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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위기, '넘버2' 스가와 눈 마주치지 않으며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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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548.
일본 아베 정권의 넘버 2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71) 관방장관 지역구 사무실 차량의 번호다.

[서승욱의 나우 인 재팬] #'아베의 복심' 스가 장관 위상 흔들 #일제 휴교령, 입국제한에 관여 못해 #'벚꽃 보는 모임'스캔들때 관계 삐끗 #아베 "날 보호할 뜻이 전혀 없더라" #관저는 이마이 보좌관 독주 태세

자민당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2009년 총선거 때 불과 548표 차이로 살아남았던 스가 장관이 "선거와 민심의 무서움을 기억하겠다"며 일부러 이 번호를 받은 것이다.

지난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운동 당시 아베 총리가 한 선거운동원의 코트에 짧은 글을 남기는 모습. 스가 장관이 옆에서 옷감을 평평하게 잡아주고 있다. [아베 총리 페이스북]

지난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운동 당시 아베 총리가 한 선거운동원의 코트에 짧은 글을 남기는 모습. 스가 장관이 옆에서 옷감을 평평하게 잡아주고 있다. [아베 총리 페이스북]

일본 동북부 아키타(秋田) 현 딸기 농가에서 출생, 고교 졸업 후 무작정 상경, 골판지 공장과 카레 집 아르바이트, 고학으로 호세이대 법학부 졸업, 11년간의 국회의원 비서관 생활, 요코하마 시의원을 거쳐 국회 입성….

집념의 자수성가 스토리로 유명한 그는 지난 6일 관방장관으로서의 3000번째 기자회견을 했다.

2012년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재집권과 함께 관방장관에 임명된 지 7년 3개월여 만에 도달한 전인미답의 대기록이다.

그는 아베 정권의 위기대책반장, 하자전담반으로 불리며 '정치 명문가 출신 도련님' 아베 총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왔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선 막힌 곳을 뚫는 막후 해결사였다.

지난해엔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직접 발표하며 ‘레이와 아저씨’로 주가를 높였다.  '포스트 아베' 차기 총리 후보군에도 이름을 올렸다. 아베 총리의 확고한 신뢰를 받는 내각의 핵이었다.

하지만 바위처럼 단단했던 그의 위상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과거 국회 예산위 등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할 때 아베 총리는 반드시 스가 장관과 먼저 눈을 맞춘 뒤에 답변했는데, 올해에 들어와선 스가 쪽을 전혀 보지 않는다."

일본의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은 최근호에서 일본 정치권에 이런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베 총리와 스가 장관 사이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총리관저 사정에 밝은 일본 소식통은 최근 중앙일보에 "아베 총리와 스가 장관의 관계에 대해선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틀어졌다', '멀어지긴 했지만, 완전히 끝장난 건 아니다'라는 두 가지 관측이 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스가 장관의 위상이 이전과 달라진 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2018년 8월 1일 '왕위계승식전 사무국'현판식에 나란히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왼쪽).[지지통신 제공]

2018년 8월 1일 '왕위계승식전 사무국'현판식에 나란히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왼쪽).[지지통신 제공]

빈틈을 찾기 힘들던 두 사람의 철벽 공조에 '실금'이 생긴 계기는 아베 총리가 총재 3연임에 성공한 2018년 9월 자민당 총재 경선을 거치면서였다.

"경선 전 아베는 어느 파벌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스가에게 '파벌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무계파 의원들을 끌어모아 경선 때 자신을 도와달라는 게 아베의 의도였는데, 스가가 실제로 파벌을 만든 건 총재 경선이 끝난 뒤였다. 그래서 아베는 ‘스가가 자기 정치를 하려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일본 유력지의 정치부 간부가 본지에 전한 당시 상황이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됐고, 스가는 계속 관방장관으로 중용됐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 뒤 아베 총리가 단행한 개각에선 스가 장관이 추천한 이들이 대거 입각하기도 했다.

둘의 관계가 틀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11월 터진 ‘벚꽃 보는 모임’ 스캔들이었다고 한다. 세금이 투입되는 이 행사에 지역구 주민 800명을 부른 게 들통나면서 아베 총리가 코너에 몰렸다.

당시 스가 장관은 정례 브리핑 때 질문이 쏟아지자 "그건 아베 총리 지역구 사무실에 물어보라"는 답변을 했는데, 이를 본 아베 총리가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다.

슈칸분슌은 아베 총리가 "총리의 개인적인 문제인데 왜 내가 답변해야 하느냐는 기색이 스가의 얼굴에 그대로 써 있었다. 전혀 날 보호할 생각이 없다"고 주변에 불만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해 4월 1일 오전 총리관저에서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해 4월 1일 오전 총리관저에서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가가 흔들리며 총리 관저의 권력 지도는 확 바뀌었다. 스가와 함께 '핵심 실세'로 통했던 경제산업성 출신의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61) 총리보좌관 겸 정무비서관이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아베의 귀를 틀어쥔 이마이가 아베 총리와 스가 장관의 불화를 더 부채질했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 관저에서 이마이 외에 힘을 쓰는 이는 경찰 출신인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63) 국가안전보장국장 정도다. 이마이와 기타무라 모두 1차 아베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 때부터 아베 주변을 지켰던 비서관 출신들이다.

지난해 4월 아베 총리의 유럽 순방에 동행했던 이마이 다카야 총리 비서관이 정부 전용기를 통해 귀국하는 모습. [지지통신]

지난해 4월 아베 총리의 유럽 순방에 동행했던 이마이 다카야 총리 비서관이 정부 전용기를 통해 귀국하는 모습. [지지통신]

스가의 약세와 이마이의 위세는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 19) 대응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난달 말 아베 총리가 전격적으로 발표했던 ‘전국 초·중·고 일제 휴교령’이나 '한국과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제한'에 스가 장관은 개입하지 못했다.

전국의 학교와 가정에 대혼란을 초래했던 일제 휴교 요청은 이마이 보좌관이, 한·중으로부터의 입국제한은 기타무라 국장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스가 장관-스기타 가즈히로 (杉田和博) 관방 부장관으로 이어지는 아베 관저의 위기대응 SS라인은 기능을 멈췄다.
스가 장관이 각 부처 간부들을 불러 도쿄 시내 호텔에서 개최해온 코로나 대응 회의도 3월부터는 열리지 않게 됐다고 한다.

2018년 10월 2일 아베 내각 각료 인선 발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지지통신 제공]

2018년 10월 2일 아베 내각 각료 인선 발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지지통신 제공]

전국 일제 휴교령을 사전에 전달받지 못한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에선 관저 독주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다. 그동안 총리관저와 여당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 온 스가의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

대형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사태에서의 갈팡질팡 대응, 땜질식 코로나 대책과 지지율 폭락, 풍전등화가 된 도쿄 올림픽 개최 등 아베 총리의 위기는 스가 장관과 눈을 마주치지 않게 되면서 더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