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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도 심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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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전국을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가려졌지만, 야생 멧돼지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ASF 바이러스에 감염돼 폐사한 야생 멧돼지가 경기도 파주와 연천, 강원도 철원과 화천 등 접경지역에서 5개월째 꾸준히 발견되고 있고, 최근엔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멧돼지 폐사체 꾸준히 발견돼 #이달 초순 66마리까지 늘어나 #총기 사용 확대하면 부작용 우려 #방역 강화로 전파 막아야

지난해 10월 비무장지대(DMZ)와 민통선 안에서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되기 시작한 이래 지난 10일까지 총 347마리가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1일 이후에만 209마리가 발견돼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특히, 이달 초순에는 모두 66마리가 발견돼 순(旬) 단위로는 최대치를 기록했다. 화천에서는 137마리 중에서 103마리(75%)가 지난달 이후에 발견됐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변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방지와 야생멧돼지 이동을 막기 위해 설치된 철조망.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변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방지와 야생멧돼지 이동을 막기 위해 설치된 철조망. [연합뉴스]

ASF는 멧돼지뿐만 아니라 사육 돼지에서도 거의 100%에 이르는 치사율을 보인다. 1921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처음 발견됐고, 1960년대 서유럽으로 퍼졌다가 1990년대 중반 유럽에서는 박멸됐다. 그러나 2016년 다시 동유럽에 전파됐고 2018년 8월 이후 중국으로 확산한 데 이어 지난해 5월 북한 압록강 인접 지역에서도 발생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9월 17일 경기도 파주의 한 돼지 농가에서 ASF 발병이 처음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초까지 14개 농장에서 발병했고, 정부와 지자체는 43만 마리가 넘는 돼지를 도살 처분하거나 농가 돼지를 사들여 도축했다.

지난해 10월 강원 화천군 전방에서 포획된 야생멧돼지. [뉴스1]

지난해 10월 강원 화천군 전방에서 포획된 야생멧돼지. [뉴스1]

야생 멧돼지가 사육 돼지에 바이러스를 옮길 것이란 우려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지난해 가을 이후 포획 등 멧돼지 차단에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폐사체 발견 지점 주변에 1차, 2차 울타리를 치고, 더 넓게 광역 울타리까지 쳐서 멧돼지 이동을 막았다. 울타리를 친 뒤 폐사체를 신속하게 수거하고, 남은 멧돼지를 적극적으로 포획할 경우 대략 8개월 정도면 멧돼지 ASF가 소강상태를 보일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도 뚜렷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국립환경과학원 환경보건연구과 정원화 팀장은 “그동안 폐사하거나 포획된 멧돼지 시료 2000여 건을 분석했고, 요즘도 매일 30건가량 시료를 분석한다”고 말했다. 지난 9일 하루에만 폐사체 14건이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다.

순별 멧돼지 폐사체 발견 건수

순별 멧돼지 폐사체 발견 건수

더욱이 지난달 7일 화천군 간동면 광역 울타리 밖에서 포획된 야생 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방역 당국을 긴장시켰다. 정부는 ASF가 양구 지역으로 동진(東進)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양구 지역을 종단하는 울타리를 2개 설치하는 등 추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부 지역에서 멧돼지 폐사체 숫자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총 70마리의 폐사체가 발견된 파주 지역에서는 지난달 이후 24마리만 발견됐다. 철원 지역도 22마리 중에서 지난달 이후 발견된 것은 3마리에 그쳤다.

환경부 최선두 ASF총괄대응팀장은 “임진강 등으로 차단된 파주 지역은 멧돼지가 외부에서 들어가지 못해 최근엔 감염 폐사체가 덜 나온다”며 “광역 울타리를 보완한 뒤로는 화천 지역에서도 울타리 밖에서는 감염 폐사체가 더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화천 지역에서 폐사체 발견이 늘어난 데에는 폐사체 수색을 강화한 이유도 있다고 환경부 설명하고 있다.

지역별 순별 멧돼지 폐사체 발견 건수

지역별 순별 멧돼지 폐사체 발견 건수

문제는 축산 농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ASF 방역과정에서 돼지 사육을 중단한 농가가 261개 농가다. 이들 농민은 돼지 재입식을 원하지만, 야생 멧돼지 ASF가 진정되기 전에는 이들 농가에 재입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게 농림부 입장이다. 여름철에는 새나 곤충 등 매개 동물에 의해 멧돼지 ASF가 사육 돼지에 전파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에서 ASF 백신을 개발했다는 소식도 있지만, 당장은 적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ASF 조기 종식을 위해 울타리 내에서 총기를 사용한 멧돼지 포획도 병행하고 있다. 정부는 2017년 6월에 ASF가 발생했지만 9개월 만에 종식한 체코의 성공 사례를 다분히 의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체코의 경우 폐사체 발견 지점을 중심으로 울타리를 치고 대대적인 포획을 진행했다.

하지만 야생동물연합 조범준 사무국장은 “울타리를 친다고 해도 산악 지역과 농가 등 때문에 멧돼지가 이동할 수 있는 빈틈이 많다”며 “총기 포획을 확대하면 멧돼지들이 평소 활동 영역을 벗어나 오히려 감염 확산을 촉발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비무장지대나 지뢰지대도 없고, 평야 지대여서 울타리 치기가 비교적 쉬웠던 체코처럼 단시간에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좀 더 긴 호흡으로 기다릴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3월 말까지는 민통선 지역에 대한 포획과 수색을 강화하고, 멧돼지에서 사육 돼지로 ASF를 옮길 수도 있는 매개체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민통선 지역에 출입하는 영농인 차량의 소독을 강화하고, 이들의 축산시설 방문도 금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