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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웃에 흉기' 정신질환자 코로나 아니었으면 전날 입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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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가 병원 입원을 못 해 방치됐다가 이웃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병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에 따라 입원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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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경찰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 중랑경찰서는 최근 살인미수 혐의로 무직 남성 김 모(50)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다음 주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예정이다.

갑자기 90대 노부부 공격

김씨는 지난 2일 오전 7시 20분쯤 서울 중랑구 면목동 자택(2층짜리 다가구 주택의 옥탑방) 인근 길가에서 이웃 A씨(93) 부부의 얼굴·머리·어깨 등에 흉기를 휘둘러 큰 상처를 입힌 혐의다. A씨 아내는 중앙일보에 “남편이 담배를 피우려고 잠깐 나갔는데 곧 비명이 들렸다”며 “나가 보니 남편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고 그때 나도 맞았다”고 말했다. 현재 A씨는 입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아내는 입원하진 않았지만 얼굴 전체에 피멍이 들어 있다.

범인 김씨는 정신질환(조현병 추정) 환자로 3개월가량 전부터 약 복용을 끊어 증세가 악화한 상태였다. 김씨의 지인은 기자에게 “김씨가 최근 연인과 헤어지면서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김씨의 정신질환에 따른 무동기(無動機) 범죄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김씨는 월세가 수개월 밀리는 등 생활고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전날 난동 부려 체포됐지만…석방

더 큰 문제는 김씨가 전날인 1일 새벽 12시 20분쯤에도 난동을 부렸다는 점이다. 바로 아래 층(2층)에 사는 B(61)씨 집 안에 들어가려다 문을 부순 혐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의 문손잡이 등도 파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행히 김씨가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덕분에 B씨는 다치지 않았다.

이 1차 사건 직후 경찰은 김씨를 체포했고 인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그러나 병원은 신종코로나 확산에 따른 여파(의료진 부족 등)로 응급실을 폐쇄한 상황이라 입원이 불가능했고, 경찰은 김씨를 어머니에게 인계했다. 어머니는 다른 병원도 알아봤지만 병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했다. 이후 어머니는 김씨를 김씨 자택이 아닌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김씨는 바로 자택으로 돌아갔고 다음 날 아침 2차 사건(살인미수)을 저지른 끝에 구속된 것이다.

3일 서울 양천구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본 사건과 직접 연관은 없음. [연합뉴스]

3일 서울 양천구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본 사건과 직접 연관은 없음. [연합뉴스]

“안 풀어줬으면 더 큰 화 막았다”

경찰이 1차 사건 직후 김씨를 구속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아 2차 사건으로 번진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인다.

1차 사건 피해자 B씨도 경찰을 원망한다. B씨와 따로 사는 딸은 전화 통화에서 “김씨를 풀어준 것도 문제지만 어머니 등한테 석방했다는 통보를 안 해준 것도 문제”라며 “2차 사건 당시 석방 사실을 모르던 어머니가 밖에 나와 있기라도 했다면 A씨 부부처럼 크게 다쳤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2차 사건 직전 김씨는 B씨 집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B씨 딸은 “뒤늦게 구속된 김씨가 앞으로 감옥살이한다고 해도 출소하면 어머니에게 보복할까 너무 무섭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어머니조차 “경찰이 1차 사건 직후 환자를 그냥 내보내 더 큰 사고가 나게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1차 사건 때 문을 부순 정도로는 구속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구속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중랑서는 “김씨를 어머니에게 인계하면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이 많아서 충분히 케어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예상치 못하게 2차 사건까지 벌어져 안타깝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에 대한 김씨의 보복 우려와 관련해선 “신변보호 등 지원을 하고 있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구속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데 무리하게 구속하면 피의자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받을 위험이 있다”며 “경찰의 입장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구금이나 보호조치 등 했어야”

하지만 “1차 사건 직후 경찰의 대응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최소한 유치장 구금이라도 해야 했다는 이야기다. 경찰은 현행범으로 체포한 피의자를 최대 48시간 동안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할 수 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의 판단 실수가 있었다”며 “보호조치라도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응급구호가 필요한 대상에 대해 24시간 동안 경찰서에서 보호조치를 할 수 있다.

“전문기관 도움 요청했어야”

다른 기관에 도움을 청해야 했다는 의견도 있다. 정신장애인 인권단체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는 “구(區)마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는데 이곳에 알렸다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2차 범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신종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어떻게든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아 응급입원을 시켜야 했다”고 말했다. 정신보건법에 따르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칠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에 대해 경찰은 72시간 동안 응급입원을 시킬 수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경찰 내에 임상심리사와 같은 정신질환 관련 전문 인력을 배치해 수사 과정에서 조언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홍범·이가람·김민중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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