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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Via Air Mail'- 잃어버린 낭만의 시간을 찾아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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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호 면

"이제 알았어. 왜 날고 싶었는지. 너에게 돌아가기 위해 난 늘 날아오르고, 없던 길을 찾았어."(파비앙의 대사 중에서)

[유주현 기자의 컬처 FATAL]

비행사 남편은 결국 작곡가 아내에게 돌아갈 수 없었지만, 이들의 사랑은 음악이라는 순간 속에 영원히 갇힐 수 있었다-.

2019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 뮤지컬 'Via Air Mail'은 실제 우편 비행사이자 항로 개척자이기도 했던 생텍쥐페리의 자전적 소설 『야간비행』을 모티브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야간비행』 속 우편 비행사 파비앙과 리비에르 국장이 들려주는 ‘책임과 의무의 숭고함’에 관한 이야기는 무대가 창조한 파비앙의 아내 로즈와 메일보이 캐릭터로 인해 ‘사랑과 희망’이라는 코드가 더해져 한결 더 촉촉해졌다. 실제 생텍쥐페리도 2차 대전 당시 정찰 비행을 나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는데, 아내에 대한 사랑을 새긴 팔찌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1920년대를 배경으로 고색창연한 클래식 비행기를 소재 삼은 무대는 톡톡 튀는 창의력이 느껴지거나 새롭고 독특한 실험의 장은 아니다. 잔잔하고 평범하지만 소극장만의 아기자기한 낭만을 추구한 소품이다. 하지만 모험과 열정, 사랑과 용기와 꿈, 음악과 편지 같은 오래되고 손때 묻은 낭만이 이 작은 무대에 빼곡하다.

뮤지컬 'Via Air Mail'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뮤지컬 'Via Air Mail'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공연계도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살벌한 봄을 맞고 있다. 창작산실 작품들은 여타 국공립 기관 제작 공연과는 달리 일부 일정 축소를 제외하곤 대부분 취소 없이 공연을 강행하고 있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열감지카메라는 물론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선을 공항 검색대 수준으로 통제하며 체온을 일일이 측정하고, 좌석표에 실명과 연락처와 동행인까지 기록하게 하며 관리중이다. 이런 낯선 풍경에도 아랑곳없이 거짓말처럼 소극장을 가득 메운 뮤지컬 팬들의 온기가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한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도 객석 지키기를 선택한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무대 위 네 명의 주인공들도 별스런 영웅이나 위인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른 나라보다 먼저 신항로 개척을 해 빠르게 항공 우편을 전달해야 하는 우편 비행사 파비앙, 남편이 목숨과 맞바꾸게 될 신항로 개척 기념식을 위해 곡을 쓰는 작곡가 로즈, 위험을 무릅쓰고 파비앙의 마지막 편지를 로즈에게 전달할 사명을 완수하는 우편국장 리비에르, 비극을 목격하고도 우편 비행사의 꿈을 향해 직진하는 메일보이...역사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길 일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 바치는 헌사랄까.

파비앙의 비행 만큼이나 중요한 모티브가 로즈의 작곡이다. 클래식 비행기 못지않게 낡은 피아노가 무대 중심을 차지하고 있듯, 이것은 음악에 관한 뮤지컬이기도 하다. “순간이 곧 음악이 되고, 음악은 다시 그 순간을 불러오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로즈의 대사는, 어떤 음악을 함께 들으며 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건 그 음악을 다시 듣는 순간만큼은 함께 있는 것과 같다는 낭만적인 깨달음을 준다. ‘순간에 갇히게 하는’ 음악의 힘을 믿는다면, 이 뮤지컬을 마주한 2시간은 음악으로 기억된다. 기념식을 위한 로즈의 곡, 아니 이 뮤지컬을 위한 채한울 작곡가의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넘버들이 한 곡 한 곡 빠짐없이 귀에 착착 감기기 때문이다.

뮤지컬 'Via Air Mail'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뮤지컬 'Via Air Mail'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 무대에 신선한 충격은 없지만 아늑한 감동이 있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비행은 낭만이자 위험이며, 자유롭고도 고독하다. 파비앙은 로즈와 낭만적인 야간비행을 꿈꾸지만, 그런 낭만을 누리기 위해 먼저 위험한 기록 경쟁이라는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

“아무도 편지를 빨리 받고 싶어 누군가 목숨을 걸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로즈의 대사는, 인간이 왜 그런 경쟁을 벌여온 건지 우리에게 묻는 듯 하다. 우편 사업자들이 경쟁적으로 신항로 개척에 나서지 않았다면 파비앙이 위험한 비행을 떠날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경쟁적으로 기술발전을 거듭해 세계가 한덩어리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전염병 따위는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파비앙처럼 위험한 비행을 떠난 우리는 별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좌초될 위기에 있다. 애초에 왜 날고 싶었던 것인지도 망각한 채.

뮤지컬 'Via Air Mail'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뮤지컬 'Via Air Mail'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결국 로즈에게 돌아가기 위해 날아올랐다는 것을 깨달은 파비앙처럼, 이런 낭만적인 뮤지컬도 맘 놓고 볼 수 있는 평온한 일상을 즐기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도전과 희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과연 우리는 소중한 일상의 낭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2시간 내내 객석에서 숨막히는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끼고, 무대 위 로맨틱한 입맞춤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차가운 용어를 떠올려야 하는 씁쓸함은 무엇으로 위로받아야 할까.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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