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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퍼스펙티브

행정 강제라니…콜로세움에 던질 사자밥 필요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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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재명의 1만 3000개 교회 예배 금지론 

11일 오후 수원의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오른쪽)가 도내 기독교계 지도자들과 긴급 좌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은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 [사진 경기도청]

11일 오후 수원의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오른쪽)가 도내 기독교계 지도자들과 긴급 좌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은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 [사진 경기도청]

한국인이 바이러스 시국에 겪고 있는 고통은 50일간 발생한 60명의 생물학적 사망자 수에 그치지 않는다. 감염 비상 정국을 개인이 정치적 인기를 얻는 공간으로 이용하는 권력자들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들은 위기 때 자신에게 주어진 법적, 행정적인 권한을 최대한 행사해 대중의 환호를 얻으려 한다. 미래의 어느 날, 코로나의 암울한 시절을 이겨내고 나면 사람들은 어느새 생활의 모든 세밀한 영역을 침투해 들어와 영혼의 내밀한 속삭임까지 간섭하는 크고 작은 독재자들을 보게 될지 모른다.

여론조사 대권 2위 되니 흥분한 듯 #신앙인에게 예배는 목숨처럼 소중 #행정 강제 즐기면 전체주의에 빠져 #교계 거친 저항 일단 수용한 건 다행

“상황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그 사람의 본질을 보여줄 뿐”이라고 했던가. 이재명 경기지사가 집단 전파의 시초이자 주범인 신천지 교회 시설을 봉쇄한 긴급 조치는 타이밍이 좋았고 적절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지지층이 결집하고 어떤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 후보 2위에 오른 것에 흥분한 듯하다. 그는 닷새 전 “경기도 내 종교집회 금지 명령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교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그러더니 어제는 경기도 교계 지도자들을 만나 “집단종교 행사의 전면 금지는 시행하지 않는다. 최악을 대비해야 하는 행정기관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해 주시라”고 한 발 뺐다. 신천지를 때려잡아 재미를 본 뒤 이제 기독교계 전반으로 금지 대상을 확대하면 대권 후보 1위까지 따낼 수 있으리라는 심산이었던 모양인데 교계의 거센 반발에 한발 물러선 것 같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일부 목사들은 이재명 지사의 강압적 어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강제성이 발휘되면 상당한 충돌이 예상된다” “예배 전면 금지라든지 긴급 명령한다든지 하는 용어 자체가 목사들과 교인과 교회에 굉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용어 선택에 신중하길 바란다” “용어적 표현에서 강압적 부분이 들어가게 되면 더 반발할 수 밖에 없다”는 등의 말이 나왔다. 권력자의 언어는 금덩어리처럼 굳세게 받아들여 진다. 그가 내뱉은 닷새 전의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을 끓였을까. 이재명의 교회 때리기는 다분히 코로나19 공포에 젖은 군중의 욕구를 의식한 것 같다. 위기에 빠진 대중은 심리적으로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다. 역사 속의 포퓰리스트들은 콜로세움에 사자밥을 던지거나 장작더미 위에서 마녀를 세우는 방식으로 대중의 욕망을 관리했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는 다음의 네 글자를 새겼으면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뜻이다. 그쯤에서 머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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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예배 금지를 명령하는 근거로 감염병예방법 49조의 ‘도지사가 감염병 예방을 위하여 흥행, 집회, 제례의 제한 또는 금지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를 들었다. 이 법의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기독교의 예배 행위를 여느 일상적인 강연 집회처럼 취급하면 곤란하다. 기독교의 예배 의식은 어떤 신앙인들에겐 목숨보다 소중한 가치이다. 그들은 예배 의식에서 예수의 길을 따르기 위해 생명을 바칠 것을 다짐하기도 한다. 북한의 지하 교회가 고문과 처형을 일삼는 탄압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비밀이 예배에 있다.

수천 년 기독교의 수난사는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사였다. 근대 국가의 성립 기초로 확립된 신앙의 자유는 양심, 사상, 언론, 표현의 자유 등과 함께 인간의 기본 권리이자 인간 존재의 본질적 내용을 구성한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37조 ②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 조항은 신앙의 자유를 특정 법률에 따라 제한할 수 있으나 그 목적에 비추어 과도하게 제한해선 안 된다는 ‘과잉제한의 금지’를 분명히 했다(헌법재판소, 『130개의 약속: 대한민국 헌법』 2018년).

이재명 지사가 법에 따라 금지할 수 있는 조치들은 수없이 많지만 부디 권한 행사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당장 권력의 쾌감과 이익을 얻을 수 있겠으나 그 때문에 삶의 본질적 자유와 권리를 침해받아 괴로워하는 수많은 기독교 주민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이 종교집회 전면 금지라는 행정 강제를 생각했을 때 그의 판단은 비과학적이고 자의적이었다. 비과학적인 이유는 경기도 내 1만3000개 교회의 예배를 행정명령으로 중지시키려면 기독교인의 감염 사례가 비기독교인 감염 사례보다 유의미하게 많다는 등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일절 없었다.

자의적이라는 이유는 경기도가 내놓은 자료라는 게 고작 “경기도민 95%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종교집회를 자제해야”라는 여론조사 결과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는 헌법적 이슈를 무신론자가 다수 참여하는 설문으로 결정하겠다는 발상이라니. 게다가 여론조사 회사는 경기도의 돈을 받았으니 문항 내용이나 구성의 공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종교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2%)’ 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96%)’고 나온 조사의 설문엔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과학적이고 자의적인 전제가 깔려 있어 응답자가 한쪽으로 확 쏠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라면 이재명의 사생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그의 도지사로서 권한 행사의 적절성을 문제 삼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해도 될까.

기독교의 전통은 공공보건 같은 국가 사회의 보편적 요청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독일의 마틴 루터는 1527년 비텐베르크를 강타한 흑사병 환자를 손수 돌볼 때 다른 목사와 비환자 교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 가정 예배를 드리라고 권고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총신대 신학위원회 발표 자료). 교회는 세속 권력이 신앙의 자유를 탄압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일반적으로 순응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결국 민간 교회의 예배 문제에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 없이 정부의 행정 강제가 작동하는 일이 벌어지면 안될 것이다.

마녀재판의 치명성은 권력자의 자의성에 있어

17세기 초반 마녀가 악마로부터 세례를 받는 모습을 그린 상상화.

17세기 초반 마녀가 악마로부터 세례를 받는 모습을 그린 상상화.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시작된 마녀사냥은 근대 국가가 확립되던 18세기에 들어서 사라졌다. 흑사병은 페스트균을 보유한 쥐의 혈액을 먹은 벼룩이 사람에게 옮으면서 생기는 인수공통 전염병이다. 이런 의학적 원인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전문가들의 과학적 실험에 의해 밝혀졌다. 중세 유럽의 권력자들은 주기적으로 닥치는 대역병의 발생 원인을 누군가에게 뒤집어 씌워 대중의 분노를 처리하고 나라의 혼란을 예방하려 했다. 주로 사회적 지위가 낮은 나이 든 과부, 문둥병 환자, 유대인(자기 나라 없이 떠도는 이방인) 등이 특별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마녀사냥의 타깃이었다.

특히 유대인은 율법적으로 손을 자주 씻기에 다른 인종에 비해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많았는데 오히려 이 때문에 남에게 병을 퍼뜨리는 집단이라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기록에 나타난 유럽의 마녀사냥 규모는 1616~1617년 남부 독일에서 불에 타죽은 300여명을 포함해 처형된 사람이 4만~6만명이라고 한다(Ronald Hutton의 논문 “Writing the History of Witchcraft: A Personal View”).

마녀재판의 치명성은 ①피해자와 인과관계가 없는데도 ②객관적이거나 보편적인 기준 없이 ③권력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신체를 침해하는 데 있다. 마녀재판은 결국 페스트를 잡는데 실패했다. 마녀사냥이 그저 죄없고 평범한 인간 사냥이었던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기까지 수세기가 소요됐다. 사람들이 재판관들에게 공공연히 적대감을 보이면서 지역 공동체는 극도로 분열되었고 권력자들은 상황 통제에 어려움을 느꼈다.

사회는 마녀 때문이 아니라 마녀재판 때문에 혼란스러워졌다. 마녀재판 자체가 악마의 농간이라는 말이 나왔다. 각 나라는 다양한 법체계를 도입해 더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고, 고문을 금지하며 개개 인간의 신체적 자유를 보장하는 사법개혁을 통해 특별재판을 제한하였다. 이로써 마녀사냥의 종식은 근대 국가 탄생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