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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함께 정원을 가꾸시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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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호 면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 감염자 증가세가 주춤하지만 미국, 유럽, 이란 등에서는 확진자가 확산 중입니다. 팬데믹 불안이 가중되면서 경제 위기감도 커집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쇼크에 빠졌습니다. 증권시장은 폭락세를 이어갑니다.

전략적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이젠 장기전입니다. 코로나19가 조만간 종식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없습니다. 치료제 등이 개발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결국 선택지는 감염 속도를 늦추는 지연 전략뿐입니다.

일부 외신에서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도취해서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죠. 철저하게, 신속하게 의심 환자를 검사해서 확진 여부를 가리고, 투명하게 결과를 공개하는 기조는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12일 서울 성동구청 방역팀이 왕십리2동 한 PC방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서울 성동구청 방역팀이 왕십리2동 한 PC방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확진자 중에서 경증과 중증을 구분해서 걸맞은 치료 시스템도 단단히 갖춰야 합니다. 초기에 이런 구분을 안 해 경증 환자가 음압 병실을 차지하는 등 혼선이 있었지만, 경증 환자는 생활안전센터로 가고, 중증 환자는 음압병실 등이 있는 대형 병원으로 가는 방향으로 교통정리가 됐습니다.
지금부터는 지연 전략의 강도를 높여야 합니다. 지금껏 실천한 것을 더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결의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국민은 손을 자주 씻고, 사람이 여럿 모이는 모임을 최대한 자제하는 등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면 감염 전파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지연 전략이 성공하면 의료 인프라 수준 범위 안에서 환자 관리가 가능해집니다. 시간을 번다는 것은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환자를 치료하며 버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감염 속도가 늦춰지면 자원이 부족해 발생하는 허망한 죽음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실패해 확진자 수가 폭등하면 의료 인력과 병실 등이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의료 체계가 무너집니다. 중증 환자의 치료가 어려워지고 다른 병에 걸린 환자도 보살피지 못하게 됩니다. 결과는 사망자의 증가죠. 전문가들은 이런 전략을 ‘커브 평탄화(flattening the curve ) 모델’로 설명합니다.

커브평탄화곡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커브평탄화곡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국에서는 지연 전략이 조금씩 먹혀들어가는 형국입니다. 확진자 증가세가 둔화했고, 사망률은 낮은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죠. 전 세계가 연결된 마당에 한국만 진정세를 보인다고 코로나19 쇼크에서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필요한 건 집단 지성입니다. 정부는 환자 발생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작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도 ‘종식’ 선언은 안 됩니다.

개인은 위생을 철저히 해야 하고 의심스러운 증세가 나타나면 먼저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나아가 현명한 소비가 필요합니다. 공포에 질려 지갑마저 열지 않는다면 경제 위기를 불러오고 더 큰 공포로 전이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미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등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차 코로나19 쇼크가 2차 경제 쇼크로 이어질지 변곡점에 처한 상황입니다.

창의적인 소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비대면 거래 확대는 물론이고, 개인 위생 철저히 한 뒤 자영업자 돕기에 나서시죠. 동네 상점에서 물건 사고, 동네 식당에서 외식도 하세요. 정부도 지역 화폐 등을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획기적인 방식을 검토하세요.

미국 저널리스트 율라 비스는 『면역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면역은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정원을 함께 가꾸어야 전염병이 퍼지는 구조를 끊어낼 수 있습니다. 이제 장기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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