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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할때 빚만 3000만원"…소년원 700명 '아부지'의 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이 돌봐온 김성수씨(가명)와 나눈 페이스북 메시지를 소개하고 있다. 강광우 기자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이 돌봐온 김성수씨(가명)와 나눈 페이스북 메시지를 소개하고 있다. 강광우 기자

"아부지! 계좌번호 알려줘요. 빌렸던 돈 조금씩 갚으려고요!!"
"그럼 우리 재단에 기부해라. 성수 이름으로."

윤용범(61)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과 그가 보살펴 온 소년원 출신의 김성수(23·가명)씨가 최근 페이스북 메신저로 나눈 대화의 일부다. 김씨는 18세에 소년원에서 윤 사무총장(당시 법무부 소속)을 만났다.
윤 사무총장은 1985년 법무부 소년보호직 9급으로 입사해 지금까지 소년원 아이들만을 위해 살아온 '키다리 아저씨'다. 지난 35년여간 김씨처럼 보살핀 아이들이 700여명에 이른다. 윤 사무총장은 지난해 6월 정년 퇴임 후 청소년 취약계층의 자립을 지원하는 청소년행복재단 설립을 주도했다. 인연이 있었던 이중명 한국소년보호협회 이사장(아난티그룹 회장)이 이사장직을 맡았고 자금도 후원했다.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재단 사무실에서 윤 사무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소년원 아이들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대학 입학을 준비하던 시기, 집안이 어려워져서 학업을 포기하고 노점을 했다. 그때 비행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면서 결심했다. 종교적 사명감도 한몫했다. 법무부 소년보호직이 가장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법무부에서 무슨 일을 했나
1985년 첫 임무로 충주소년원 농기계반의 부담임을 맡아 아이들을 가르쳤다. 심리 상담을 통해 아이들을 분류하는 일도 했는데 당시 컴퓨터가 처음 도입돼 독학으로 소년보호정보시스템의 초기 모델을 만들었다. 그것을 계기로 법무부 보호국(현재는 범죄예방정책국) 소년과에서 기획업무를 맡았다. 아이들이 방송을 만들도록 지원하고 전국 소년원에 송출되는 '푸르미방송국'도 개국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주면 범죄를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지만 생각하면서 살았다. 
관심을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2011년에 똑똑했던 아이를 잘 지원해 대학에 보냈는데, 퇴원 후 1년 만에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서 보니 자립할 환경이 안 됐다. 그 일을 계기로 아이들이 소년원에 나온 뒤 1년여간 소년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사후 관리하는 '희망도우미 프로젝트' 운동을 전개했다. 솔선수범한다고, 직접 나섰다. 그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간만 나면 퇴원생들을 만났다. "어디 아프니", "요즘 어떠니" 물어보고, 갈비 사주고 그랬다.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아이들이 700명 정도 될 거다. 내 칠순 잔치 때 이 아이들 데리고 식사 같이하는 게 꿈이다. 
기억에 남는 일은
사시였던 아이 수술비를 지원해줬다. 전에는 아이가 눈을 안 맞추고 어수룩했는데 내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더라. 눈물이 팍 났다. 한 아이가 그렇게 바뀌는 거 볼 때 뿌듯하다. 요즘엔 페이스북으로 아이들이 연락이 온다. "기초 수급하려는 데 어떻게 해야 해요", "억울한 일 생겼어요", "떡볶이 먹고 싶어요" 부모들이 없어서 나에게 '아부지'라고 부르며 해달라고 한다. 내가 도와주면 그 아이들이 커서 다른 아이들을 돕더라.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앞줄 왼쪽에서 세번째)이 지난해 6월 25일 사시수술비 지원을 위한 장학금 전수식에서 활짝 웃고 있다. 윤 사무총장은 마지막 보직인 안산청소년꿈키움센터장직에서 명예퇴직을 기념하면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 사진 청소년행복재단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앞줄 왼쪽에서 세번째)이 지난해 6월 25일 사시수술비 지원을 위한 장학금 전수식에서 활짝 웃고 있다. 윤 사무총장은 마지막 보직인 안산청소년꿈키움센터장직에서 명예퇴직을 기념하면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 사진 청소년행복재단

돈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도 범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속상하다. 하지만 계속 관심 가지고 지원하면 결국 정상적으로 생활한다. 퇴직하니까 빚이 3000만원 있더라. 아이들은 '아부지'가 자기 돈을 직접 내는 것을 봐야 더 신뢰감을 형성하기 때문에 항상 사비를 많이 썼다. 퇴직하니까 아이들끼리 서로 앞으로는 '아부지'한테 밥 사달라고 이야기하지 말라고 얘기했다더라.(웃음)
윤용범 사무총장이 청소년자립생활관에 격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청소년행복재단

윤용범 사무총장이 청소년자립생활관에 격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청소년행복재단

재단은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주나
'조이플래너'라는 멘토들을 모으고, 아이들이 원하는 걸 해결해줄 거다. 장학금이 필요하다면 재단을 매칭해주고, 기술 장인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 연결해주는 식이다. 주거, 취업, 창업 등을 위한 금전적 지원도 한다. 주유소처럼 아이들이 기름이 떨어졌을 때 찾아오는 아이들을 위한 플랫폼이 됐으면 한다. 
특별한 운영방침이 있나
창업하고 싶다고 해서 돈을 지원해주면 절반은 상환을 받는다. 기부 상환으로 갚으라고 한다. 그 아이가 자립에 성공해 절반의 돈을 갚으면 재단에서 돈을 보태 그 아이의 이름으로 또 다른 아이에게 출자한다.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의 멘토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 강광우 기자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 강광우 기자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있나
소년원 아이들은 일반 아이들과 똑같다. 하지만 부모가 없거나 있더라도 제 역할을 못 하면 학교 부적응까지 이어진다. 처음 가출할 땐 범죄 피해자가 되지만 가출을 반복하면서 가해자로 변하기 시작한다. 남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다. 이 아이들을 방치하면 내 아이를 포함한 10명의 아이들을 괴롭힐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내 아이가 안전하려면 지역사회가 이 아이들을 성실하게 돌봐야 한다. 아이들은 열심히 도와줘도 바로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감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 거다. 그럴 때 나는 항상 이런 말을 혼자 되뇐다. "믿기만 하자.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만나주면, 하루하루, 자란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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