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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개혁 15년, 여전히 싸워 이기는 군은 만들지 못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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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군 만드는 국방 개혁

국방 개혁은 싸우면 이기는 군대 만들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백령도에서 적 침투 상황을 가정해 상륙돌격장갑차에서 내려 이동하는 해병대 장병들. [연합뉴스]

국방 개혁은 싸우면 이기는 군대 만들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백령도에서 적 침투 상황을 가정해 상륙돌격장갑차에서 내려 이동하는 해병대 장병들. [연합뉴스]

중국이 강군몽(强軍夢)을 이뤄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가 뒷받침됐다. 공룡 같은 거대 군 조직, 지방 군벌 중심의 전통, 혁신을 거부하는 관행을 무너뜨리고 미국을 위협하는 중국군이 된 비결은 시 주석의 12자 개혁 목표에 담겨있다. 부르면 바로 달려오고(召之則來·소지능래), 능히 싸울 줄 알며(來之能戰·내지능전),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戰之必勝·전지필승) 군대다.

한국처럼 열심인 나라 없을 정도로 국방 개혁 나섰지만 #개혁이 국방부의 일상적 업무 되며 절박함 사라져 #북한·중국 군사력 확대로 한국군 대응 능력은 지속 하락 #전투 준비보다 병력 관리에 치중하는 군 관행 사라져야

중국은 지상군 중심에서 미국과 같은 합동 작전과 다영역 작전이 가능한 형태로 군 구조를 완전히 바꿨다. 사이버와 우주전에서 미국의 우위를 위협하고, 원양·심해 작전에서 미국에 도전한다. 중국 전략군은 극초음속 미사일 D-17을 실전 배치했다. 한반도는 물론 미국 하와이 인도·태평양사령부까지 사정권에 두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국방 개혁은 위협 차단 능력과 작전 역량 확대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군사적 대응 능력이 북한·중국의 군사력 확대로 인해 지속해서 떨어진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이 중국의 도전으로 군사적 우위가 상실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모습과 대조된다.

병역 자원 급감해 예비 전력 강화 시급

한국은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5년에 장기 국방 개혁안을 만든 이후 정권마다 국방 개혁에 나서고 있다. 한국처럼 국방 개혁에 열심인 나라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도 왜 당장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의 확보가 그토록 어려운가. 전문가들은 국방부의 모든 분야가 개혁 대상이다 보니 국방부 일반 정책이나 개선 업무가 구분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국방 개혁은 우리 군의 일상적 업무가 됐고 절박함도 사라졌다. 우리 군 개혁은 조직의 안정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아래 추진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병영문화 개혁 분야에서 가장 우선시된 것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권과 복지 구현이다. 병사들에게 실질 수준의 봉급이 지급될 수 있도록 생활 여건을 개선하고 사회와 단절 없는 병영문화 구현을 위해 30조2000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 기술 확보를 위한 국방연구개발비 예산 23조3000억원을 웃돈다.

병사 인권과 복지는 중요 가치이지만 지휘 측면에서 볼 때 심각한 도전이다. 군은 병역 자원 감축, 병역 기간 단축, 대체복무제 도입 등 3종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유일한 대안은 예비 전력 활성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예산 지원이나 체계적 준비는 미미하다.

예비군을 상비군 수준으로 발전시킨다는 구호에도 예비 전력 투입 예산은 국방비의 0.4%에 불과하다. 병역 자원이 급감하는 상태에서 병역 기간마저 줄었다면 예비 전력을 키우기 위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군 구조 측면에서도 그동안 미뤄온 부대구조 개편을 마무리하기 위해 육군은 전방 군단 2개와 7개 사단을 해체하게 되며 2000여개의 중대를 대대급으로 개편해야 한다. 육군은 20기계화사단을 해체하고 7군단 예하에 기갑사단·기동사단 2개, 신속대응사단 구조로 유사시 북한에 진격할 수 있는 공세적 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문재인 정부 초기 송영무 장관이 만든 신작전 수행 개념에 입각한 안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아직은 교리로 발전되어 있지 않고, 한·미 간에 합의한 작전 개념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국방 개혁의 핵심 목표는 군의 전력 증강이다. ‘국방 중기 20-24 계획’에 잘 나타나 있듯 290조5000억원의 국방 예산을 투입함으로써 지난 정부보다 국방 예산 편성 비율이 높아졌다. 그러나 방위력 개선비의 비중은 3분의 1 수준으로 종전과 유사하다. 특히 방위력 개선비 103조8000원 중 전략적 억제에 소용되는 비용은 34조1000원에 그친다.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주변 국가들과의 상대적 격차를 줄이는 데는 부족하다. 다양한 방사포·자주포를 동시에 발사하는 북한의 섞어 쏘기 능력이나 중국의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고려해야 하는 다층방어시스템 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민주 군대는 강한 훈련과 단호한 지휘관 필요

당장 싸워 이길 수 있는 태세는 말로 이뤄지지 않는다. 전투 감각 이완, 안보의식 약화와 함께 전투 준비보다 병력 관리에 치중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한 장비 현대화만으로 강군을 만들 수 없다. 민주 군대일수록 훈련은 강력해야 하고 지휘관은 추호의 정치적 고려 없이 강군 육성에 매진해야 한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군 혁신에 활용한다는 대원칙은 존재한다. 하지만 재래식 전력과 최첨단 전력을 어떻게 조합할지, 합동성을 어떻게 구현할지, 핵전쟁과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상쇄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방 개혁은 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먼저, 추진할 핵심 목표들을 엄선해야 한다. 둘째,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 이후 단일 사령부로서 미래사령부를 이끌 장군단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 셋째, 국방 개혁 진행 상황에 대한 상시 검증 체계가 필요하다. 계획만 세우면 되는 현 체제를 이어갈 수 없다. 미래전을 준비하려면 산학연 연대를 확대하고, 민간의 인재들이 더 많이 유입되도록 조직문화를 개방해야 한다. 당장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가 되려면 아픈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이제까지 해온 방식과 결별할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다.

정권 바뀌며 국방 개혁도 단절, 낭비와 반복 악순환

전략이 바로 서야 개혁 방향을 올바로 설정할 수 있다. 국방 개혁을 주도하는 국방부 국방개혁실은 이런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기 어렵다. 조직을 변화시키고 사업 우선순위를 수정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지만 조직 편제상 주어진 임무가 아닌 일을 절대로 할 수 없다.

이를 시도해서도 안 되는 칸막이 문화가 국방부와 군에 남아 있다. 국방개혁실은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만들어 장관에게 전달하고 청와대와 장관 사이를 오가며 전령 역할을 하는 업무에 매몰되고 있다.

국방개혁실은 국방부의, 국방부에 의한, 국방부를 위한 개혁 정책에 머물러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들에 의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다. 해외 전문 평가기관에 의뢰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방부 조직은 위계질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국방 예산이 매년 늘어 50조원이 됐지만, 예산을 받아 부서별·군별·사업별로 나누는 과정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모든 사업은 예비역부터 현역, 민간인 사업자들까지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과 복잡하게 연계돼 있다. 아무리 공정한 기준에 의해 결정이 내려진다 해도 결국 정책 방향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생기고, 이러한 방향 설정에 따른 후과가 만만치 않다 보니 가치를 극대화하는 최선의 대안을 찾기보다 피해가 작게 가는 안을 찾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선진화위원회는 1년에 102회의 회의를 소화하며 2012년 말 64개의 건의 과제를 대통령께 보고했다. 그러나 이 문서는 국방부 공식문서로 채택되지 않았다. 국회가 이 문서를 요구했을 때 국방부는 없다고 답했다.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의 지속적 개혁 요구는 박근혜 정부가 수용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방 분야에서 많은 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놀랍게도 과거 정부 위원회에 속해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합리적이라지만, 지난 정부의 교훈과 비교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원점에서 재출발하는 낭비와 반복을 피하기 어렵다.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전 국방부 국방개혁실장·리셋 코리아 국방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