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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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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xabay]

[Economist Deconomy]  전세계 우량주의 집합체인 미국 다우ㆍS&P500ㆍ나스닥지수 7~8% 하락, 국제유가 사상 최대 하락, 셰일업체 주가 50% 가량 무더기 하락,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영국 중앙은행(BOE)이 정례회의 아닌 긴급회의를 소집해 정책금리 0.5%포인트 ‘빅컷’ 실시, 코스피ㆍ코스닥지수의 무차별적 하락, 그보다 더 심한 브라질ㆍ러시아 등 신흥시장의 패닉…. 2020년 3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발생한 충격들이다.

#OECD가 전세계 성장률을 2.4%로 낮췄다

이달 들어 코로나19 감염자가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충격이 불가피하다. 코로나19 초기 국면이었던 1월 말까지 올해 글로벌 경제에 대해서는 반등 전망이 우세했다. 미ㆍ중 1단계 무역합의가 성사됐기 때문이다. 미ㆍ중 무역분쟁이 최고조로 격화된 작년 글로벌 경제와 교역이 워낙 저조한 가운데 미ㆍ중 무역협상으로의 기조 전환으로 리바운딩 기대가 컸다. 하지만, 2~3월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아시아-중동-유럽-미국까지 번지면서 경기회복과 금융시장 강세가 지속할 것이란 기대는 빠르게 소멸됐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올해 글로벌 경제성장률 전망을 2.4%로 낮췄다. 2.4%라는 숫자의 의미는 뭘까.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2019년 동안 가장 낮은 성장률로 하락하는 것이다. 올해 2.4% 성장을 빼고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해는, 다름 아닌 작년의 3%다. 

2008~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 2010~2012년 유럽 재정위기, 2013~2014년 신흥국 취약성 위기, 2015~2016년 산유국 위기, 2016년 브렉시트와 미 트럼프 대통령 당선 쇼크, 2018~2019년 미ㆍ중 무역분쟁 등 끊임없는 위기와 충격 상황을 겪었지만 글로벌 경제성장의 하한은 3%였다. 이마저도 코로나19 문제가 상반기 최악의 상황은 지난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이 하반기까지 이어진다면 올해 글로벌 경제성장률이 1.5%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실적회복 없으면 시장 반등 어렵다

코로나19 사태가 ‘전환적 위기’를 자극한 것은 분명하다. 지금은 방역이 최선의 경기부양책이 됐다. 국내외적인 이동을 자제해야 하며, 통제ㆍ금지의 결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돌발적인 상황으로 인해 올해 1분기, 더 나아가 2분기까지는 소비ㆍ생산ㆍ투자 활동의 위축이 불가피하다. 통상 경기침체는 2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최근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증시가 급락세로 돌변한 것은 올 상반기 경기침체 상황이 기업실적에 반영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주요 전망기관들이 경제전망을 낮춘 이후, 기업실적 추정을 바탕으로 기업가치를 산출하는 애널리스트들의 실적전망 하향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일단 상반기까지 실적전망치는 낮아질 것이고, 이후 코로나19 사태와 글로벌 경제의 동향을 살피면서 하반기 실적전망을 수정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국면전환을 하거나, 4~6월에 1분기 기업실적과 향후 가이던스(기업 측 전망)를 확인한 기업분석 애널리스트들이 실적이 회복한다고 보지 않을 땐 주가 반등의 논리를 찾기 어렵다. 주가가 상승하는 내재가치를 반영해 상승 추세로 복귀할 것이라는 믿음이 약해지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되고 가속화된 것은 분명하다. 다만, 지금의 모든 원인이 코로나19는 결코 아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 이후, 경제상황 악화는 지속돼 왔다. 만약 글로벌 경제의 기본적인 체질과 체력, 즉 펀더멘털이 강하다면 설사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더라도 이 정도의 공포와 패닉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글로벌 경제의 침식이 지속하는 가운데, 돌연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파급력이 배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제로금리 시대 다시 온다

전세계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인 Fed와 중앙은행의 본가 BOE가 긴급회의를 열어 0.5%포인트의 빅컷을 단행했다. Fed와 BOE의 긴급금리 인하는 경기부양 조치가 아니라,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신용경색 징후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은행간 단기자금 결제비용을 낮춰 신용경색-금융악화 가능성을 낮추는 게 목적이다.

중앙은행들의 이러한 조치에도 신용경색 가능성을 100% 차단할 수는 없다. 중앙은행들은 금융위기 징후가 발생하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한다. 중앙은행이 직접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되도록 민간 대부시장에서 자금결제가 용이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주력한다. 때문에 Fed와 BOE의 긴급조치로 시장이 안정화될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어쨌든 Fed와 BOE의 정책금리는 각각 1~1.25%, 0.25%로 낮아졌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 중앙은행(BOJ)이 제로금리 정책을 최장기간 유지하고 있는데, Fed와 BOE도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실시해 조만간 모두의 제로금리 환경이 재차 도래하게 될 것이다.

2008년 말~2009년 상반기 제로금리로 인하, 무제한 유동성 투입 준비, 양적완화가 병행되는 국면이 다시 전개된다. 미국ㆍ유럽ㆍ일본ㆍ영국 및 한국 국채금리가 사상 최저치를 찍는 상황은 이러한 변화를 선반영하는 채권시장의 움직임이다. 국가신용등급이 적어도 A 이상인 국가들의 국채 중에서, 그래도 4~5%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을 제외하면 1% 이상의 국채금리를 찾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필자가 전망하는 제로성장과 제로금리 시대의 도래는 극단적 시각이다. 그러나 노동생산성 저하, 고용의 지속적인 축소 압력, 고령화, 과잉부채, 부의 불균형 확대, 미ㆍ중 무역분쟁을 비롯한 패권 다툼과 이로 인한 경쟁 격화 등의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경제환경의 변화와 실물성장과 현재 및 미래 인플레이션(여기서 얘기하는 인플레이션은 체감지표가 아닌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을 가중해 산출한 통계지표를 의미) 저하 문제에 대해서 나름 필사적으로 고민한 이후 내린 결론이다.

#채권도, 금도, 현금도 불안하다

실물경제의 침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사태는 실생활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투자도 난감하게 하고 있다. 노동소득이 아닌 자본소득의 어려움도 동반된다. 주식ㆍ채권ㆍ통화ㆍ부동산ㆍ상품 등 전통 투자자산을 다루는 투자자뿐 아니라 암호자산을 다루는 투자자들도 같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보통 경기악화와 금융불안정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안전자산이 선호된다. 안전자산은 기대수익률은 낮지만 리스크도 낮아서 원금손실 위험이 낮은 투자자산으로 정의된다. 신용등급 높은 채권, 현금, 그리고 금 등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지금 안전자산은 버블 논쟁이 일만큼 고평가됐다. 채권금리가 제로에 수렴하고, 심지어는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 금 투자는 어떨까. 금을 실물로 보유하려면 감가상각을 감수하고, 비싼 보관료를 내야 한다. 금 실물가치로 파생된 금융상품은 말 그대로 금 자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금 실물가치와 연동된 금융상품을 보유하는 것으로, 수수료 등의 비용과 더불어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현금은 그나마 가치변동성이 낮은 투자자산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가별 상황과 통화정책의 변화가 무쌍할 때, 외환가치 변동성은 결코 낮지 않다.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가 너무 어렵다.

#비트코인은 안전자산 아니라 위험자산이다

‘디지털 금’이라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자산이 새로운 안전자산이 될 수 있을까. 비트코인은 일견 안전자산의 특징이 있다. 글로벌 경제나 금융위기 등 제도화된 시스템에 위기가 왔을 때, 대안 투자대상으로 주목받았다. 비트코인은 P2P 네트워크 상에서 최종적 가치를 보장하면서 통화가치의 지속적 절하를 헤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자산의 성격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자산은 위험자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의 내재적 가치는 네트워크와 사용자,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트랜잭션의 규모다. 많은 사람이 거래하면 전체 네트워크 가치가 상승하고, 극단적으로 아무도 쓰지 않으면 네트워크 가치는 제로에 수렴할 수도 있다. 이는 비트코인 등과 암호자산 가격의 높은 변동성으로 귀결된다. 안전자산으로 기능하기엔 부족하다. 또한, 제도적인 측면에서 투자자 보호장치가 전혀 없다. 

따라서 이렇게 경제 및 금융시장의 위기가 왔을 때, 안전자산의 하나로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 투자를 권하기는 어렵다.

#투자와 모든 것의 패러다임을 바꿔라

그렇지만, 구조적 경기침체 압력, 전통 금융시스템의 비포용성, 그리고 전통 투자자산의 기대수익률은 낮아지고 리크스는 높아지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이 새로운 네트워크 가치를 키워가고, 창업 및 펀딩ㆍ거래ㆍ투자를 통해 새로운 경제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해서는 고무적으로 평가한다. 현재 투자의 측면에서 암호자산을 매입하고, 보유하는 선택은 이론적ㆍ확률적ㆍ선택적ㆍ실행적 가능성을 기회로 향유하는 합리적이고 경제적 선택이 될 것이다.

2020년은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시점이다. 제로성장과 제로금리가 정착되고, 과거의 경제ㆍ금융적 틀로는 더 이상 성장을 지원하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고 적응해야만 하는 시대의 시작일 수도 있다. 더욱이 우리는 코로나19 재난으로 현재와 미래가 더욱 불투명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과거 위기와 충격에 대처하는 방식 중에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인내는 일견 좋은 선택이었다. 경제와 금융시장은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의 근거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재 위기와 충격에 대처하는 방식은 좀 더 적극적, 협력적이어야 할 것 같다. 투자뿐 아니라 삶의 모든 양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임동민 교보증권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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