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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로컬프리즘

촬영지 관광화, 계획이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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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모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모란 사회2팀 기자

최모란 사회2팀 기자

인천 연수구엔 골재 채취로 산의 절반이 사라진 절벽이 하나 있다. 송도 석산이다. 한때 이곳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2014년 방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로 소문이 나면서부터다. 낙석이 떨어질 수 있어 출입금지 지역이었는데도 찾는 사람들이 늘자 인천시는 예산 3억원을 투입해 아예 관광지로 꾸몄다. 드라마 촬영지임을 알리는 알림판을 세우고 드라마에 등장했던 종류와 비슷한 차도 한 대 전시했다. 관광객들이 철조망에 소원을 빌며 자물쇠를 달 수 있는 ‘수정죽절비녀’도 설치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현재, 이곳은 폐허가 됐다. 드라마 알림판은 녹이 슬었고 곳곳엔 잡초가 무성하다. 2016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관리가 되지 않은 탓이다. 송도 석산을 관리하는 인천도시공사 관계자는 “현재 여러 개발 방안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지만 이곳이 다시 관광지로 되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지자체가 드라마·영화 촬영지에 예산을 지원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유명했던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의 상운분교는 찾아오는 관광객 때문에 동네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만, 드라마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2018년 결국 건물이 철거됐다.

인천 옹진군이 2005년 8억여원을 투자해 북도면 시도리에 만든 드라마 ‘슬픈 연가’ 세트장도 2~3년이 지난 후에는 찾는 이들이 거의 없어 폐쇄됐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감독상 등 아카데미 4관왕을 석권하면서 영화 촬영지가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은 영화 속 촬영지를 배경으로 영화 전문가와 함께하는 팸투어 등을 진행했다.

영화 속 기택(송강호 분)의 반지하 집과 주변 동네 등이 있던 고양 아쿠아 특수촬영 스튜디오와 박사장(이선균 분)의 집 건물이 있던 전북 전주영화종합촬영소는 세트장 복원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총선 바람을 타고 봉준호 감독을 기리는 문화시설 등을 공약으로 거는 후보도 나온다고 한다.

촬영지를 제대로 된 콘텐트로 만들면 한류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다. 하지만 세트장만 달랑 있는 기존 촬영장들과 같다면 세금만 들인 흉물이 될 수밖에 없다. 영화 ‘기생충’ 속 대사처럼 (장기적인 관리·개발) 계획이 있어야 한다.

최모란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