(볼 키스)’ 대신 팔꿈치 인사가 등장했다. 쇼 입장객에게 손 소독제를 나눠줬고,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패션쇼를 관람하는 이들도 많았다.

검은 무대 위로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모델이 걸어나온다. 발렌시아가 2020 가을겨울 쇼. 사진 발렌시아가

검은 무대 위로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모델이 걸어나온다. 발렌시아가 2020 가을겨울 쇼. 사진 발렌시아가

패션쇼 역시 어두운 분위기에 걸맞은 ‘검정’ 패션 일색이었다. 패션 전문매체 BOF는 “묵시록(Apocalypse)적 감각을 나타낸 파리 패션위크”라고 평했다. 발렌시아가는 온통 검은색 의상과 어둠에 잠긴 무대로 드라마틱한 무대를 선보였다. 우아한 실루엣의 검정 망토를 걸친 모델들은 검은색으로 칠해진 무대를 마치 사제처럼 걸어 나왔다. 발렌시아가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는 “내가 만든 무대 중 가장 검은 공연”이라고 했다. 얼굴 전체를 가릴 만한 넓은 챙의 검정 모자를 씌운 올 블랙 룩으로 패션쇼를 시작한 지방시는 1950년대 프랑스 영화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의상들을 선보였다. 발렌티노도 검정 의상을 주로 선보였다. 벨트 달린 검정 캐시미어 코트로 시작해 가죽 드레스와 재킷, 검은색 반투명 드레스 등이 차례로 등장했다.

검은색을 주조로 사용했던 발렌티노(왼쪽)와 검은색 드레스와 모자로 첫번째 룩을 장식한 지방시(오른쪽). 사진 각 브랜드

검은색을 주조로 사용했던 발렌티노(왼쪽)와 검은색 드레스와 모자로 첫번째 룩을 장식한 지방시(오른쪽). 사진 각 브랜드

최근 패션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테마인 '사회적 성(gender)'에 대한 탐구는 이번 파리 패션위크에서도 주요하게 나타났다. 톰 브라운은 남녀 모델을 동시에 무대에 내보내며 동일한 소재·직물·비율을 적용한 똑같은 옷을 입혔다. 사카이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옷으로 여겨지는 턱시도 재킷을 바닥에 끌리는 드레스 형태로 변형시켰다. 생 로랑은 오히려 강렬한 여성성으로 여성의 권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제2의 피부처럼 다리에 달라붙은 라텍스 레깅스에 블라우스·재킷을 매치하고 몸매가 잘 드러나는 펜슬 스커트에 광택 있는 롱부츠를 더했다.

톰 브라운(왼쪽)은 남성과 여성 모델에게 같은 옷을 입혀 내보냈다. 생로랑(오른쪽)은 관능적인 라텍스 레깅스로 강렬한 여성미를 표현했다. 사진 각 브랜드

톰 브라운(왼쪽)은 남성과 여성 모델에게 같은 옷을 입혀 내보냈다. 생로랑(오른쪽)은 관능적인 라텍스 레깅스로 강렬한 여성미를 표현했다. 사진 각 브랜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